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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그리고 동독과 북한
진덕규   |  2007-03-26 06:09:08  |  조회 3607 인쇄하기
나 스스로 생각해도 영화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유혹을 이겨낼 만한 나이인데도 영화는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주에는 자칭 [영사모: 영화에 미친 사람들의 모임] 친구들과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보통 한 편의 수작을 보면 한 달 동안은 너끈하게 그것에 취할 수 있는데, 이번 영화는 앞으로 상당 기간 나를 포로로 만들어 버릴 것 같다.

영화의 기법이나 구도 같은 것에 대해서는 내 전공이 아니기에 할 말이 없지만 그것이 전하는 짙은 메시지는 분명히 가슴을 울린다.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무너져 내린 인간”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 때문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의 반인간적인 압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슴 아픈 연민 때문이었다.


[타인의 삶]

이 영화의 무대는 통일 직전의 동독이며. 주인공은 그곳 비밀경찰 스타시(Stasi)에 소속된 “위즐러” 중위이다. 그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인 드라이만과 그녀의 연인인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면서 그 자신의 신념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가 그들 두 사람을 감시하게 된 이유는 단지 크리스타에게 반해 버린 문화부 장관의 치졸한 욕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드라이만의 혐의를 잡기 위해 24시간 도청하고 감시하면서 위즐러는 오히려 그들의 진실된 사랑에 정신적 이입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그는 “혐의 없음”이라는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만다.

영화가 중반부로 넘어서면 동독 정부에 맞서다 연극계에서 퇴출당한 드라이만의 스승이 드라이만에게 “선한 이들의 소나타”라는 악보를 생일 선물로 보내준다. 그리고 드라이만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도청하는 위즐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그 뒤 드라이만은 동독의 암울함을 비판하는 기사를 집필해서 서독의 [슈피겔] 지에 은밀하게 게재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일을 조사 보고해야 할 위즐러는 오히려 그를 감싸주다 우편배달부로 전락하고 만다.

세월이 지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자 드라이만은 자신이 도청을 당하기는 했지만 위즐러, 즉 비밀요원 HGW XX/7의 도움으로 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2년 뒤 “선한 이들의 소나타”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 드라이만은 그 책의 첫 장에 HGW XX/7에게 감사한다는 헌사를 쓴다. 그리고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위즐러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며드는 것으로 이 영화는 끝을 맺는다.

빅 브라더와 전체주의
이 영화가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전체주의의 반인간적인 억압 때문이다. 철저하게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사회, 그것도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Erich Honecker)와 그 일파만을 위한 것이기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그들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자신들만 특권을 향유하는 억압적 폐쇄 사회를 만든 후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순한 양”이 되기를 강요했을 뿐이다.

다수가 굶주릴 때에도 그들만은 호의호식하는 체제가 바로 전체주의다. 그러면서도 전국적인 감시망을 설치해서 서로 밀고하게 만들고 인간성마저 깡그리 망가지게 하여 결과적으로 우상 숭배의 신야만사회로 퇴행시킴으로써 조지 오웰(George Owell)이 쓴 [1984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를 마주하게 한다. 이 영화는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소수자의 지배 체제를 위해 절대 다수의 자유를 박탈하는 체제야말로 가장 사악하고 마땅히 무너져야 할 제도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고 있다.

북한을 생각하면
극장 문을 나서 돌아오는 길에 하나의 화두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타인의 삶]이 그려진 동독과 북한에 대한 비교였다. 당시 동독에서는 그 체제에 분노한 지식인들이 지하에서 반체제 지식 운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억압과 약탈의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일구어 내려 했던 반체제 지식인들로 바크라프 하벨(Vaclav Havel)이 말했던 “진실에의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체제는 쉽게 무너질 수 있었고 변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북한의 전체주의 사회에도 그러한 반체제 지식인들이 있을까? 그들도 은밀하게 지하에서 반체제 활동을 전개하고 있을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북한의 체제 변화는 단지 망상이거나 친김정일주의자들의 허구적 논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가능성조차 없는데도 체제 변화를 유도한다면서 경제를 비롯해 온갖 것을 지원해주는 것은 기존 체제를 더욱 강화시켜 결국은 빅 브라더의 위세만 가져다 주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 [타인의 삶]이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라는 사실로 인해 다소라도 아픈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덧붙임: 이 글을 읽은 재독 한국인 학자이신 이은정 박사님께서는 다음 몇가지 사실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당시의 동독이 하나 아렌트 류의 전체주의로 규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동독의 지식인들이 그 체제의 변화를 더 희망했지 통일을 더 많이 기원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점은 필자도 상당부분 동감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느낀 감상이었음을 빌려 양해를 구합니다. 필자 드림.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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