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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행 야간열차
서지문   |  2007-04-04 16:22:28  |  조회 2910 인쇄하기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들어서인가, 편한 것만 추구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안락함보다는 ‘모험’ 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인도여행상품 중에서 바라나시(베나레스)에서 델리까지 항공편 이용 코스도 있는데 침대차로 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막상 역으로 향하기 전에 14시간 기차를 탄다는 말을 듣고 화장실을 몇 번 가야될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야간열차가 인도의 참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변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아름답고 웅장한 문화유적을 즐기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현재의 삶에 더 관심이 있다.
기차역에 들어서자 정말 영화에나 나올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없이 긴 플랫폼에는 누추한 옷을 걸치고 먼지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무수히 널브러져 있었다.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은 대부분은 초점 없는 시선으로 하염없이 앉아있거나 짐 위에 엎어져서, 또는 짐을 베고 누워서 잠을 자기도 했고, 가족끼리 밥을 해 먹기도 하는 모양이 마치 언제 올지 모르는,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그 사이를 몸이 불편한 걸인들이 누비고 다녔고,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흰 소도 있었다.
역에 들어와 있는 낡고 지저분한 기차는 창에 쇠창살이 쳐 있어서 죄수호송차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쇠창살 안쪽의 유리는 거의가 다 깨어져 있었다. 그런 기차에 “chair car”라고 씌어있는 칸과 씌어져 있지 않은 칸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기차에도 의자가 있는 2등 칸과 의자가 없는 3등 칸이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인도인 현지 가이드는 아주 새파랗게 젊은 학생이었는데도 능숙하게 짐꾼들을 불러서 우리 짐을 지우고 대합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대합실은 낡은 철제 의자가 30-40개 있는 지저분하고 화장실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지만 1등표를 가진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플랫폼의 세멘트 바닥에 괴로운 자세로 앉고, 누워있는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대합실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일찌감치 역에 나갔고, 기차가 연발했기 때문에 그 악취 나는 대합실에서 4시간을 기다렸다.
3시 45분 출발예정인 델리행 침대차는 결국 6시 반에 도착했다. 쿨리(짐꾼)들이 가방을 두 개씩 포개서 머리에 이고 하나는 끌거나 팔에 걸고 운반해서 기차에 올려놓아 주었고, 짐들은 침대 맨 아랫단 밑에 밀어넣어졌다. 모두들 침대 번호를 확인하고 더럽고 허름한 침대에서 14시간을 버틸 마음의 준비를 하는 동안 기차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30분 이상을 지체해서 7시에야 기차는 출발했다. 야간열차의 낭만은 어디에도 없었다. 침대차가 독립 칸으로 구성되어있지 않고 다 개방되어 있는데, 통로 한 쪽으로는 삼단 침대가 마주보고 있어서 여섯 개씩, 그리고 좁은 통로를 격해서 벽 쪽으로는 2단 침대가 연이어 있었다. 침대차의 표를 사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한 달 전부터 표를 예매하기 때문에 일행이 붙은 자리를 살 수가 없어서 서너 그룹으로 나뉘어졌고, 생면부지의 인도인들과 아래 윗 침대, 마주보는 침대를 써야했다.
그토록 지저분한 침대차일망정 인도인들은 중상류층이 이용한다고 하는데도 나와 언니의 침대 맞은편에는 매우 무식해 보이는 거구의 인도 남자 두 사람이 꺼멓고 큰 맨발을 뻗치고 앉아서 큰 소리로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3단 침대 쪽은 가운데 단을 접어 올려야 아랫단에 사람이 앉을 수 있고, 세 단을 다 펴면 어떤 단에도 고개를 펴고 앉을 수 없는 구조였다. 여행사가 제공한, 침대차의 주방에서 나온 저녁식사는 카레국물 같은데 삶은 계란 두 개와 무슨 소스를 얹은 밥이었는데 냄새가 역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맞은 편 자리의 두 남자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어서 주고 싶기도 했지만 그랬다가 혹시 친근감이라도 표시할까 두려워서 현지가이드의 지시대로 주방에서 다시 가져가도록 그냥 바닥에 내려놓았다. 인도에는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이 별로 없는데, 기차는 그냥 그 자체가 쓰레기통이었다.
창문을 열 수 없게 되어있어서 올라타는 순간부터 호흡이 괴로웠는데, 백 여명이 모포를 펄럭이고 냄새나는 음식을 먹고 하니 정말 질식할 것 같았다. 그런데 기차는 가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더 긴 것같이 생각되었다. 승객을 태우기 위해서 오래 정차하는 것이 아니고 선로가 하나뿐이어서 교차하는 기차를 보내기 위해서라는데, 한 번 교차하는데 몇 십 분씩 걸려야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인도 기차의 화장실은 밑이 뚫려 있어서 용변이 선로위로 그냥 배출되는데, 그토록 잦고 오랜 정차 시에도 화장실 사용이 금지되는 것 같지 않았다.
기차는 결국 그 다음날 3시 5분에 델리 역에 도착했다. 연착한 시간을 합해서 23시간 20분만에 도착한 것이었다. 나중에, 하루 걸려서 온 거리가 500km였다는 말을 듣고 허탈했다. 델리 시내에서 아주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5시가 되어서 그날의 델리관광 스케쥴은 모두 포기하고 공항으로 직행해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미리 알았다면 야간열차는 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10년을 벼르고 기대했던 인도여행이 ‘앙꼬 없는 찐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도의 야간열차에는 낭만은 없었지만 현실이 있었다. 물론 인도에는 더 참담한, 극한적인 현실이 있다. 그 현실도 가능하다면 대면하고 싶다. 그러나 주간에, 화장실을 사용을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시간만큼만. 오늘 “기아대책”에 후원아동을 한 명 늘려달라고 했다.

- 고려대 교수, 영문학
- 월간 <<방송문예>>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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