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명지대 교수)
한국이 21세기 문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수준 높은 정신문화의 진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러한 것을 이뤄내는 데에 대학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은 과학기술과 정신문화를 창출하는 주체인 동시에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들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잘 안 돼 있다. 대학의 난립과 인구 감소로 이미 대학 정원이 대학 지원자보다 더 많아진 상태이고 그에 따른 일부 대학의 부실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인구학만 제대로 숙지했어도 예측할 수 있었을 대학 정원과 입시생 간 비율의 불균형을 무시하고 대학이 무분별하게 난립하도록 그동안 교육부가 일조했다. 1996년에 대학, 대학원 설립기준이 완화되면서 대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질적 향상은 도외시됐고 정원 미달과 교육 부실이라는 급박한 사태가 나타났다. 대학을 세우기는 쉬워도 통폐합하기는 무척 어렵고 많은 후유증을 낳을 수 있기에 대학 신설은 극도로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언제부턴가 산업계는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그래서 저개발국가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코리언 드림’을 향해 몰려든다. 반면 한국 젊은이들의 실업은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국가적인 문제가 됐다. 한편에서는 인력난, 다른 한편에선 취업난. 이런 모순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의 왜곡된 교육구조가 그 원인 중 하나다.
과거에는 “대학 못 간 한(恨)”이란 것이 존재했다. 이런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리고 대학이 장사가 됐기에 무분별한 대학/대학원 신설과 정원늘리기가 성행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그리고 세계 역사상 전무한 압도적인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다. 무려 84퍼센트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더 잘 사는 나라들의 진학률을 훨씬 웃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부 대학교육의 거대한 부실화였다.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적만 걸어놓고 학교에 거의 안다니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별 문제없이 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교육 부실을 잘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이다.
대학평가와 교수평가의 대폭 강화로 상위대학들의 교육/연구여건은 전보다 좋아졌다. 그러나 하위대학, 특히 일부 지방사립대들은 정원도 못 채우는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현재도 전체 대학정원이 대학진학 희망자의 숫자를 사실상 넘어섰다. 이대로 두면 2016년의 대학정원은 60만인데 고등학교 졸업생은 55만 5천명밖에 안 된다.
대학원 사정도 마찬가지다. 일반대학원이건 특수대학원이건 명문대 대학원은 학벌세탁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비명문대 대학원들은 몇몇 경우 빼고는 정원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동안 너무 많은 석사/박사과정이 남발됐다. 한국대학 학위의 가치가 형편없이 하락되고 질적으로 저하됐다. 차마 대학원 학위논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논문들이 속출하고, 논문 대필도 성행한다.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수준이다. 무턱대고 대학원 과정을 만들어 편하게 지내려는 교수들의 이기심 또한 이러한 사태를 낳은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것이 대학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특수대학원은 학생들의 학위 취득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실하다는 게 대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특수대학원 졸업자들을 위한 대리논문 작성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대학원 부실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대학/대학원은 적어도 재학 중에는 치열하게 다니면서 공부해야하는 곳이다.
대학정원증가와 부실화가 낳은 심각한 문제는 통제 불가능한 정도의 ‘기대수준의 폭발’이다. 이른바 “대학물”을 먹은 사람은 내실과는 상관없이 자연스레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산업현장을 기피한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의 7월 3일 발표에 따르면 청년층 고용 부진의 최대 원인은 높은 대학 진학률 때문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20~24세 연령층 고용률 하락이 전체 청년층 고용악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폭발적으로 높아진 기대수준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중단 없는 고도성장밖에는 없다. 그러나 성장 동력은 꺼져가고 있고, 지속적인 고도경제성장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기대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기대수준이 폭발하는 사회는 불안정하고 불행하다. 경제력이 강한 한국이 매우 낮은 행복수준을 보이는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기대수준 폭발을 처리하지 못해 불만에 가득 찬 한국사회는 사실상 시한폭탄과 같다. 이미 시한폭탄은 재깍거리며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는 시한폭탄 제거와 같은 절박함으로 대학/대학원 정원감축에 임해야한다. 부실대학에 대한 통폐합 유도 등 정원을 전반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대학정원은 30%이상, 석사과정은 40%이상, 박사과정은 50%이상을 줄여야 적정규모이다. 교육과학부는 고통이 덜 한 방법으로 후유증을 최소화시키면서 정원감축을 할 방도를 시급히 마련해야한다. 한편 각 대학들도 교육부 정책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