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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에 가보면 "나라를 건국한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이지만 우리를 먹고살게 해준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심지어 황산(黃山) 등산길에서도 덩샤오핑 선생이 76세 때 걸어 올라온 길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 형편은 옛날에 비해 많이 나아졌고 한국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관광지 같은 데선 한국 돈을 그대로 썼고 큰 상점에선 은행수표를 받기도 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조선족들이 신이 났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많이 진출하는 바람에 이들의 값이 많이 올라갔다. 부자 조국이 있어 돈도 많이 벌고 다른 소수민족들의 부러움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 중국이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덩샤오핑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덩(鄧)은 중국의 박정희(朴正熙)란 말을 많이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먼 타향에서 더 평가받는 것 같았다. 한국 안의 심한 비판이나 격하운동과는 대조적이었다.
최근 한국에선 X파일 수사로 민간 출신 대통령들이 불법 도청에 관련되었음이 밝혀져 마지막 남은 두 분도 큰 상처를 받았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한국에선 현직이 전직을 감싸주기보다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한 만큼 되돌려받아 권위 파괴가 되풀이된다. 그러니 전직에 사랑과 권위가 따를 수 없고 그것이 나라의 혼란으로 연결된다.
덩샤오핑인들 약점이 없겠는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비롯해 역사적 그늘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과오보다 공적이 많다고 보기에 권위와 사랑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 문화를 심은 것은 덩샤오핑 자신이다. 마오쩌둥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받았지만 결코 격하운동을 벌이지 않았다. 권력을 다시 잡고 나서 "천안문의 마오(毛) 주석 사진을 영구히 걸어 둘 것이며 그를 영원히 우리의 건국자로 기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오 시대를 평가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직접 나섰다. 역사 평가팀에 직접 지침을 주고 회의에도 자주 참석해 그의 과(過)보다 공(功)이 먼저라는 것을 당의 공식 견해로 채택하게 했다. 미묘한 역사 문제를 현명하게 처리함으로써 끝없는 시비를 없애고 긴요한 일에 나라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또 잘못을 나누어 지었다. "마오 주석이 특히 말년에 적지 않은 과오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간부들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일에는 나 자신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최고지도자가 책임을 나누어 졌기에 여론도 잠재우고 전략적이고 이성적인 일처리가 가능했다.
덩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기자가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댜오위다오(釣魚島)의 영유권 문제를 묻자 "지금 우리는 머리가 둔해 해결하기 어려우나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총명할 것이니 그들에게 맡겨 해결하도록 합시다"고 답변했다. 그런 유연한 전략과 전통 때문에 중국은 먹고살 수 있게 되었고 덩샤오핑도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다사다난했고 최근엔 큰일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권위 파괴가 심하고 억지와 무리도 많다. 시비 많은 역사 평가도 본격화되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것인가.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은 있다. 잘못된 것이 겹쳐 임계점을 넘으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혼란스럽다 해도 문화대혁명 때보다는 나을 것이며 중국도 그 후유증을 수습하고 지금 잘나가고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 리가 없다. 문제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위기와 기회는 표리관계여서 이 세상 모든 것이 길게 보면 모두 배움이 된다. 그 악몽 같은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덩샤오핑은 "보기에는 나쁜 일 같지만 따지고 보면 좋은 일입니다. 사람들의 사고를 깊게 하고 우리들의 단점을 인식하게 해주었습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역시 우리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선례를 보면서 이 정도에서 시행착오와 혼돈을 정리해 간다면 우리도 새해엔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중앙일보 12월19일자에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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