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착시켜야 할 토론문화
제목의 단어는 Jewish, 즉 유태인들이 행하는 그들 특유의 토론문화를 칭한다.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토론 참석자 1~2명이 끝까지 안건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특정 문제점을 갖고 붙들고 늘어지는 제도이다. 비록 토론 내용의 방향성과 도출된 결론의 큰 틀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굳이 반론을 제기하는데 그 이유는 토론 과제와 그 해결책을 잇는 과정에 모순이나 불합리성이 없는지 그럼으로써 잘못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토론 내용을 재검증하기 위한 것으로서 더 우수한 해결책을 마련코자 여러 다른 각도에서 반론해보고 토론의 전제 조건 등에 의문을 제기해 보는 그들만의 독특한 토론방식이다.
오늘의 우수한 그들의 두뇌집단을 양성한 것은 이 토론문화와 여기서 연마된 사고방식에 연유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토론 과정은 논리의 조립에 있어서의 애매한 부분을 제거하고 확실성을 높인다.
이러한 방법과 정신을 이용하여 각자의 지론을 부단히 자기 검증하는 것은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사고 공간 속에 자기 스스로를 몰입시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논리를 백지상태(즉 제로(零))에서 완전히 새롭게 조립하는 각자의 두뇌 훈련은 물론 그 결과 토론 자체의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토론 참여자의 출발점이 되는 특정 사안이 모두 똑같을 경우에라도 각자의 여러 가지 상이한 사고 공간으로부터 새롭고 신선한 발상을 도출해 낸다면 그만큼 많은 선택의 가지와 종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이중에서 최선의 것, 또는 최대 공약수적인 것, 을 골라내어 적시에 실행하게 된다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성공한 외국의 기업에는 토론장에서 “반론해야 할 의무(Obligation to Dissent)"라는 행동규범이 있다. 자기 스스로의 양심과 직업윤리에 입각해서 석연치 않을 경우에는 이런 뜻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반론할 의무를 토론 참가자에게 과하는 것이다. 비록 상대가 직장의 무시 못할 고객이건, 기업 선배이건, 나이나 지위에 무관하게 반론을 제기하도록 의무 지어져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맥킨지」사에서는 벌써 약 70년 동안 이러한 「반론의 의무」전통을 이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인간관계를 해치지 않을까, 장유유서의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상사. 선배의 기분을 해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꼭 하고 싶은 말조차 못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는 침묵해버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양의 기업에서는 전통적 조직이나 그 문화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토론자를 우대하고 아무런 반론 제기를 않고 침묵하는 자에게 불이익을 과하는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우리 전통적 문화나 도의 규범에 맞는 것이라고 믿는 과오를 이 급변하는 시대에도 우리는 아직 범하고 있다. 오히려 비록 부당한 주장이 제기되어도 이에 동조 내지 묵시적 지지까지 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말을 안 해도 이해해 주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 짐짓 이해하는 척하고 틀린 주장에 맞장구치는 행위, 신랄한 반론에 귀를 막아버리는 무사안일주의, 이미 실패로 귀결된 과거의 경험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우(愚), 이 모든 것은 지난 농경 시대의 유물인 동질화사회 풍조가 생성한 폐해가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왜 토론의 장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뒤돌아서서는 온갖 불만을 토하고 욕설까지 쏟아내는가?
물론 이런 현상은 모두 틀에 박힌 지식을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전달하는 우리나라 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이른바 평준화교육은 이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토론의 문화가 자리잡지 못하여 토론에 익숙하지 못한 면도 있을 것이다.
건전한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한다면 탈공업화시대 즉, 불확실성과 이질성, 그리고 다양한 지식이 지배하는 21세기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진다.
격렬한 토론을 거쳐 도출되는 결론에서 비로소 창조의 길이 열리고 발전의 토양이 생성되는 것이다.
오늘의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기에는 우선 우리 주변의 변화 하나하나에 대하여 왜 이렇게 변하는가?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출현한 변화의 진가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반복적으로 문답해봄으로써 이 토론에서 도출된 결론에 입각해서 과제를 구하고 이 과제를 구조화해서 다시 가설을 세워 일단 내린 결론이라도 정말로 올바르냐 여부를 재검증해 보는 과감성과 도전정신이 요구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지적으로 나태한 사람들에게서는 이러한 과정을 이겨낼 용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과오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끝없이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굴레를 끊어보려고 하는 문제의식과 고집스러운 인내심이 없다.
불굴의 정신으로 전인미답의 정글 속으로 주저없이 과감하게 돌진해 들어가지 않는다면
「정글의 법칙」을 익힐 수 없고 생존 능력도 배양할 수 없다.
새해에는 토론의 문화를 「악마의 사도」에서 배워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기업 구성원 모두의 발전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염원해 본다.
- 혜원학원 이사장
- <<한국금융>> 20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