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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입니다.
어제 오늘이 이어진 세월인데 마디를 지어 어제 한 해가 끝났고 오늘 새 해가 시작한다고들 말합니다. 생각할 수록 어처구니 없게 미련한 것 같기도 하고 기막히게 지혜로운 일 같기도 합니다 .
무릇 세월을 따라 살면서 그 안에 있는 이른바 시간 안의 존재가 사람인데, 그래서 온갖 한계 중에서도 시간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 인간의 슬픈 조건이기도 한데, 사람은 바로 그런 조건 속에서 아예 시간을 뛰쳐나와 시간을 단절하면서 끝이라 선언하고 다시 처음이라 그 끝을 이어 발언하면서 끝내 시간 안의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털어버립니다. 적어도 의식의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삽니다. 시간에 예속된 현실 속에서도 시간을 창조하겠다는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마련하고, 지키고, 전승하는 이른바 제의라는 것들은 한결같이 바로 시간의 단절과 새로운 처음을 그 구조로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절후가 그러하고, 생일이 그러하고, 제례가 그러하고, 졸업이 그러하고, 은퇴가 그러하고, 혁명이 그러합니다. 예배도 미사도 예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상을 단절하고 깨달음과 회개로 채워진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간단절의 의례인 셈이지요.
그런데 또 새해입니다. 철저하게 어제를 어제로 끝낸 사람만이 새해를 새것으로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런 의례를 행하는 사람만이 새해를 새것으로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선지 읽은 글귀가 생각납니다. "전통의 계승과 창조는 지난 것에 새것을 덧부치는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온고지신도 그런 생각의 다른 표현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도 새 장을 연다고 합니다. 우리 1921도 이제는 새 장을 열어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새해니까요.
시간단절의 의례, 그것의 수행이 곧 삶을 삶답게 하는 틀이라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떠오릅니다. 우리는 시간 안에 있지만 동시에 시간 밖에 있는 존재라는 자존을 가지고 새해를 살고 싶습니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시간을 창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새해, 댁내 제절이 균안하시길 빕니다. 새해에는 더 자주 뵙겠습니다.
정진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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