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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의 긍정적 힘 확인한 조승희 사건
김경한   |  2007-05-09 06:45:35  |  조회 3508 인쇄하기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놀라움에 이어 바로 떠오른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우리는 범인 조승희가 되도록이면 한국과 인연이 먼 사람이기를 바랐다. 제발 한국 국적자가 아니었으면, 하다못해 최근에 갓 유학 간 학생만이라도 아니었으면 했다. 그가 이민 1.5세대라는 것이 밝혀지자 이민자는 사실상 미국 사람이 아니냐,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한 개인의 범행일 뿐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주장들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은 자괴감(自愧感)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왜 그랬을까? 한국인은 천생적으로 법보다 핏줄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미국 선수로 뛰는 박찬호나 위성미를 응원하며 TV 앞에서 밤을 지새운다. 하인스 워드가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 우리는 열광했고, 그의 인간승리 스토리에 눈시울을 적셨다. 그에게 50%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승희 사건을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못하고 속을 끓인 것도 이 핏줄 때문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미국의 한인사회는 물론이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 인사가 나서 마치 스스로의 잘못인 양 유감을 표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태식 주미 한국 대사는 한인사회에 32일간의 단식을 제의하기까지 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과잉반응이라는 싸늘한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보여준 그들의 행동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그들이 켜 든 추모의 촛불이 순수한 것임을 믿는다. 이 촛불은 5년 전 효순ㆍ미선이 사건 때의 촛불과는 사뭇 다르다. 조승희와 비슷한 또래였을 어느 미군 병사가 훈련 중에 실수로 저지른 교통사고를 고의적인 살인으로 몰아붙이면서 참혹한 시신의 사진을 돌리고 성조기를 불태우고 미군 철수를 외쳤을 때 그 촛불에는 증오가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두 여중생을 애도하는 마음은 멀리 밀려나 있었다. 이번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은 미국인이 조용히 촛불을 켜 들었다. 주눅 들고 공포에 질렸던 현지의 한인사회, 그러나 미국인은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시신의 사진을 돌리거나 태극기를 불태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버지니아공대 학생회관의 추모 게시판에는 사건과 관련된 10여 개국의 국기 사이에 태극기도 함께 있었다. 학생회는 한국인이 보여준 위로와 애도에 감사하는 내용의 e-메일을 우리 대사관에 보내왔다. 교정에 세워진 33개의 추모석, 그중 하나는 범인 조승희를 위한 것이었다. 무엇이 미국인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집단의 일과 개인의 일을 분별하는 사고방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LA 폭동 때 그들이 한인에게 가했던 끔찍한 폭력을 상기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또 다른 요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 이후 태평양 이쪽과 저쪽에서 한국인이 보여준 사죄와 추모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유별난 집단의식이나 핏줄주의에는 문제점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과 증오가 아니라, 같은 겨레로서 연대의식에 따른 반성이나 책임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결코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으로 33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고 두 나라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얻은 것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핏줄 때문에 함께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한국인의 마음, 그리고 원망을 삭이면서 조승희를 위해 한 개의 촛불을 더 밝힌 미국인의 마음, 이런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그중 하나다. -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한국 휴머니스트회 회장 - <<중앙 SUNDAY>> 200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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