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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경 장관을 추모하면서
박수길   |  2007-11-20 06:02:16  |  조회 4245 인쇄하기

그분이 남긴 精神的 遺産
-이원경 장관을 추모하면서-

이원경 전 외교부장관이 별세하신지 벌써 2개월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외교분야에 오래 몸을 담았던 우리들은 그분의 중후했던 인품을 잊지 못한 듯 만나면 그분에 관한 일화들을 자주 이야기 하게된다. 그분은 정부, 재계, 언론계, 체육계 등에서 요직과 수장직을 역임하면서도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는 폭 넓은 지도력, 가식없는 행동, 항상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우고 부하들을 사랑하는따뜻한 마음때문에 그분의 인격에 매료되어 외교부 안팍에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지난 8월15일 천안시 병천면 천안공원 묘지에서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외교계, 언론계, 재계 등 분야의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면서도 엄숙하게 치루어진 영결식에 참석한 후 버스로 서울에 돌아오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철학자 Heideger는 “인간은 죽음에의 존재”(Sein Zum Tode)라고 했고 하늘이 주신 생명을 하늘에 도로 돌린다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밖에 없는 생애를 어떻게 살며 어떠한 발자취를 남길 것인가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삶의 완성을 향한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이원경 장관이야말로 한 生涯를 값지고 아름답게 마친 대표적인 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장관께서 별세하시기 일주일전에 예년과 같이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몇 분을 모시고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하여 댁으로 전화를 했다.
마침 사모님이 전화를 받았는데 사모님은 이장관께서 어제 중앙병원 중환자실에서 퇴원했기 때문에 면회가 가능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평소 남에게 폐가 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절대로 하시지 않는 사모님께서 “면회가 가능하다”는 말씀을 들은 나는 불안한 예감을 갖고 그 다음날 병원을 방문했다. 이 장관께서는 병상에서 산소 마스크를 낀 채 애써 하신 말씀들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분은 그때 이미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한 듯 “나는 저 세상에 간다”고 하시면서 내 손목을 꼭 잡으셨다.
말씀은 똑똑하게 이어졌으나 나는 그분을 더 피로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자리를 떠났는데 그때 손까지 흔들면서 잘 가라고 하셨다. 나는 문득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설교에서 내세를 믿는 자기도 죽음을 생각할 때 순간적으로나마 느낀 공포의 경험에 언급했는데 이장관께서는 이미 그때 확고한 사생관으로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듯 보였다.
병실에서 함께 나온 이장관의 아드님은 나에게 의사의 권유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퇴원, 최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가 남기신 세가지의 유언을 나에게 귀뜸해 주었다.
정부 공직자에게 폐가 될 수 있으니 외교부장을 하지 말 것. 조의금을 받지 말 것. 주검을 화장하여 선친들의 유골과 함께 풍산공원 납골당에 안치할 것 등이었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장관께서 남겼다는 유언에 숙연함과 감동을 느꼈다. 오늘날의 세태속에서 그러한 유언을 남긴다는 것은 비단 그분의 가족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들어선 세대나 다음세대 모두에게 귀중한 정신적 교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유언은 가족들에 의하여 철저히 준수 되었다.
나는 1960년대 초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이원경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의 훌륭한 선배들에 관한 일화를 많이 듣고 또 알고 있었으나 그분과 직접 일하게 된 것은 86년 초 정무차관보로 임명된 후였다. 본부재직 중 한가지 잊을 수 없었던 일은 이 장관의 사표제출 사건이었다. 이장관은 체육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중 83년 10월 북한에 의한 아웅산 테러로 이범석 장관이 돌아가시고 외교적으로 사태수습이 어려운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1986.7.4 주한 미국대사는 관례에 따라 관저에서 독립기념일 Reception을 주최 했는데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국정부의 지시에 따라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 자리에 초청했다.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강력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외교부가 철저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외교부차관, 차관보, 미주국장을 해직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원경장관은 이러한 지시를 받고 난 후 전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는데 외교부가 잘못했다면 장관이 책임질 일이고 그 책임을 결코 부하에게 돌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전 대통령은 당시 좋지 않던 국내외 여론을 고려하여 사표를 반려하고 간부들은 위기를 모면했다. 