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웬 보수?, 진보?
이주흥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재판관에게는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된 이념보다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수호의 의지가 절실히 요청된다. 결국 재판은 진보, 보수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헌법적 가치로 수렴 귀결되어야 --- ”
헌법재판소 창립 22주년을 맞아 이강국 소장은 2010.9.1.자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와 진보가 다른 한쪽을 타도하거나 부정하려고 사생결단식으로 싸워서는 안 되고, 건강한 보수, 책임 있는 진보로서 소통, 공존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표시로 보여 진다.
사회 전 분야에 만연된 보수 진보의 이분법이 이제 사법의 영역에서도 종종 눈에 띤다. 최근 들어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나 대법관의 선출 시기가 다가오면 어떤 경력과 성향의 재판관, 대법관을 뽑을 것인가에 관하여 관심이 쏠린다. 사회단체는 유력한 후보자의 재판결과를 분석하면서 저울질한다. 해마다 걸림돌 혹은 디딤돌 판결을 뽑아 好 不好를 나타냄으로써 향후 재판이나 고위 법관 선발에 있어 영향을 미치려고 하고 있다. 특히 진보단체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인적 구성에 있어 보수와의 균형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취향에 맞는 재판관을 임명하고 싶어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적이라고 기대되는 대법관, 재판관들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로 들어왔다.
또 언론에서도 재판관들의 이념적 분석을 통하여 판결 결과를 예측하고, 선고 후에는 이런 잣대로 판결을 분석하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띤다. 재판관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출생환경, 경험 등에 의하여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편견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자기가 맡은 사건에 대하여 그 나름대로의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 있고, 어떤 정치적 경향을 띨 수 있다. 분쟁 종식을 위해 충돌하는 가치, 이익 사이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은 결정을 내림에 있어 어떠한 편견이나 특정 세계관, 정치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는 사법의 속성이다. 재판관에게는 이념면에서 보수, 진보 어느 한쪽으로의 傾倒보다는 균형과 중립이 요구된다. 재판관은 보수, 진보의 도식적 카테고리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고, 사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재판관에게는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된 이념보다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수호의 의지가 절실히 요청된다. 결국 재판은 진보, 보수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헌법적 가치로 수렴 귀결되어야 한다. 미국 오크너 전 대법관의 말처럼, 대법관이나 재판관의 이념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헌정질서와 가치를 지키려는 헌법수호 정신이다. 보수와 진보는 헌법적 원리 안에서 논의를 벌여야 하고, 자유 민주 헌법질서와 가치의 틀 안에서만 공생,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비단 정치적 이념에서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모습은 예컨대 사형제, 간통죄 존폐나 안락사, 낙태 허용 여부에 있어 보수는 현상유지, 진보는 변화를 택한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방어적 성향을 지녀 다소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고, 규제, 정체, 답답함, 과묵함 등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이에 반해 법률문외한인 일반인은 자유와 정의에 매료되고, 이는 진보 성향에 부응한다. 그래서 외형상 진보가 그럴 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정의 실현이 진보만의 몫인 것은 아니다. 실질적 정의의 실현은 현실과 갭이 있기 마련이고, 그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에 있어서 속도의 완급 조절과 방향 조정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법적 안정성의 측면이 강조된다. 그런 점에서 자유와 안정은 역사의 발전과 맞물려 늘 충돌하기 마련이고, 실제 분쟁해결에 있어서 정의와 법적 안정성 어느 것을 우선시킬 것인가가 재판의 최대 화두이다.
사회적으로 영향이 큰 판결 결과를 놓고 보수, 진보 어느 한쪽은 크게 반기고, 어느 한쪽은 세력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이 나온 것 자체가 사회 변화에 있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재판관이 교체되면 언제든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소수의견은 어차피 내려져야 하는 결정이 자기 뜻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용인하여야 한다.
이는 변화가 일어나면 보수 측에게, 변혁에 실패하면 진보 측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불복종이나 반발이 아닌, 승복과 기다림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대한변협 주최 2010년 변호사대회에 참석한 스티븐 잭 미 변호사협회장은 “판결에 대한 승복문화가 미국 사법시스템을 지탱하는 힘” 이라고 했다. 물론 결정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사회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물리적 힘이나 세의 과시, 집요한 비난, 인신공격이나 명예훼손 등은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로 진입하는데 최대의 장벽이자, 극복되어야 할 의식 차원에서의 최대 과제이다.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과 합리적인 이성이 작용하여야 한다. 이런 성숙된 자세야 말로 21세기에 우리 국민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 변화의 물꼬를 확 틀 수 있는 대법관, 재판관을 뽑는데도, 이번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보듯이, 국민적 관심은 총리나 장관 인선에 휠씬 미치지 못한다. 후보자가 헌법수호정신과 열린 마음, 유연한 자세를 가졌는지 국민 모두가 면밀히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이주흥 :
(재) 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겸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
법무법인(유) 화우 대표변호사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