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중이다
박성희(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교수)
하나같이 노래 잘하는 가수들에게 예측불허의 순위를 정해 한명씩 탈락시키는 게임(그들 용어로 오디션)이 요즘 인기다. 매주 일요일 저녁 MBC TV에서 하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가 그것이다. 지난 3월 처음으로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게임의 첫 번째 라운드에서 대형가수 김건모를 탈락시키고, 당혹스러운 나머지 그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다가 오락가락 하는 모양새가 비판을 얻어 잠시 중단되었다가, 5월부터 다시 시작 했다.
서둘러 문 닫았다 새로 시작된 만큼 대중의 관심도 여전했다. 김범수, 김연우, 박정현, 윤도현, 이소라, 임재범, MBK로 짜여진 새로운 경쟁자군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실력이 출중한 그들이 최선을 다하는 무대는 당연히 수준이 높아 보는 이의 감동을 자아냈다. 최고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장르 불문, 아름답게 마련이다. 첫날 예비경연에서 BMK가 꼴찌를 기록하자(2주 연속 점수를 합산해 7위가 탈락하는 것으로 게임의 룰을 수정했다) 포털뉴스 머릿기사로 실시간 소식이 전파될 만큼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그만하면 볼만한 무대가 주말저녁 TV에 펼쳐지는 것이 과히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잘생긴 몸매로 춤추는 비디오형 가수, 입담 좋은 예능형 가수에 묻혀 눈에 띄지 않던 진짜 실력 있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 건 대중의 귀가 누린 선물 같은 호사였다. 임재범의 소름 돋는 카리스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도 젖혔다는 박정현의 보석 같은 보컬, 무대를 압도하는 분위기의 소유자인 이소라, 그리고 다소 생소한 가수 김연우의 열창에 이르기까지.... 남진, 조용필, 송창식 같은 이전 실력파 인기가수의 노래를 새로워진 감동으로 다시 부르며 엄청난 음원 수입도 함께 창출하는 그들이 가요계를 종으로 횡으로 휘젓고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점수매기기, 줄 세우기, 탈락시키기 게임이 주는 뒷맛은 그리 개운치 않다. 새로운 포맷에 따라 등장한 소위 ‘매니저’들이 임의로 매기는 점수도 이상하고, 투표를 통해 여전히 쟁쟁한 실력의 가수 한명이 탈락해야 한다는 결말이 씁쓸하다. 이미 대중이 인정한 그들에게 그런 순위와 점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시 궁금해진다. 대중에겐 재미있는 프로그램일지 모르지만, 인기가 생명인 그들에게는 가혹한 게임이다.
점수매기기, 줄 세우기, 탈락시키기에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새삼 느낀다. 점수가 능사가 아니고, 인기가 전부가 아니며, 순위가 중요하지 않음을, 탈락한 가수들은 역으로 역설하고 있다. 탈락한 가수는 일시적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팬들이 등을 돌리거나 가수의 생명이 위협받지는 않는다. 승자는 경쟁을 통해 무엇을 얻었으며, 패자가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경쟁은 아무 때나 하지 않고, 아무하고나 하지 않으며, 하려면 공정한 게임의 룰에 맞춰 해야 하며, 결과는 매우 엄중해야 한다는 것이 고대의 진리였다. 다시 말해 경쟁은 승리를 위해 존재하며, 패자는 (거의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원칙이다. 서양의 철학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갈등을 해소하고 결정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서의 논쟁을 가르쳤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와 철학, 방법과 공정한 룰이 함께 있었다.
그에 비추어보면 ‘나는 가수다’는 우선 경쟁의 이유가 부족하다. 왜 그들이 선별되었으며, 왜 서로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다. 단순히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정밀하게 순위를 매기고, 탈락자 선정을 위해 상위 3명에게 투표하게 하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어제의 1등이 오늘의 꼴등이 되는 것을 갖고 인기의 무상함을 논하려는 것인지, 단순한 줄 세우기가 아니라면 그 밖에 어떤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창법과 장르가 제각각인 그들이 어떻게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록에는 록의 평가 기준이, 발라드에는 발라드의 점수매기기 기준이 있을 터인데, 어느 잣대에 맞춰 준비를 해야 이길 수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그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내뿜어 관객들의 파토스(pathos)를 흔들어 놓는 것 이외에는...
그래서인지 대중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끝을 모르는 암흑 같은 결말을 놓고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열창을 하니, 그로서도 훌륭한 구경거리이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편곡과 무대장치로 메워 가면서 최대한 덜 어색하게 변신하는 모습은 신선하다. 주목할 것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보다 대중의 의견이 반영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진다는 것인데, 대중의 투표로 인기인의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과히 틀리지 않는 부분이다. 그 대중이 얼마나 충분성과 대표성을 지녔는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가수로서 이미 완성된 이들의 경쟁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의 성공가치관이란 무엇인지, 경쟁 철학은 존재하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쟁에 참여하게 된 그 가수들은 어쩌면 의미 없는 경쟁과 줄 세우기와 탈락시키기 게임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은 아닐까. 자족함을 모르고 끝 간 곳 없는 무한 스펙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성공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한 외국 대학 교수의 강의 노트가 불티나게 팔릴 정도로 우리 사회가 ‘정의’에 목말라 하는 것도 경쟁과 게임에 대한 피로감의 반대급부는 아닐지.
경쟁과 줄 세우기에 맛 들린 사회에서 당분간 볼거리는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신입사원 모집을 공개 오디션 형태로 진행하여 구직자의 애타는 마음을 상품화 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가 하면, 대중가수들의 오페라 실력을 보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조만간 아이돌 가수를 등장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생길 것이라고 한다. 철학 부재의 경쟁사회가 대중 프로그램에 투영되는 것인지, 대중 프로그램이 철학 부재의 경쟁심을 부추기는지, 아니면 무늬만 경쟁일 뿐 사실은 오락성과 시청률을 겨냥한 방송포맷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어느 쪽 인지는 알 수 없고,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미디어 속 현실이든, 실제 현실이든, 철학과 개념과 공정함이 있는 경쟁을 보고 싶을 뿐이다. 경쟁사회와 줄 세우기에 지친 모든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