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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의 사임 발표를 보며, 한국정치를 생각한다.
박길성   |  2010-08-04 15:21:54  |  조회 3761 인쇄하기

정운찬 총리의 사임 발표를 보며, 한국정치를 생각한다.

 

박길성(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정 총리의 이미지와 콘텐츠는 교육이고 경제이며 학자적 풍모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하여 정 총리의 강점은 조금 거칠게 얘기하면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강점은 배신자라는 비난으로 돌아왔으며 ---”

 

지난 29일 정운찬 총리의 사임 발표가 있었다. 총리 재임기간 만큼이나 짧은 발표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회한이 묻어 있었고, 세상의 풍파가 담겨져 있었으며, 학자의 풍모가 배어 있었다.

 

“아쉬움과 자책감을 뒤로 한 채 모든 책임과 허물을 짊어지고 이제 국무총리 자리를 떠나고자 합니다.”의 표현에는 정 총리의 인간적 체취가 그대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생각했던 일들을 이뤄내기에 10개월이라는 시간은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너무 험난했습니다.”의 대목에는 ‘한국사회, 한국정치,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국사회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꾸고 써야할 인재 하나를 또 버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정 총리는 세종시 문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이것으로 정치의 운명이 결정된 셈이다. 사실 정운찬 총리의 이미지나 콘텐츠는 세종시와 거리가 멀었다.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이미지도 아니었고 콘텐츠도 없었다. 그렇다고 정 총리가 시쳇말로 완장을 찬 돌쇠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평가하든 정 총리의 이미지와 콘텐츠는 교육이고 경제이며 학자적 풍모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하여 정 총리의 강점은 조금 거칠게 얘기하면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강점은 배신자라는 비난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진영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의 힘의 구도는 매우 취약하였다. 다소 박하게 종합하면 재임 기간 동안 전혀 다른 일을 한 것이다. 성공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한 이른바 3C의 조건(concept, contents, consistency) 중에 그 어느 하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왜 그다지도 험난한가. 무엇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가장 낙후되고 사회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있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리나라 정치인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정치란 타협과 절충의 기술이다. 정치는 도구적 수단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치는 이상(理想)의 무게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 정치 이상을 앞세우며 규범적인 판단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으며 공허한 담론 속에 감정적 극단으로 서로를 몰아치는 비정치적인 행태만이 난무하는 것이 오늘의 한국 정치지형이다.

 

정치는 상대적이다. 나의 입장 못지않게 다른 입장도 나름의 논거와 이유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의견, 다른 세력과 대화하고 타협하고 설득하고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다. ‘나의 소신이다’며 못을 박아놓는 것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다른 표현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정치인이다. 정치를 해야 할 정치인이 정치를 하지 않을 때 국민은 행복에서 멀어지고 국가의 품격은 떨어진다.

 

정치란 강자의 양보를 끌어내는 것이다. 정 총리는 사임의 변에서 용산문제 해결을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통합과 소통의 최대 업적으로 용산문제 해결을 떠올린 것이다. 통합과 소통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를 풀어가는 가늠자가 되기 위해서는 강자가 손을 내밀고 무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소통하고 통합할 것이냐는 정부가 먼저 답을 내놓는 것이 상식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소통과 통합은 정부가 맡은 가장 중요한 직무고, 정부는 그것에 대해 무한한 책임이 있다. 무릇 한 사회에서 소통과 통합이 절실한 쪽은 사회경제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총리로 있으며 많은 곳을 방문하고 여러 정책을 만들었음에도 용산문제 해결을 가장 보람 있었다고 회고하는 것은 소통과 통합은 일차적으로 강자의 의무감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성찰임이 분명하다. 근자에 들어 대통령이 서민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바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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