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적인 광복, 역사적인 건국 8.15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나라 대한민국!, 열정적인 젊은이들의 외침 대한민국! 그러나 현실에서 난무하는 부정과 폄훼. 이 모순과 이율배반의 뿌리는 … ”
얼마 전 끝난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전 월드컵,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에서와 똑같은 열정이 넘쳐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과 폄훼가 난무한다. 이러한 이율배반(二律背反)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을까? 그 의미와 가치를 모르고 무작정 외치는 “대한민국”은 요즘 무척이나 공허하게 들린다.
이러한 모순의 뿌리는 1948년 건국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할 것 같다. 2008년 8월 15일은 광복 63주년이 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였다. 건국60주년 행사는 8월 15일이 광복일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건국일인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가운데, 건국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고, 세간의 주목을 끈 것과 함께 많은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건국60주년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역사관의 혼란을 여실히 보여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월 15일은 감격적인 광복절이자 역사적인 건국절의 의미를 공히 갖고 있는 날이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폄훼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의 날이 아니다. 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은 대한민국 건국의 기점을 1948년이 아닌 다른 년도로 잡아야한다는 주장들이었다. “건국은 단군 할아버지 때 이미 한 것 아니냐?”는 식의 수준 낮은 논의는 민족과 국가를 혼돈하는 한국 특유의 민족지상주의에서 빚어졌기에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낀다. 그러나 건국의 기점을 1919년으로 잡아야한다는 국사학계 일각의 주장은 적어도 논의할만한 가치가 있다.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의 기점으로 잡아야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국가정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음미할 필요가 있다.
건국시점논란 1919년인가? 1948년인가?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여러 선각자들의 노력과 투쟁이라는 밑거름이 있었기에 탄생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3ㆍ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등으로 상징되는 애국정신을 계승했고 독립을 향한 간절한 염원과 노력, 투쟁과 희생에 힘입어 탄생했다. 따라서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1919년 이전에도 존재했던, 우당 이회영선생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독립 노력의 가치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바는 조선왕조체제가 수립하는데 실패했던 독립된 근대국가로의 이행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연구하는 외국학자들은 1919년을 건국의 기점으로 잡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이유는 국가의 3대 요소가 주권, 영토, 국민임을 상기할 때, 1919년 생겨난 임시정부는 이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다 결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임시정부가 진정한 ‘건국’에 대비한 ‘건국강령'을 1941년에 발표했으며, 해방 직후 여운형 선생이 '건국’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온전한 국가를 세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19년을 포함한 1948년 이전의 역사는 바로 정식으로 대한민국을 출산시키기 위한 산고의 시간이었다고 해석해야 옳다. 임시정부를 포함해서 수태와 임신기간의 고통이후 비록 건강한 옥동자는 아니지만 아이를 분만한 것이 바로 1948년이었다. 특히 해방부터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까지의 시기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또 하나 통탄할 일은 좌파 지식인들이 그동안 임시정부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별로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 건국을 아예 부정하면서도, 건국기점 논란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했단 사실이다. 언제 좌파들이 임시정부를 그토록 인정했기에 이런 논란에 가세해서 1948년의 의미를 격하한단 말인가.
건국기점 논란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한 좌파 지식인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도 불완전했고 상처투성이였다. 미화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일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유롭고 부강한 나라를 이룩했다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완전했던 존재가 아니라, 건국이후 진정한 근대적 국민국가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에도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는 국가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유일한 국가이기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건국은 “민주공화국”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은 불완전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차선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나라인가를 바르게 조명하고 건국에 관련된 근거 없는 주장을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자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기억의 공유’를 위한 작업이다. 이는 맹목적인 자화자찬과도 구별된다. 즉, 국민들 사이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통해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갈등은 계속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현행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은 대한민국은 자발적 국민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단정세력에 의해 수립된 정통성이 결여된 정체(政體)이고, 남한의 정부수립이 민족분단을 초래했다고 서술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남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거를 치러 국가를 수립했다고 동정적으로 서술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초대 정부는 정당한 국민투표를 거쳐 탄생하였으며, 사회주의자들의 대다수도 참여한 가운데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리고 북한에선 이미 소련에 의해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계획이 먼저 치밀하게 전개됐다는 것이 공산권 붕괴로 인한 비밀자료의 공개로 밝혀졌다.
건국과 광복은 공존의 존재
오는 8.15를 맞아 다시 한 번 강조해야할 점은 1945년 광복과 1948년 건국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공존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시기 선각자들의 노력 속에서 대한민국의 씨앗은 뿌려졌고, 비록 자력에 의한 독립은 아니었으나, 독립 이후 민주공화국을 세울 기틀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해방이후 미국과 UN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이와 함께 확립된 헌법의 기초 위에 자유민주주의가 점차 확립되어가는 발전적인 역사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아야한다. 우리는 이제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의 의미를 새롭게 평가해야한다. 즉,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법치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건강한 시민사회와 근대 국민국가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문명사적 의의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