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통합론에 묻는다
홍진표(계간 시대정신 편집인)
“진중권씨는 민노당 주류(NL파)에게 ‘민노당 내 종북파가 진정으로 섬기는 당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이라는 비판을 한 바 중북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통합야당이 출범하더라도 한 지붕 두 가족의 운명을 피할 수 없어...”
1. 6.2지방선거의 야권연대
지난 6.2지방선거는 한국정치사에 특기할만한 사례를 남겼다.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과 민노당이 전면적인 선거연합을 이룬 것이다. 그 결과 민노당은 인천(남동구, 동구)과 울산(북구) 등 3곳에서 구청장을 배출했다. 선거연합이 없었다면, 민노당은 적어도 인천에서는 구청장 당선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선거연합으로 얻은 이익은 천안함 역풍 같은 다른 요소들이 있어서 쉽게 추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경남, 강원, 충북의 도지사 당선, 수도권의 기초단체장 싹쓸이 등의 압승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경남, 강원, 충북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약세지역인데, 의외로 민노당은 강세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민노당은 경남에서 10.62%의 (비례)정당득표를 기록했고, 강원과 충북에서도 6%가까운 지지율을 얻었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는 6~8%차이로 한나라당 후보를 이겼으니 민노당표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항상 근소한 차이로 결판이 나는 수도권의 특성상 수도권의 민노당 표 약 3~5%의 가세는 여러 지역에서 승부를 갈랐을 가능성이 높다.
6.2지방선거 이전에 민주-민노의 선거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우선 민노당의 독자노선 때문이다. 민노당은 1997년 ‘국민승리21’로 출발할 때부터 좌파정당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들의 입장에서 보수정당인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중시하였다. 민주당은 물론 그 역사와 노선에 있어서 서구의 사민당과는 다르다. 하지만 민노당은 서구의 공산당이 사민당과의 차별화전략을 통해 독자생존을 모색한 것과 형태상으로는 비슷하게 차별화를 해 왔던 것이다. 역시 민주당 또한 여러 이해관계상 민노당과의 연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민주-민노가 연대로 방향선회를 하게 된 배경은 우선, 진보진영 전반에서 결집의 분위기가 강력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권의 등장을 계기로 진보진영은 여러 갈래로 분화하게 되는데, 노정권의 이라크 파병, 한미FTA 추진 등 현실주의적 정책의 영향으로 일부는 중도화 되기도 한다. 이런 분화는 2008년 광우병 춧불시위를 거쳐 결정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중단되고 오히려 反보수 내지 反한나라당 연합의 공감대가 급속히 만들어졌다. 근거가 취약한 천안함 조작설이 범좌파진영 전반에서 논란 없이 받아들여진 이유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저변의 연대 분위기를 기반으로 지지율 답보상태의 민주당과 진보신당과의 분당으로 인해 당세가 약화된 민노당의 내부사정이 맞아 떨어지고, ‘희망과대안’ 등의 진보시민운동의 압력이 가해지면서 6.2 지방선거의 선거연합은 이루어진 것이다. 유시민 전 장관 주도의 국민참여당 또한 이 연합에 가세하였으나, 이는 본래 민주당세력 내에서 벌어진 이합집산이라 큰 의미를 둘 수 없다.
