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6.25
<경희대 객원교수,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북한을 규탄하고 응징 방안을 논의하기 이전에 그동안 우리사회 각층에서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조성해 온 사람들이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를 계기로 뒤늦게나마 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는 교훈을 얻어야 마땅할 것” (본문 中)
북한이 지난 11월 23일 우리 영토를 포격했다. 지난 3월 26일 천암함 공격 이후 8개월 만에 우리나라 영토 연평도에 해안포와 곡사포 약 이백 발을 퍼부었다. 북한이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군사공격을 저지른 것이다.
북한은 이번 연평도 해안포 포격에 대해서도 우리측 ‘호국훈련’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면서 우리측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북한의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괴뢰들이 23일 13시부터 연평도 일대의 우리측 영해에 수십 발의 포사격을 가하는 군사도발을 감행했다"면서 "앞으로 조선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NLL(서해북방한계선) 무효화를 노리는 북한은 자신들의 NLL 침범으로 촉발된 세 차례의 서해교전(1999년과 2002년의 1ㆍ2차 ‘연평해전’ 및 2009년 11월10일 ‘대청해전’) 때에도 똑같은 억지 주장을 폈다.
북한은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 직후 열린 판문점 장성급회담에서 서해에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어 9월2일 총참모부 ‘특별보도’를 통해 일방적으로 북방한계선(NLL) 무효화를 선언한 뒤 ‘인민군 해상군사통제수역’을 설정했다. 그 후 2002년 6월 29일에 제2차 연평해전을 벌였고, 지난 11월 23일 서해 연평도를 해안포 직접 공격하는 도발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올해는 6.25 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북한은 6.25 전쟁을 벌인지 60년이 지나도록 호전적인 도발을 계속하면서, 80년대 이후부터는 아웅산 테러사건(1983. 10. 9), KAL기 폭파사건(1987. 11. 29), 강릉해안 잠수함 침투사건(1996. 9. 17), 1차 연평해전(1999. 6. 15.), 2차 연평해전(2002. 6. 29), 대청해전(2009. 11. 10.), 천안함 격침사건(2010. 3. 26) 등 도발의 수법이나 강도를 점차 높이다가 급기야는 우리 영토에 직접 포격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북한이 우리나라에 대한 도발과 만행의 수위를 끊임없이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 중에 6.25가 북한의 남침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매우 염려스럽다. 우선, ‘6.25가 남침’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사람들로부터 왜곡된 교육을 받고 잘못된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런 불행한 사람들의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아줘야 할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을 위해 6.25 전쟁에 관한 진실을 객관적인 사실들을 통해 재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서울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이기도 한 지난 11월11일 오전에 용산 미군기지를 방문해 미군 장병들을 격려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60년 전 6.25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의를 언급하는 내용을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의 연설문 속에는 “한국전쟁이 지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이 시작된 곳에서 끝났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곳에서 싸운 사람들의 희생을 빗대어 ‘무승부를 위해 죽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에서 약동하는 민주주의와 고마움과 희망으로 가득 찬 이 나라 국민들을 둘러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명백합니다: 이것은 무승부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승리였습니다. 그때에도 승리였고, 오늘도 승리인 것입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Because the Korean War ended where it began geographically, some used the phrase “Die for a Tie” to describe the sacrifice of those who fought here. But as we look around at this thriving democracy and its grateful, hopeful citizens, one thing is clear: This was no tie. This was a victory. It was a victory then, and it is a victory today.)
미국 대통령이 6.25 전쟁을 일컬어 “이것은 승리. 그때에도 승리, 오늘도 승리.”라고 표현한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닌다. 만일 6.25가 남한이 북진통일을 하기 위해 북한을 침략한(북침) 전쟁이었고 미군이 이 침략전쟁에 참전한 것이라고 한다면 침략전쟁을 시작했던 국경에서 휴전을 한 것을 두고 승리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도 승리”라는 표현은 당시 공산침략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기념비에는 “우리 국민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명령에 따른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만일 6.25가 남한이 벌인 침략전쟁이었다면 “지킨다(defend)”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6.25 전쟁에는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전투병력과 5개국의 의료지원팀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40개국이 물자와 수송을 지원했고 6개국이 전후 복구를 지원하는 등 총 67개국이 6.25 전쟁에서 우리를 지원하였다. 이와 같은 기록은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기록으로 공식 인정되어 금년 9월 3일 기네스북에 등록되기까지 했다. 1953년 당시의 총 60개국에 불과했던 유엔회원국 중 52개국과 교황청을 포함한 비회원국 15개국이 남한을 지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전세계적인 참전과 지원이 가능했던 것은 공산침략으로부터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6.25가 남한에 의한 침략전쟁이었다고 주장하려면 무슨 목적과 명분으로 거의 모든 유엔회원국들과 교황청을 비롯한 15개국의 나라들이 이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의 침략전쟁에 참전했었는지를 먼저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25와 관련한 여러 문서와 기록이나 해방 이후 남북한과 인근 국가들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은 차치하고 단순히 군사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더라도 6.25는 남침임이 명백하다. 당시 북한군은 6.25 침략 후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기습공격에 쫓기던 우리 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한강의 유일한 교량이었던 한강교를 폭파했다. 전쟁 발발 다음날 우리나라의 요청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급히 소집되었고, 뒤이어 우리나라의 파병요청에 따라 유엔 회원국 16개국의 파병이 결정되었다. 전쟁 발발 6일 뒤인 7월1일에 일본에서 점령군으로 주둔하던 미군이 처음으로 부산항에 도착하여 7월5일에 오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후퇴했다. 우리측 군대는 결국 7월 20일 대전을 북한군에게 넘겨주고 8월초에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였다. 이처럼 6.25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되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있기 전까지 우리측의 참담한 퇴각으로 일관했던 전쟁이다. 세상에 한치의 진격은 고사하고 후퇴로 시작하는 침략전쟁은 없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6.25 북침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거짓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6.25 당시의 남북한의 전력을 비교해 보더라도 남한이 북한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당시 북한은 T-34 전차를 242대나 보유하고 있었지만, 남한은 단 1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않았고, 북한이 전투기 등 170대의 군용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남한은 단지 연습기 20대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북한군은 중국내전을 통한 전투경험과 소련제 전차 등 최신예 장비로 중무장을 갖춘 막강한 전투인력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우리 국군은 전차나 대전차화기가 전무하고 제 2차 세계대전시 미군이 사용하던 노후화된 경장비 위주로 무장된 채 공비토벌 등의 임무로 체계적인 전술훈련조차 받지 못한 상태라서 전력 면에서 북한군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만일 남한이 북한을 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쟁을 벌이기 전에 미리 미국과 기타 유엔 회원국들의 지원을 받아 놓았을 것이 당연하다. 상식적으로도 맨손으로 하루 아침에 패퇴할 전쟁을 벌이는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6 25전쟁은 북한이 치밀한 사전 준비 끝에 남한을 기습 침공한 계획된 남침전쟁이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사회 각계에서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친북집단들은 온갖 황당한 논리와 주장으로 6.25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을 현혹시키고 세뇌시키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천안함피격 조사결과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대북 쌀 지원이나 금강산관광 재개가 마치 평화적 대화의 전제조건인 양 떠들어 대고 있다. 우리가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지원하면서 이념적 갈등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북한은 공공연히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더니, 자신들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스스로 공개하는가 하면, 마침내는 대낮에 우리 영토를 포격하는 만행을 자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한을 규탄하고 응징 방안을 논의하기 이전에 그동안 우리사회 각층에서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조성해 온 집단들이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를 계기로 뒤늦게나마 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는 교훈을 얻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