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수도 서울의 명암
이철영 <(재) 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요즘 삼청동이나 가회동 주변 거리를 걷다 보면 이곳에 부쩍 늘어난 젊은이들의 모습에 새삼 놀라게 된다. 강남역 부근이나 청담동, 압구정동 등 강남의 요란하고 호사스런 소비문화에 눈살을 찌푸리던 60대 전후의 서울 사람들의 눈에는 강북의 옛 동네를 찾아 다니는 이들 젊은이들이 반갑고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삼청동문화거리나 북촌마을 인근의 길가를 둘러보면 오래된 집들을 개조해서 새로 꾸민 시설들은 마치 이탈리아의 어느 뒷골목이나 되는 것처럼 예외 없이 이탈리아식당을 위시한 양식당 일색이고, 그밖에 일식 및 중국 식당, 카페, 와인바(wine bar), 커피전문점, 옷가게, 구두가게, 액세서리 점 등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이처럼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는 각가지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일대에서는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메고 와서 사진을 찍는 모습들을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촌한옥마을을 위시한 이 일대의 옛 정취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젊은이들과 외국관광객들도 있겠지만, 삼청동 일대를 몰려다니는 많은 젊은이들은 옛 동네의 모습이나 서울의 오랜 자취를 찾아 사진으로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각종 잡지나 인쇄물에 사용할 상업사진을 찍기 위해 깜찍한 포즈를 연출하는 여성모델들의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는 식상해진 강남의 모습 대신 젊은이들 눈에는 소박하고 이색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곳의 분위기를 사진의 배경으로 잠시 빌리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외국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을 유치하여 이곳을 널리 알리고 옛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서울시나 종로구의 노력의 덕분일 것이다. 논밭과 야산을 갈아엎고 새 도시를 만들어낸 강남과는 달리 삼청동 일대는 오랜 역사와 그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요즘 이곳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옛 동네 본래의 모습을 지워버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먹고 마시는 ‘먹자골목’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지역이 강남과는 달리 옛 동네의 흔적을 남겨가며 변신을 하고 있다는 점과 여러 법적 규제 때문에 이 동네의 한 구역을 몽땅 헐어내고 고층건물 숲으로 재개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2일 저녁에는 한강변 반포대교 옆에 새로 건설된 인공섬 ‘세빛둥둥섬’에서 ‘명품 펜디(FENDI) 패션쇼’가 열렸다. 당초 동물보호단체의 반대로 무산될 뻔했던 이 행사가 우여곡절 끝에 '모피반대'를 외치는 일부 시민들의 거센 반발 속에 개최되었다. 앞으로 ‘세빛둥둥섬’의 운영을 좀 더 두고 지켜봐야겠지만 첫 국제적 대형행사를 치러낸 '세빛둥둥섬'이 과연 시민 모두가 즐겨 찾을 수 있는 한강의 명소가 될 것인 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선 서울시가 "한강을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구조물"을 만들자는 시민의 제안을 근거로 1,0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상습홍수지역에 인공섬을 제작해서 띄우기로 한 것이 적절한 결정인가 하는 우려이다. 서울시는 ‘세빛둥둥섬’이 “세계최대 규모의 다목적 인공섬”이며 한강의 홍수에 철저하게 대비한 설계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인공섬 건설문제는 기술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타당성의 문제이다. 다른 나라들이 이런 섬을 건설하지 않는 것은 건설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회의, 공연, 전시, 문화행사 등을 개최할 목적으로 인공섬을 건설할 경제적인 타당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인공섬이 민간자본으로 건설되고 민간업체에 의해 운영됨으로 인해 앞으로 비싼 사용요금이 책정되거나 채산성 문제로 운영의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 시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더욱 염려하는 것은 이 시설이 부유층의 결혼식장이나 부유층 젊은이들의 호화판 파티장소로 전락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기우에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얼마 전 방송에서 이 시설 운영업체의 등기 내용에 “예식장 운영과 웨딩 관련 서비스업, 주류도소매업과 공연장 대관업” 등이 사업목적으로 적혀있다는 보도가 있었듯이 ‘세빛둥둥섬’이 한강 위에 떠있는 고급 웨딩홀이나 공연을 내세운 호화 파티장소 등으로 변질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2007년에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결정된 이래 수많은 공사와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서울시를 디자인수도의 모델로 홍보해 왔다. 서울성곽길 정비, 서울 야간경관 업그레이드, 광화문광장의 리모델링과 세종대왕 동상의 설치, 옛 동대문 운동장 터에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 한강에 인공섬 ‘세빛둥둥섬’ 설치 등이 세계디자인수도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서울의 랜드마크로 활용하려는 대표적인 공사들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도시 한복판에 산과 강이 어우러진 수려한 풍광과 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아름답고 품위 있는 도시이다. 서울의 강남지역은 1960년대 말부터 도시의 기능과 효율성을 우선으로 정책적으로 밀어붙인 난개발의 산물이다. 오랜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강북과 비교하자면 강남은 불도저로 갈아낸 땅 위에 새로 탄생한 별개의 신생도시라 할 수 있다. 