2. 단일정당 추진론 등장
6.2지방선거 시 선거연합의 성공에 따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야권통합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민주당 지도부 선출과정에서 4위로 최고위원에 입성한 486세대의 대표주자인 이인영 전 의원은 ‘민주진보대통합당’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연대 수준을 넘어 아예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또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시민단체”까지 차기 총선 이전에 합당을 하자는 것이다. 시민운동차원에서는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를 중심으로 ‘제3지대 야권단일정당운동’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들은 실천행동으로 2012년까지 단일정당이 창당된다면, 당원으로 가입하겠다는 ‘예비당원 서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이 단일정당 수준의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야권연합을 내거는 이유는 총선은 지방선거와 달리 각 당의 양보의 폭이 넓지 않다는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야권통합 효과를 극대화하여 이를 대선까지 밀고 가겠다는 입장에서 우선 총선의 야권통합을 반드시 이루어보자는 의지가 엿보인다. 나아가 일단 높은 목표를 제시하여 최소한 후보단일화라도 성사시키자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야권통합론은 그것이 합당이든 후보단일화이든 산술정치의 관점에서는 그 이유를 갖는다. 민주당과 민노당의 지지층이 겹치는 부분이 존재하고(양당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유권자들은 총선에서는 민노당을 찍고, 대선에서는 민주당을 찍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층은 통상 투표자의 3%에 달한다), 일단 선거전이 벌어지면 상호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로 합치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총선은 약 6%(18대 총선의 민노당 정당 득표율은 5.68%), 대선은 3%(17대 대선의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의 플러스 효과가 나오게 된다. 만약 여기에 진보신당까지 가세하면 총선의 경우 통합야당은 기존 민주당 득표에 10% 가까운 덧셈이 가능하다.
3. 노선의 차이는 어떻게?
야권통합론의 핵심은 민주당과 민노당의 연대이다. 국참당이나 창조한국당의 경우 민주당 의 전통적인 지지기반 내에서의 분열 또는 분화이기 때문이다. 민주-민노의 통합 또는 선거연대론의 치명적인 문제는 양당의 노선차이에 대해 아무런 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답은커녕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쟁점화를 피하고 있다.
양당의 역사, 강령, 주도세력의 이념, 지지기반 등이 다른 조건에서 연합을 하려면 이 노선차이의 해소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와 실행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는 외부자를 위한 것 이전에 당사자들이 자신의 중차대한 정치적 결단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마땅히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지방선거의 야권연대는 정치적 거래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정당간의 연대에서 지분이나 이익의 분배는 필수적이지만, 연대의 이유와 정당성은 공백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최근 조승수 의원(진보신당 당대표 후보)은 야권연대에 대해 “신자유주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는 기본적으로 진보대연합의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민노당이 단순한 좌파정당이라 해도 민주당과는 노선차이가 명백히 존재한다. 한국의 주요정당인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그 이념성이 매우 약하고 지역 기반이 더 규정적이다. 양당의 국회의원들을 관찰해보면, 어떤 이념적 선호보다는 지역 출신 때문에 정치를 위해 편의적으로 어떤 당을 선택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이념정당을 표방한 민노당과 그 구성이 복잡한 민주당은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다.
이 색깔의 차이와 관련 반드시 짚고 넘어 갈 문제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분당과정이다. 좌파정당의 추구를 오랫동안 공유해온 이들이 결국 딴 살림을 차리면서 불거진 문제가 중북주의 논쟁이다. 좌파 논객인 진중권씨는 민노당 주류(NL파)에게 "민노당 내 종북파가 진정으로 섬기는 당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이라는 비판을 한바 있다.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해 애 쓴다’는 공동목표의 성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종북주의로 인해 같은 좌파끼리도 갈라서게 된 마당에 과연 민주당과 민노당의 연대를 쉽게 여길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최근 북한의 3대세습과 관련 진보진영 내부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종북주의에 반대하는 좌파들이 민노당 등의 3대세습의 방관 또는 용인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진보지를 표방하는 경향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민노당이 대변인 논평을 통해 “3대 세습을 공식화한 당대표자회가 긴장 완화와 평화통일에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북한은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민노당이 진보신당과 갈라서게 된 중북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번 북한의 3대세습 평가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통합야당이 출범하더라도 한 지붕 두 가족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정치시장의 소비자인 지지자와 유권자는 정당의 노선과 정책이 분명하고 예측가능하기를 바란다. 이런 점에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식의 유연성을 넘어선 정당의 노선 변경도 룰의 위반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세력관계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경우이다.
물론 기존 민주당은 그 내부에 민주당 좌파니 혹은 우파니 부를만한 성향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차이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흔들만한 정도가 아니다. 이에 비해 민주-민노의 통합이나 선거연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반복해서 묻지만, 야권통합의 주창자들은 중북주의를 비롯한 노선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선해서 답을 해야만 한다.
홍진표 이사
계간 시대정신 편집인
前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前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