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Evan Almighty라는 영화을 보았습니다.
무어라 할까요. 희극이기도 하고, 공상영화이기도 하고, 종교영화이기도 하고, 환경영화이기도 하며, 정치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 사는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하원의원에 당선된 Evan의원의 정치구호는 '세상을 새롭게"였습니다. 그런데 등원하는 첫날, 신은 그에게 노아의 방주를 지으라고 부탁합니다. 이를 둘러싼 갈등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결국 그는 신에게 복종하고 배를 만듭니다. 사람들에게 홍수가 온다고 경고합니다. 수 많은 동물들이 이미 몰려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연히 비웃습니다. 각설하고, 마침내 비 대신 뚝이 터지면서 사람들은 겨우 그 배에 몸을 실어 난을 면합니다. 그리고 환경파괴가 우려되는 개발 계획에 관한 법안은 부결됩니다.
홍수의 상징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익히 아는 일입니다. 종말에 대한 경고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배를 짓는 일의 상징성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로 배를 짓는 일의 상징성에 관심을 기울일 때인 것 같습니다. 홍수가 닥칠거라는 우울한 전조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배를,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떤 설계를 하여, 언제까지 작업을 끝내야 하는지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설계하고, 일하고, 일하되 기한 내에 그 일을 끝낼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심신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배를 만드는 일에 대한 조롱과 조소는 언제나 그 일에 대한 신뢰를 넘어섭니다. 당연합니다. 결고 현실화될 수 없는 꿈의 선언이고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상황에서 동물들의 순종과 인간들의 조소를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제각기 자기 기능으로 배를 짓는데 돕습니다. 코끼리는 목재를 나르고, 다람쥐는 줄자로 길이를 잽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점점 광인이 된다고 여기는 Evan에 대한 연민과 분노와 적의를 감추지 않습니다. 마침내 공권력을 통한 탄압을 자행합니다. Evan은 옛날의 노아처럼 복장조차 달라집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잡고 사람들에게 닥쳐올 종말과 배를 짓는 당위를 호소합니다. 누가 보아도 광인입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이러한 절박한 때에 직면해 있습니다. 누구나 불안합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기 자기들의 우울한 종말을 예감합니다. 그래서 온통 스스로 살려는 몸부림이 처절하게 무섭습니다. 그러나 배를 짓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소문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할 일은 하나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배를 지어야 합니다. 우리를 비난하는 돌팔매가 비오듯해도, 사람들은 모두 돌아서도, 짐승같은 '우리끼리'라도 서둘러 배를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해야 하고, 그렇게 배를 짓는 모습, 서서히 드러나는 배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설계는 19세기를 겪으며 21세기를 조망하는 우리의 경험에 근거해야 합니다. 어제를 지향하는 오늘도, 내일만을 꿈꾸는 오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재료는 경험에서 얻은 실패와 성공의 고백과 증언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동물과 인간을 모두 아우르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닌 적의와 편애, 동질감과 이질감도 모두 안아야 하는 그런 인식에서, 누구에게나 선포해야 합니다.
시간은 언제나 기다리지 않습니다. 지금 발언하지 못하면 영원히 하지 못합니다. '지금' 사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우리 모두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배를 짓지 않으면 이미 늦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발언이 그 숫한 발언에 더해진 소리로 소음만을 키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침묵이 사자후도 침묵시키듯 어쩌면 우리는 침묵의 미덕으로 이 소음의 현장 안에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훨씬 나은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침묵조차도 발언된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침묵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발언은 이렇게 발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희극적인 결말을 보여준 감독의 지혜가 새삼 느껴졌습니다. 주인공은 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어색한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춤을 추자고 말하고는 스스로 몸을 움찟거립니다. 어차피 배를 짓는다는 일은 희극입니다. 그런데 그 희극이 이렇게 가슴깊은 감동과 용기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꽤 즐거웠습니다.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나서 이제는 내가 Evan이라는 엉뚱하고 철없는 자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요. 저는 결코 하원의원에 출마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배를 만드는 과제를 신으로부터 받지 못할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