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나이 하바드 대학교수는 지난 수년간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에 대한 일방주의적 군사정책을 맹렬히 비판해 왔다. 그는 군사력으로 상징되는 경성국력(Hard Power)이 주권국가의 독립을 보존하는데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만으로는 국제 테러리즘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고, 경성 국력이 연성 국력( Soft Power)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연성국력이란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을 말하는데, 물리력의 사용은 반드시 상대방의 반발을 불러 오지만, 연성 국력은 그렇지 않으므로 테러리즘과 같은 여러 나라의 협력을 전제로하는 세계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증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주로 소프트파워를 통해서 세계문제를 해결하여 온 유엔의 활동이 정통성을 인정받고 평가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최근 제네바에서 개최된 인도적 지원에 관한 유엔사무총장 자문단 회의에 참석하였다. 토의 의제는 유엔이 2006년 3월에 5억불의 기금으로 발족한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Central Emergency Response Fund: CERF)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력충돌 또는 자연재해로부터 인명을 구제하자는 문제였다. CERF는 지난 2년 동안 콩고 민주공화국, 수단, 스리랑카 등 인도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59개국에서 긴급한 인명구호사업에 무려 6억불의 자금을 신속히 또 적기에 방출하여 인명구호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2004년 동남아 해역을 강타한 쓰나미, 작년의 레바논 내전, 오늘의 Darfur사태 등 긴급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간인을 위하여 적기에 제공되는 인도적 지원은 글자 그대로 죽음과 삶의 차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엔은 평화와 안보, 개발, 인권을 3대 축으로 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의 추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인류는 현재 전례가 없는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였으나 아직도 지구상에는 1달라 미만으로 하루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빈곤층이 세계 인구의 1/5을 차지하고 있고 또 무력충돌 그리고 기후변화와 연관된 천재지변 등으로 인하여 인명상실과 경제, 사회적 피해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국제문제해결을 위한 각국의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매우 절실한 과제이다.
한국은 CERF기금에 2006년 5백만불, 금년도에 200만불의 기여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인도적 지원은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향상시키고 국제위상을 높이는 국제적 투자라는 점에서 우리의 연성국력을 축적하고, 창출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또한 지난 수년 동안 개발원조의 점진적 증가와 개발경험전수, 해외긴급구호체제 수립 그리고 이라크 재건과 아프리카 개발을 포함하는 취약국가와 최빈국에 대한 지원확대 등을 실천하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가진 우리나라 국력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며, 우리 나라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 평가도 매우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2006년 한국의 공적 개발원조는 약4억5천만불로서 우리의 GNP대비 0.05%에 불과하고 OECD그룹의 연평균 원조규모인 GNP대비 0.3%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한국의 유엔분담금도 정규분담금이 년6천만불, PKO특별분담금이 1억불, 사업분담금은 4천만불로 전체 유엔회원국 중 약 11-12위권에 있으나 인도적지원을 포함하는 사업분담금은 25위 정도에 그치고 있다.
내년 2월이면 이명박정부가 출범한다. 세계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가고 빈곤과 저개발이 세계평화에 대한 중대한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는 오늘날 무력에 의한 안보보다 개발을 통하여 빈부국가 간의 격차를 줄이고 세계빈곤층에 최소한의 기본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인간안보가 21세기에 인류가 직면한 도전이다.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으로서 한국이 이제 능력에 걸맞는 ODA와 인도적지원, 평화유지군 증파 등 소프트파워의 활용을 통한 외교선진화를 가속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본다.
고려대학교 석좌교수
유엔한국협회 명예회장
박 수 길
<2007년12월25일자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