결국 강남지역은 대형 빌딩숲과 요란하고 호사스런 소비문화의 중심지가 되어버렸고 한강유람선을 타고 강남 쪽으로 볼 수 있는 경관은 오로지 강남일대의 고층아파트들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0년 12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디자인 수도(WDC) 서울 국제콘퍼런스’ 개막연설에서 “삶의 질과 도시경쟁력을 높이는 디자인 정책에 대해 전시성이라고 정치공세를 퍼붓는 게 현실이지만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실상을 알려 디자인 정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세빛둥둥섬’과 관련한 시민의 우려의 목소리처럼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단지 정치공세로만 받아넘길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 세계디자인수도 관련 정책을 신중하게 돌이켜 보는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광화문광장의 리모델링은 600여 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세종로의 옛 모습인 육조(六曹)거리를 복원하여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경복궁과 북악산 등 자연경관의 조망을 돋보이게 하는 한편 세종로를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등의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광장을 둘러보면 우선 서울의 역사를 상징하던 은행나무 고목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인간중심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사방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돌바닥뿐이고 별다른 안전시설도 없는 광장 좌우로는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이야 장수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세종대왕을 궁궐(경복궁)앞 대로 한 복판에 세워놓고 눈, 비, 땡볕, 소음과 매연 공해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합당한 발상인지도 한 번 생각해 볼일이다.
작년 12월 ‘세계디자인수도 서울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했던 각국의 도시디자인 전문가와 디자인행정을 담당하는 주요 국가 시장들은 "광화문광장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동상이 압도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엔 좋지만, 개인적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광화문광장은 역사의 물길이 인상적이었지만 더 나은 시민 공간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주위에 나무를 더 많이 심어야 하고 광장이 도로 한복판에 있으므로 어린이들이 양 옆에 왔다 갔다 하는 차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지하와 연계성을 강화하는 디자인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는 등의 진솔한 조언을 했다. 도시 디자인에 있어서 시민들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디자인도시의 모델이라 할 만큼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러나 바르셀로나가 디자인도시로 유명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천재 건축가 가우디 덕분이다. 1882년 이래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건축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바르셀로나에 많은 경제적 수익을 안겨주고 바르셀로나를 전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어 주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세계적 디자인•패션 중심 메카인 관광명소를 육성한다는 목표로 옛 동대문운동장터에 건설되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우리나라 건축가가 아닌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최첨단 디자인의 건축물이라는 점이 바르셀로나의 가우디의 건축물의 경우와 다르다. 물론 이 디자인플라자가 나름대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지만, 이 건축물이 서울의 디자인도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할 것이며 과연 얼마나 많은 해외관광객이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서울을 찾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디자인수도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될만한 건축물이 서울시에 건설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울시가 수려한 자연경관과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서울의 도시경관을 변화시키려는 SOFT SEOUL 계획으로 디자인서울을 추진하고 있지만,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들을 세우기 위해 서울의 역사성이 훼손되거나 시민의 삶에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조선일보에서 국내 유명 건축가와 건축학과 교수 등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의 대표 건축물 중 최악의 건축물로 광화문광장, 예술의 전당, 청계천, 타워팰리스 아파트, 종로타워 및 용산구청사가 선정된 것은 서울을 디자인수도로 가꾸어 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덴마크 인덱스(INDEX)사의 키제 하이드(Kigge Hvid) 대표가 ‘세계디자인수도 서울 국제콘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역설했듯이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이 “미적 영역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시민의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고 환경보호의 가치에도 주목하는 디자인정책”이 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