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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인질이 된 우리 교육
서지문   |  2007-07-11 17:28:46  |  조회 2787 인쇄하기

  지난 달 노대통령이 전국의 대학총장들을 모아놓고 일방적으로 노무현브랜드 교육원론을 강의하고 대학총장들을 찍어 눌러서 소진된 대통령의 권위를 회복해보려 한 사건은 한국교육의 슬픈 초상이었다.  

  포퓰리즘의 위험이 상존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교육이 포퓰리즘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포퓰리즘의 도구가 되었다.  한국의 교육은 자라나는 세대의 지성과 능력을 일깨우고 배양해서 생을 즐겁고 유능하게 경영할 수 있게 하고 모두를 모범적 시민으로 그리고 최대다수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교육이 아니고 정치의 도구가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역대 정부의 표심을 겨냥한 교육불만층 어루만지기는 어느 계층의 교육불만도 해소하지 못하고 모든 피교육자를 정치의 볼모로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죄’로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지옥 속에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부모들은 그들을 지옥에 단단히 가두고 끊임없이 닦달하는 지옥문지기가 되었다.

  그보다 더 큰 비극은 그 시련으로 인해 학생들이 더 강인해지고 성숙되는 것이 아니고 의존적이고 타율적인 인간이 되어 창의력과 자발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시지옥을 피하기 위한 이민자, 교육이산가족이 무수히 생겨났다.  조기유학자 중에는 세계적 명문대학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되는 성공케이스도 있지만 소수의 혜성과 같은 인재의 그늘에는 조승희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고독과 울분과 열등감에 몸부림치는 수많은 우리의 가련한 청소년들이 있다.  

  연륜과 경륜을 갖춘 교육학자가 교육부총리가 되자 평생의 소신을 초개같이 버리고 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나라, 그래서 헌법에 보장된 대학의 자율권을 무시하고 정부정책을 무조건 따르라고 지시하는 나라에서는 ‘교육입국’은 한갓 꿈이다.    

  우리나라에는 교육을 정도(正道)에 올려놓아 줄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3일, 임시국회 마지막 날 자정을 5분 앞두고 여야의 야합으로 사학법재개정안과 로스쿨 설립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는 교육은 민심회유의 수단 또는 정치협상의 도구에 불과할 뿐임을 입증했다.  

  이번에 모든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서 고교내신반영율을 50%로 올리라는 요구를 거부한 대학총장들의 단호함과 교육부를 후퇴하게 만든 여러 대학 교수들의 집단의사표시는 일회성 행동으로 끝나지 말아야한다.  이제는 정말 대학 총장들과 교수들이 스스로 교육의 파수꾼이 되어 우리 교육을 이 바닥없는 나락에서 구해 올려야 한다.

- 고려대 교수, <<교수정론>> 논설위원
- <<교수정론>>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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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지옥의 아이들'도 아프고, '지옥의 파수꾼'도 아프디 아픈 묘사인데, 여기에 더해 교수들이라는 '우리'는 그 지옥을 교육부로부터 관리하라고 위탁받은 '순진한 피고용자'라는 더 아픈 묘사를 하고 싶은데, 그래도 이 아픔을 견디고 끊을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회성 행동으로 끝나지 않는 의연한 신념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행동하는 일이 바로 나 자신의 일이 되기를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좋은 친구의 '변신'을 보면서 거듭 그렇기를 스스로 기원해봅니다.   0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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