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노동문제 풀려는 이해찬식 80년대 버전 안 돼" 김대환 전 노동장관 퇴임 후 첫 인터뷰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노동문제에 관한 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처럼 1980년대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면서 "제발 정치적으로 노사 문제를 풀지 말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24일 중앙일보 박의준 사회부문 부에디터와 4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퇴임 후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장관은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한 2년간 겪었던 고충들을 털어놨다. 장관 자리를 물러날 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서는 "법과 원칙대로 노동문제에 접근해 달라"고 부탁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평생을 진보적 경제학자로 살아온 김 전 장관은 '법과 원칙'을 앞세우다 노동계로부터 맹비난을 받고, 진보진영으로부터는 "변절했다"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다음은 김 전 장관의 인터뷰 내용.
-노사 문제가 안 풀리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정치 때문이다. 노사가 서로 대화보다는 정치권에 가서 정치적으로 해결하거나 풀려고 한다. 그런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정치권이 섣부르게 노동계에 약속을 하거나 인기에 영합해 기대심리를 부추겨서도 안 된다. 정치권이 이렇게 나오니까 노동계는 툭하면 정치권으로 뛰어가지 않는가."
-하지만 총리가 직접 나서 노조위원장들과 만나지 않았나.
"사실이다. 노동계가 노사정위를 탈퇴하고 장외투쟁에 몰두하던 지난해 9월 27일이었다. 당시 이해찬 총리가 양대 노총 위원장을 총리 공관으로 불러 만찬을 함께했다. 노동부 장관인 나와는 얘기가 안 되니까 노동계가 이 총리에게 달려간 것이다. 이 총리는 나하곤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이들과 만나줬다. 총리는 그런 데 말려들면 안 된다. 정치로 풀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이 총리는 노동문제에 관한 한 80년대 버전으로 접근했다."
-총리실과 노동부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 당시 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자 총리실에선 '노무관리 차원에서 긴급조정권을 이용하면 안 된다'는 논평을 냈다.
"총리실은 당초 빨리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버텼다. 자율교섭을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자율교섭이 실패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그러자 이번엔 총리실이 긴급조정권에 대해 부정적 논평을 했다. 그건 양심을 속이는 행동이다."
-비정규직법과 관련, 민노당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민노당 의원들 중 비정규직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자기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민노당의 현애자 의원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기간제 근로자를 쓸 수 있는 사유를 반드시 제한하라'고 권유한 것처럼 자료를 냈다. 내가 국회에서 반박하려다 말았다. 실제 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사유 제한 ▶기간 제한 ▶반복고용 횟수 등 세 가지를 놓고 각국의 사정에 따라 한 개 이상 채택하라고 권고했을 뿐이다."
-노동부도 법과 원칙대로만 간 건 아니지 않은가.
"처음 부임했을 때 병원이 파업을 했다. 담당 국장은 그게 불법인지, 합법인지조차 결단을 못 내렸다. 정책이 정치에 휘둘리다 보니 눈치를 보느라 일관성이 없어졌다. 두산중공업 분규가 났을 때 권기홍 전 장관이 내려가 중재를 했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행정은 거기서부터 틀어졌다."
-다른 정부부처가 노동부의 분규 개입을 요청한 적은 없나.
"한미은행 파업 때다.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파업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나는 불법이어서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은 올 2월까지는 입법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한데 신임 이상수 장관이 온 뒤 노사정 간에 다시 협의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로드맵은 벌써 입법과정을 거쳐야 했다. 잘못된 정치논리에 밀려 지연됐다. 민주적인 절차를 밟았는데도 진전이 없으면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게 책임행정이다. 욕을 먹더라도 처음에 가닥을 잘 잡아야 나중에 힘이 되는 것이다."
-노동계는 "로드맵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가 안 됐다"고 주장한다.
"4년여 동안 노사정위에서 논의토록 했다. 한데 노동계는 이제 와서 '실질적으로 논의가 안 됐다'고 한다. 논의 마당이 있는데도 논의에 참가하지 않았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계는 파업 때마다 '정부가 나오라'고 한다.
"10여년 동안 그런 과정을 지켜봤다. 이젠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노동계는 정부.지자체 등을 모두 집어넣어 타협의 당사자로 만들려고 한다. 그건 정치다. 노동계는 이제 정부와 담판을 지으려 하지 말라. 사용자와 대화를 하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막후에서 거래하려고 하면 안 된다. 노조는 입으로는 노사관계를 얘기하는데 머리론 노.정관계만 생각한다."
-노동계의 대화방식도 문제가 있다고들 한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대화는 '자기식의 대화'다. 노동계는 정부한테 '대화를 해주는'식으로 생각한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히 주문한 게 없나.
"재임기간 중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다. 나서지 말도록 단단히 부탁드렸고, 그 점을 받아줘 고맙게 생각한다. 대통령은 나를 '버거운 사람'이라고 했다. 고집이 강해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퇴임할 때 대통령에게 한 가지를 건의했다. '노동정책만큼은 지금처럼 법과 원칙에 근거한 기조대로 가 달라'는 것이었다."
-노사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 것은 경영계에도 책임이 있지 않나.
"물론이다. 예를 들어보자. 2004년 건강보험공단이 노조와 이면합의를 했다. 그래서 책임자인 이성재 이사장을 인사조치하자고 청와대에 건의했다. 한데 청와대가 감싸고 돌았다. 그래서 2005년에는 '앞으로 이면합의가 있으면 공개해서 공론화하겠다'고 공단 측에 미리 경고했다. 사용자가 분위기에 따라 (노조의 요구가) 억지인 줄 알면서도 들어주곤 했다. 이젠 이런 관행을 과감히 내던지고 원칙이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경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는.
"재계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강의할 때 꼭 부탁하는 게 있다. 노사관계에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약간의 성의만 가지면 된다. 교섭할 때만 마주앉지 말고, 평소에 고충을 처리해주는 등의 자세가 필요하다."
만난 사람=박의준 사회부문 부에디터
◆ 김대환 전 장관=2004년 2월 11일 취임해 2년 만인 2006년 2월 10일 퇴임했다.
취임 당시 그는 "노동부는 근로자만을 위한 부처가 아니다"며 "불법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재임기간 내내 그는 이 원칙을 지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구 계성고교에 다니던 1967년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벌이다 정학을 당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이수호씨는 당시 함께 정학을 당한 동기동창이다. 하지만 노동부 장관과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만나는 것을 꺼릴 만큼 서먹한 사이가 됐다. 노동계는 김 장관 퇴진운동을 폈다. 김 장관은 2004년 11월에는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로부터 '반개혁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1949년 경북 금릉 생▶대구 계성고, 서울대 졸업▶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박사▶한국노총 자문위원▶노사정위 신노사문화준비팀장▶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위원회 간사▶제21대 노동부 장관▶현 인하대 교수 -중앙일보 3월27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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