이사건의 전말은 후일 이장관에 의해서가 아니고 청와대를 통해서 알려졌는데 외교부 간부들은 그의 공인으로서의 거취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이원경 장관은 2년여의 외교부장관 재직중에는 이데오로기 보다 실리추구의 실용주의 외교에 치중했다. 이러한 외교정책 방향은 1985년 3월 중국 어뢰정사건 처리에서 명백하게 나타났다. 1985년3월 선상반란으로 혼란에 빠진 중공해군 어뢰정 한 척이 소흑산도 부근에 표류했다. 그 어뢰정이 우리어선에 의하여 군산항에 예인되자 중공군함 3척이 위협적인 자세로 한국영해를 침범한 사건이다.
당시 우리와 국교를 맺고 있던 대만 정부는 선상 반란에 가담한 승무원들은 정치적 망명자라고 주장하고 그들의 대만행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고려한 장기적 안목에서 어뢰정과 전 승무원을 영해 밖으로 추방하는 형식으로 중국측에 돌려 보냈다. 그런데 이러한 중대한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는 이원경 장관의 확고한 국익추구 입장과 결연한 태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사건의 중요성 때문에 각의에서 이 문제가 토의 되었는데 대부분의 각료들은 망명을 허용하자는 입장이었고 오직 이장관만이 어뢰정에서 일어난 반란사건의 관할권은 국제법상 어뢰정 소속국인 중국이 갖고 있으므로 어뢰정을 중국으로 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 당시 노신영 총리의 동의를 얻어 그 입장이 관철되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86년 에티오피아가 말크스주의자인 맹기스트 중령의 형명정부하에 있을 때 에티오피아에 파견되어 있던 북한의 농업기술자가 한국대사관으로 진입, 망명요청을 한 사건이다. 당시 김득보 주에티오피아 대사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007작전 형식으로 동인을 사우디로 탈출 시킬 것을 건의 했으나 이장관은 그 제의를 수용하지 않고 외무성에 망명을 정식 통고하고 에티오피아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정치 망명이 허용되도록 요청할 것을 김대사에게 지시했다. 당시 이원경 장관은 친북적인 맹기스트 형명정권이 구실만 있으면 한국과의 단교를 선언할 것임을 예견하고 그들에게 그 구실을 제공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원칙대로 풀자는 입장에서였다. 결국 맹기스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약속과 자국의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북한 농업기술자를 북한으로 송환 했지만 결국 단교 구실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정부는 에티오피아 정부가 북한 농업기술자를 송환 할 경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보장을 북한으로부터 받도록 요청했고 그 요청은 북한이 받아 드렸다고 우리에게 통보해 왔다. 
이장관은 노태우 대통령의 강력한 권고에 의하여 88-91 약 3여년간 주일대사를 역임했는데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그때 이장관께 보인 외경심은 주일한국대사관 직원들의 큰 자랑이고 긍지였다. 또 당시의 한일관계는 고질적인 역사문제와 영토분쟁에도 불구하고 이장관의 조용하면서도 효과적인 지도력으로 어느때보다 우호적이고 안정적인 시기였다고 당시 대사관 직원들은 회고하고 있다.
이 장관이 별세하신 직후 중앙일보는 이장관이 주일대사 시절에 초당외교의 선례를 남겼다고 전제하고 88년 8월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도쿄를 방문하자 이장관은 한일 관계에 대한 상세한 브리핑과 함께 정중히 만찬을 주최했는데 이러한 대접은 김총재를 비롯한 민주당 간부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고 보도했다. 
이원경 장관은 주변의 사람들을 감화 시킬 수 있는 도덕적 영향력을 가졌고 또 옳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후배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준 분이었다.
德이 사람답게 사는 根本이고 人格의 核心이라면 이러한 면에서 이장관은 후배들로부터 크게 존경받는 人格者였다.
나는 中庸思想이 말하는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행하는 것이 사람의 길(誠者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상기하면서 이원경 장관이야말로 이러한 사상을 몸소 실천한 분으로서 그분의 정신적 유산은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간직 될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 

  박 수 길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유엔한국협회명예회장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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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이렇듯 가슴 깊은 속으로부터 존경하고 추모할 수 있는 분을 모시고 계신 분은 행복하십니다.
함께 일을 하셨으면서도 그렇게 후배들부터 존경받으실 수 있는 분도 참 행복하십니다.
아름답고 부러운 모습을 뵙고 오늘 하루 저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참 따듯한 정경이니까요.   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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