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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를 보러 베트남에 가자는 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베트남에는 명승지 감상에 앞서 참회의 방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이번 겨울에 문화예술위원회의 한명희위원이 인솔하는 “나라음악 큰잔치” 베트남 공연에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할 기회가 주어져서 기쁘게 동행했다.
베트남의 첫 인상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그냥 한가로워 보여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부지런히 생업에 골몰하고 있어서였다. 아직 가난의 티는 벗지 못했지만 지저분하거나 절망적인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참 순하면서도 강인한가보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공연은 베트남 중부의 다낭시와 역시 중부에 위치한 고도(古都) 후에시에서 있었다. 다낭에서의 첫 공연에 앞서 우리 일행은 다낭시의 전몰자추모탑에서 헌화와 진혼제를 거행했다. 이애주교수의 살푸리춤을 필두로 한 이 추모행사는 어찌나 감동적이었는지 그냥 단신(短信)으로 내보내기 위해 취재를 나왔던 국영베트남 TV의 다낭지국에서 그날의 진혼제를 구정특집으로 방송하겠다고 이애주교수를 인터뷰해 갔다. 우리처럼, 아니 우리보다 더 상처받은 베트남국민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위로의 염이 그 특집프로를 통해 많은 베트남인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조갑용 사물노리패, 슬기둥 국악합주단, 김영임명창, 공명, 박명숙무용단 등의 연주로 이루어진 “나라음악 큰잔치” 공연은 다낭시에서 2회, 후에시에서 1회 있었는데 세 번 모두 각 공연장 사상 초유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성황에는 물론 베트남 최고의 인기가수 2-3인을 게스트로 포함시킨 덕도 컸지만 그래도 베트남 국민이 한국의 음악과 무용을 만났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양국간 우호의 중요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방문에서 베트남의 고위인사들, 예술인들과 짧게나마 만나서 대화할 수 있었던 것도 매우 기쁜 일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뜻 깊었던 것은 다낭시에서의 고아원방문이었다. “희망의 마을”이라는 이름의 시영 고아원에는 150명가량의 원아들이 있었는데 고아들이 대부분이고, 편모나 편부가 키우기 어려워 위탁양육을 하는 어린이들도 있고 그 중 40여명은 농아라고 한다.
요즈음은 섬유산업의 발달로 고아원 원아들도 헐벗지는 않았다. 3살부터 18살까지의 원아들 중에서 여아들은 대개 표정이 환했는데 남아들 중에는 아주 표정이 어둡고 처량해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멀리서부터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서 아이들이 간단한 무용 공연도 해 모였고 원아대표가 인사말도 했고 농아들의 공연도 있었다. 많은 원아들이 호기심에 빛나는 눈으로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관찰하며 미소의 눈길을 교환했다.
그 고아원은 다낭시의 한국교민회(회원 50명 정도)가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몇 개의 시설 중의 하나라고 한다. 다낭시 교민회 회원들은 여러 방면의 대민 봉사를 하고 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지원하고 의료시술도 제공하고,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한 교민은 매일 20인 분의 식사를 “희망의 마을”에 제공한다고 한다. 그래서 150명의 원아가 순번으로 일주일에 한 번 먹게 되는 한국음식을 학수고대한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순하고 순박하다는 인상을 주었으나 처참했던 월남전의 기억을 지우기에는 30년은 충분한 세월이 아니다. 게다가 요즈음 베트남 처녀들이 우리나라에 시집와서 학대를 받고 버림받는 케이스가 많아서 국민간의 감정이 더 나빠질 것이 우려된다. 다낭시 교민회의 노력은 그래서 정부차원의 외교 이상으로 값지고 긴요하다. 우리 국민도 모두 마음으로, 그리고 기회가 오면 행동으로 민간외교를 지원했으면 한다.
방문 중에 만난 한 베트남의 음악연구가는 자기가 어렸을 때 아파서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한국군의 간호사가 약을 주어서 살아났다면서 시종 정다운 눈길과 미소를 보냈다. 우리의 한 순간의 사소한 행동이 백년의 은혜로 남을 수도 있고 천년의 원한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인데, 왜 우리는 작은 선의를 베푸는데 그토록 인색할까?
- 고려대 교수, 영문학
- 월간 <<에세이>>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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