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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정진홍   |  2007-09-11 08:27:37  |  조회 3083 인쇄하기

 사람살이가 언제인들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겠습니까만 요즘 우리 사회형편은 참 우울합니다. 좀 잠잠해지는가 하면 다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더 잦아지고 혼탁해집니다. 그리고 그 복판에는 반드시 이른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기야 ‘다스림’이라고 하는 것이 삶의 구석구석을 누벼 삶을 삶답게 하는 기능이고 보면 그 일을 하는 주체의 힘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정치적’이지 않은 데가 없고,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며, 정치인이 들어서지 못할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치는 마땅히 그러해야 하고, 정치인은 또한 당연하게 그렇게 살아야 뭇 사람의 삶이 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사태는 심각해집니다. 그러한 힘을 행사하는 정치와 정치인의 행실이 자기나 자기또래나 자기가 속했다고 여기는 끼리끼리의 안위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시종을 일관하면 사태는 기막히게 비참해집니다. 그들에게 다스림의 권력을 위임한 뭇사람들의 삶은 그야말로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나친 표현인지는 몰라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겪는 정치의 현실이 바로 그러한 것 같습니다. 

  속상하고, 화나고, 어이없는 일에 대한 허탈감들은 부지런히 삭이고 풀고 잊으면서 그럭저럭 지낼 수 있습니다. ‘나이 값을 해야지!’하고 마음먹으면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인 걸, 뭐!’하면서 제법 도학자적인 여유도 누리지 못할 까닭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들을 생각하면 저만 생각하며 그렇게 한가로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듭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새 세대는 ‘역할 모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이 제 마음을 저리게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스스로 창조적인 주체라고 하는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의연하게 살아간다 해도 우리는 인류의 긴 연쇄의 사슬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인과 성자의 삶의 자취를 애써 찾는 것이 사람살이의 실제 모습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배워 따라야 할 역할 모델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탈선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렸을 적에 선친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어느 순간 아버지 노릇을 하는 저에게 어떤 형태든 ‘아버지’라는 역할 모델이 내 성장과정 안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제 인격의 ‘결손’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노릇하기가 힘들었고, 또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금 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소박하게 말하면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대통령이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될지, 국회의원이란, 장관이란, 고급관리란, 교수란, 박사란, 기업가란, 예술가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모델을 설정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하기야 반면교사란 말도 있고 보면 오히려 자라는 아이들이 나중에 오늘 우리가 겪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통해 참으로 대통령답고, 장관답고, 관리답고, 교수답고, 박사답고, 기업가답고, 예술가다운 모델을 건강하게 꾸릴지도 모릅니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하지만 걱정입니다. 아무리 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욕하면서 배우고 따르는 일’이 더 흔한 나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길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지금 사태를 거울삼아 그렇지 않기를 바라도록 우리가 애쓰는 일밖에 없습니다. 공연히 다 극복하고 초연한 양 점잖은 것도 좋지만 오직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글로 담는 일이 조심스럽고 겁이 납니다. 공자님께서 논어에서 이러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不在其位 不謀其政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일을 꾀하지 말라). 정치의 정자도 모르면서 정치가 삶을 혼돈스럽게 하는 주역이라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주책없는 소인배의 뇌까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답답한 마음 풀지 않으면 어떻게 호흡을 이을 수 있을까 하는 건방짐 때문에 공자님 말씀도 어기며 이러한 공연한 말씀을 드립니다. 

  가을인데, 결실의 계절인데, 저울에 올라가 내 삶의 무게를 달아봐야 할 때인데, 아무쪼록 건강하시길 빕니다. *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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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소인배'가 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치를 논할 길이 있는 것을 몰랐군요. 새로운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를 살핀다는 것, 문학을 읽는다는 것 등의 의미가 새삼 귀해집니다. 거듭 거듭 감사합니다.   07-09-21  
김문일
오늘 인현로타리 크럽에 연사로 삼한지 작가 김정산씨를 모셔서
우리 시대가 꼭 읽어봐야할 역사 소설임을 들었습니다.
저는 인현로타리 회장으로서 인사말에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세상이 혼란스럽지만 不在基位 不謀基政 하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소인배가 될수없고 작가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나
들어보자 했더니 선생님 덕분에 강의가 끝나고 나서
제가 굉장히 유식한 사람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깨우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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