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채널의 등장, 어떻게 볼 것인가?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종편의 등장으로 방송시장은 자율과 경쟁이라는 원칙 상태를 회복하게 되었다. 종편 도입은 정부가 방송시장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한 사례라고 본다. 시장을 중시한다고 하더라도 공정하게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할 정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 ---”
종합편성채널을 놓고 말이 많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10년 마지막 날 중앙 조선 동아 매경(평가 고득점순) 등 4개 신문사가 주축이 된 4개 방송사를 종합편성채널사업자로 선정하자, 민주당은 일부 시민단체와 합세하여 종편 무효 투쟁을 벌이고 있다. 방송계에는 예상보다 많은 4개사가 선정됨에 따라 선정성 경쟁이 심화되고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하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다. 방송 진출이라는 숙원사업을 이루게 된 해당 신문사들도 우는 소리를 한다. 신생 매체인 종편이 정착할 수 있도록 채널 배정 등에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종편선정 자체가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혜택을 요구하는 극단적인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양쪽 모두 일방적인 주장만 펼치고 있어 국민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종편의 탄생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시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세기는 매스 미디어, 즉 신문과 방송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다매체의 시대다. 과거 미디어 시장이 공급자 중심이라면, 지금 펼쳐지는 시장은 수요자 중심이다. 예전에는 주는 대로 정보를 받아들였지만, 요즘 소비자는 필요한 정보를 자기가 찾는다. 이 흐름에서 뒤쳐진 미디어가 신문이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미디어가 방송이다. 활자 미디어인 신문은 누구나 유사품을 제작할 수 있지만, 영상 미디어인 방송에 대한 대체재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나 생산할 수 없는 것이 큰 차이를 낳았다. 수준 높은 영상을 제공하는 지상파방송의 영향력은 다매체 환경에서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과 인터넷이 결합하면서 과거에 볼 수 없던 폭발적인 파괴력이 나타나기도 했다. MBC PD수첩으로 촉발된 2008년 5, 6월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지상파방송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방송시장은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KBS와 MBC 둘로 정리된 후 1990년 SBS 창립으로 만들어진 3두 체제를 20년간 유지하고 있다. 지상파방송 3사는 방송법으로 만들어진 진입장벽 아래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향유하고 있었다. 명분은 방송의 공공성이고, 독립성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이라는 KBS와 MBC의 경우 집권세력이 이사회의 다수 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때문에 방송이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사 사장 선임을 놓고 낙하산 시비가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KBS 김인규 사장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정연주 한겨레 논설위원은 방송의 문외한인데도 KBS 사장에 임명됐다. 대선 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썼던 것이 그의 임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KBS와 MBC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 등 집행부가 새로 구성되다보니 회사 내에 존경받는 큰 어른이 없어지고 젊은 투사가 중심이 된 노조가 회사의 중심세력이 된 것이다.
종편은 현 지상파방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당초 지상파방송의 진입장벽을 부수려고 하였으나,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MBC와 KBS2를 특정 신문사에 넘길 것이라고 여론을 오도하며 거세게 저항하자 종편 도입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지상파와 마찬가지로 보도, 교양, 오락, 드라마 등을 종합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채널이 새로 생기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늘어나기 때문에 바람직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광고시장의 수준을 고려할 때 종편을 4개나 허가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렇게 볼 일도 아니다. 이런 시각이야말로 지금까지 지상파 3사가 주장하던 공급자 중심논리의 반복일 뿐이다. 다른 시장은 경쟁이 허용되는데 방송시장만 진입장벽을 쌓고 현재 종사자에게 특혜를 줘야 하는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공공성 논의를 공급자가 독점할 수는 없다. 방송 공공성의 핵심은 국민에게 다양한 시각의 정보를 객관적으로 제공하여 주권자인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 일이다. 지상파 3사는 이러한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고, 종편 4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근거가 허약하다. 뉴스와 시사교양을 제공하는 채널이 늘어나면 다양성은 제고되리라고 본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선정적이거나 왜곡된 정보가 제공될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과점을 유지해야 할 정당성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독과점 아래서도 선동방송, 왜곡방송은 언제든지 발생한다.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사에 대해서는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또 방송채널이 늘어나면 채널간 견제로 왜곡된 정보에 대한 시정기능이 강화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일부에서는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언론사가 광고주의 팔을 비틀어 광고시장을 교란하고, 보도의 공정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역시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경쟁이 격화될수록 부작용이 늘어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망하는 언론사도 나오고, 시장은 정화될 것이다. 자율경쟁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혼잡비용이 인위적으로 독과점을 유지하면서 발생하는 정치적ㆍ경제적 비용보다 크다고 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방송시장을 바라보는 철학이다. 방송시장은 우리 헌법 제119조 제1항에 명시된 바와 같이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일은 보충적이어야 한다. 즉 자율경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 국가의 몫이다. 종편의 등장으로 방송시장은 자율과 경쟁이라는 원칙 상태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부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중시한다고 하더라도 공정하게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할 정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편집의 독립성이 유지되도록 감독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고, 언론사가 영향력을 이용해서 광고주에게 압력을 넣는 일이 없도록 감시가 강화되어야 한다. 또 지상파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다채널 시대일수록, 정보가 많아질수록 국민은 올바른 정보에 목말라 한다. 공영방송은 주권자인 국민이 세상살이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종편 도입은 정부가 방송시장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한 사례라고 본다.
문재완
-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