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68년의 언론생활을 마감하였다. 신문과 방송의 언론을 모두 섭렵하였던 그는 CBS방송에서의 29년이 보람은 있었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하였다고 말한다. 어떻게 세상의 뉴스를 17분 동안에 상세히 전달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중매체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 것이 거의 20년이 되었다. 이 강의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학생들이 주요 뉴스를 어떤 매체를 통해 전달받고 있으며 또한 각 매체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어 질문을 한다.
처음 이 강의를 시작했을 당시에 학생들의 의견은 주요 정보원으로는 신문과 방송으로 반반이 나뉘어 졌고 매체에 대한 신뢰도는 신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방송 쪽으로 비중이 높아지며 신뢰도도 사건의 현장을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방송 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요사이는 아예 인터넷 매체로 대치되고 있다. 신문매체를 선호하는 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인터넷에 밀려 방송뉴스를 선호 한다는 학생의 수가 아주 적은 것을 보면서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를 실감한다.
하긴 빠르고, 편리한 것을 선호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기호와 인터넷의 속성이 맞물려 인터넷 선호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며, 뉴스의 생명인 정확성이 떨어지며,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각종의 낭설과 중상모략도 함께 수용해야만 하는 인터넷 뉴스를 오랜 세월 접하게 되면 과연 인간 사고의 틀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우려가 앞선다.
활자매체와 전파매체에는 사실상 커다란 차이가 있다. 활자매체는 직선적으로 사건을 발전시키며 수용자에게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자신의 이해 속도에 맞추어 수용시간의 조절이 가능하여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하지만 전파매체의 속성은 활자매체와는 아주 다르다. 텔레비전은 영상과 음향을 한꺼번에 눈앞에 펼치며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허용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수용하도록 이끈다. 방송과 인터넷의 뉴스는 아무리 깊이 다루는 뉴스라 해도 신문의 지극히 짧은 뉴스에 지나지 않으며 사건의 핵심인 클라이맥스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일도 마치 클라이맥스의 연속으로 되어 있어 항상 새롭고 신나는 일들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쉽게 싫증내고, 쉽게 바꾸며 조용하게 자신을 관조하고 명상하기 보다는 세상의 신기를 쫒아 파도를 타듯이 내닫는다.
요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때때로 의무 보다는 권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오류는 쉽게 잊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많음을 느낀다. 논리적으로 문제를 접근하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만 끝까지 고수하여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바탕이 되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생활에 너무나 깊숙하게 자리 잡은, 감각적이지만 논리가 부족한 방송과 인터넷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크롱카이트의 말과 같이 신문은 역사를 지키는 보호자이다. 신문이란 창을 통해 세상을 접하며 동시에 논리적인 사고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하루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 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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