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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래의 나이든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마주 앉아서 한·일간의 역사를 입에 담게 되면 곧잘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 서로가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헤어져야 할 때도 부지기수다. 36년 동안이나 조선을 지배한 나라였던 일본 사람들은 되도록 그 때의 일은 얼버무려서라도 피해가려 하고, 지배를 당했던 우리 쪽은 조금이라도 진솔하게 화두가 흘러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또래보다 젊은 전후세대들이 만날 때는 그런 델리킷한 요인이 줄어들면서 미래지향적인 만남이 된다고 하기에 세월이 약이라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다.
뭔가 조금씩 나아질 기미가 보일 때마다 일본국 정치지도자들이 망언을 하여 판을 엎어버리는 악순환이 또 되풀이 되었다. 이번에는 전후세대의 선두 주자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해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광의의 강제성은 있었지만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은 없었다.”면서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가결되더라도 일본 총리로서 사과할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는 보도에 접하면서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불쾌감이 일었다. 전후에 태어나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젊은 총리가 이렇게 몰지각해지자면 그의 교양은 고사하고 양식을 의심 받아야 마땅하고, 염치가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비난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종군위안부가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불행을 겪었던 당사자들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식민지 치하의 국민학교 6학년(1944)일 때는 종군위안부란 말 대신 허울 좋게도 ‘앞장서서 몸을 바친다.’는 뜻으로 정신대(挺身隊)’라고 했다. 귀애하는 딸들을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15, 6세의 어린 딸들을 강제로 결혼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관헌들의 지명이 강제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피눈물을 쏟아야 할 까닭이 없지를 않겠는가. 미처 혼처를 정하지 못하다가 불행하게도 정신대로 끌려가게 되면 국민학교 운동장에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거창한 환송식을 하기까지 했다. 그런 날의 운동장은 철모르는 아이들의 흐느낌 소리가 진동하는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 이 처참했던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들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첩 체험했던 일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국 총리대신은 가까운 이웃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자국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려했던 치기는 그나마 군국주의 일본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기에 보수 세력과 함께 과거회기를 시도하거니 했었지만, 전후 젊은 세대의 선두주자가 된 아베 신조 총리대신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배웠기에 동남아시아의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는지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발언을 비판하는 야당의원에게 “당신은 일본을 얕잡아 보느냐”고 반발했다는 보도는 60여 년 전 툭하면 매질을 일삼았던 내 일본인 담임선생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한·일간 어느 쪽이던 괴로움을 체험했던 우리 또래의 나이든 세대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어로 된 신문이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세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반대로 그 때의 참담함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대가 양쪽 나라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아 가게 되었다면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의미에서도 역사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두 나라의 미래를 가늠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에게 당부하노니 당신의 작은 손바닥으로 높고 푸른 하늘이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몰지각이 고쳐지지 않고서는 당신의 미래는 고사하고, 당신의 조국 일본국에도 밝은 미래가 열리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2007년 3월 6자,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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