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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손자녀석을 데리고 용산 국립박물관에 다녀 왔습니다. 한껏 넓어 숨통이 트였습니다. 날은 쾌청하지 않았지만 구름 사이로 가끔 드러나는 파란 하늘이 참 좋았습니다. 빼곡이 둘러싼 높은 아파트들이 남쪽이나 서쪽 하늘을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주 멀리 있어 동화 속에 나오는 성벽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석구석 참 잘 가꾸어 놓았더군요. 마당이 아름다웠습니다. 넓이뿐만 아니라 정성스레 가꾸는 손 닿지 않은 구석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가을이 "이것이 가을이야!" 하고 제 모습을 그 대로 담아놓은 것 같은 정취가 물씬 했습니다.
하늘과 물과 바람과 꽃과 나무와 바위와 선의 굽어지고 폄과 색의 희고 노랗고 파랗고 빨간 어울림과 크고 작은 바위와 높고 낮은 건물의 선과 게다가 탑이니 석상이니 하는 세월의 토막들이 마주 서고 겹쳐 있고 서로 떨어져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문득 문득 아득한 시절과 이른 옛날과 지금이 동시대 동공간에서 어우러져 가을 볕에서 존재자체를 감사하는 축제를 벌리는 한 가운데 제가 손자녀석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축제의 주제는 감사이고 피부로 느끼는 주제는 풍요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이 억지이지 않았습니다.
이 고마운 공간이 '젊은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또한 고마웠습니다. 틀림없이 밤을 지샜을 어떤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이 생각은 마땅히 이곳에서의 주제가 우리 '늙은이'들에게 감사와 풍요여야 한다는 것을 되다짐하게 해주었습니다.
겨우 만 여섯 살 손자녀석이 제 할아버지가 가지고 간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온통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여기 풍경이 좋네!" "이것은 기억해야 하니까 설명한 글도 찍어야지!"
할머니와 그 녀석은 저녁 내내 컴퓨터에 앉아 그 날 찍은 사진을 보면서 키득거렸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밤 사이에 할머니는 그 녀석이 찍은 247컷의 사진을 CD에 구워 <정상헌, 박물관에 가다. 최초의 사진 작품, 2007년 11월 10일>이라고 써서 잠든 그 녀석 머리 맡에 놓아 주었습니다.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점 마음이 정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회의'로 치닫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19세기를 되살피고 21세기를 내다 보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 삶을 추스르자고 다짐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달력이 겨우 한 장 남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솟습니다. 그런데 참 고마운 일입니다. 우리 그래도 많은 고민들을 공유했고, 그 만큼 외롭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가을도 깊고 곧 겨울일터인데 짬 내셔서 박물관 마당을 손자손녀 손잡고 한 번 거닐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1921의 삶의 모습이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니 그렇게 하면, 우리 마음이, 우리 삶이 훨씬 가볍고 따듯해질 것 같습니다.
" 이 사람, 언제부터 박물관 홍보에 나선 거야?" 그러실지 모르겠습니다. 홍보비 받은 것 한 푼도 없습니다. 거기 가을 낙엽이 이런 이야기 꼭 하라고 해서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아직 지르지도 않은 소리에 1921이 메아리 치기 때문입니다.
가을 풍성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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