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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몰락하는가?
진덕규   |  2007-03-19 00:03:44  |  조회 3248 인쇄하기
[유럽의 몰락]과 [프랑스의 좌절] 및 [유럽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 같은 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책은 한결같이 유럽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며, 결국은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사실 간단한 지표들, 즉 유럽 주요 국가들의 GDP는 지난 30년간 미국에 뒤떨어졌을 뿐 아니라 발전의 길에서도 밀려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말한 책자들이 담고 있는 유럽에 대한 비관론에 의하면 일대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유럽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지난 2000년 3월 [EU 리스본 회의, EU Lisbon Conference] 선언문에 실렸던 내용, 즉 “앞으로 10년 내에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경쟁성을 지닌 경제를 이룩할 것”이라는 구절마저도 하나의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지표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삶의 질”과 “평등성”에 관한 문제이다. 비록 미국과 일본이 경제 성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중국과 인도의 급성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숫자 이상의 의미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들 나라 사람들이 당면하고 있는 “삶의 질”이나 “평등성”은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모방과 변혁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세계를 주도한 것은 미국의 경제 모델이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하여 제3세계에서도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지 미국적인 성장 모델을 수용한 데 불과했을 뿐이다. “R&D에 의한 신상품 개발과 국제 무역 활성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모범 답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의 유럽도 이러한 모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렇게 해야만 경제 성장에서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는 그 나름대로 오랜 성장의 기반, 즉 국가, 시장, 시민사회 사이의 관계 설정에 대한 오랜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유럽에서는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국가를 감독하기도 하고 시장을 제약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목표도 단순한 부국강병의 국가 발전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국가도 그것을 위해 있는 것이고 시장도 그것에 기여적이라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유럽은 아직도 미국적인 것을 모방하거나 새로운 변혁을 시도하기보다는 자기 식의 사회를 지키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적인 기본은

그러나 유럽의 이러한 흐름이 미국적인 성장 모델을 완전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거대 기업체도 육성해야 했고, 기업체에 대해 각종 세제 혜택과 편익도 제공해야 했지만 이러한 변화는 결국 미국적인 것을 모방한 데 불과했을 뿐 유럽 경제의 기본 흐름이나 고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럽적인 성장 모델은 여전히 국가, 시민사회, 시장 사이의 효율적인 관계 설정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구매력 평가(purchasing power parity, ppp)를 중심으로 할 때 유럽의 개인당 GDP가 미국의 70%에 불과하고, 이러한 현상이 지난 30년 간 고착된 탓에 유럽이 미국을 따라갈 수 없다고 결론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 특히 유럽인들은 미국인들보다 현실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클 뿐 아니라 계급 갈등이나 대립 의식은 미국보다 훨씬 덜하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생활 만족도는 53.8%이지만 유럽인들은 62%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경제 성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유럽적인 기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성 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더 지적되어야 할 것은, 유럽의 생산성은 미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미국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여가 선용이나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수입 그 자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그와 반대로 사람답게 사는 것은 경제적인 것보다 자기 식의 삶을 즐길 줄 알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스스로를 일구어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부자들의 삶의 방식이나 도시 상층민들의 생활을 모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만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급 갈등도 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풍족한 경제에 의해서만 사람다운 삶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가 더 좋은 삶의 조건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경제가 뒤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삶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양식이 얼마 만큼 자기 실현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유럽은 여전히 삶의 질과 평등성이 다른 사회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으며,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의 삶을 즐기고 지켜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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