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오디션 광풍과 K-Pop 열풍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방송사들의 오디션프로그램 경쟁이 가관이다. 한 케이블 TV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젊은이들에게 오디션 광풍을 일으키더니 지상파방송사들도 너나없이 앞다투어 짝퉁 오디션프로그램 경쟁에 뛰어들어 전국의 젊은이들에게 신데렐라 탄생의 허황된 꿈을 만연시키고 있다.
폭발적 인기로 세 번째 시즌인 ‘슈퍼스타K 3’를 준비하고 있는 케이블 TV방송 m.Net의 ‘슈퍼스타 K’ 프로그램, tvN의 ‘코리아 갓 탤런트(Korea’s Got Talent)’, MBC의 신인가수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 등이 대표적인 신인가수 선발 오디션프로그램이며, KBS 2의 ‘Top 밴드’는 아마추어 밴드들의 경연 프로그램이다. 연기자 공개오디션프로그램인 SBS의 ‘기적의 오디션’과 MBC의 아나운서 오디션프로그램인 ‘신입사원’, ‘댄싱 위드 더 스타(Dancing With The Stars)’, 피겨스케이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SBS의 ‘김연아의키스앤크라이(Kiss & Cry)’도 오디션프로그램 열풍에 편승하고 있다. KBS2의 인재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휴먼서바이벌 도전자’와 ‘불후의 명곡 2’도 같은 부류의 오디션프로그램이다. 그 외에도 케이블TV나 지상파방송사에서 유사한 프로그램을 방영 중이거나 준비 중이다.
지난 7월 2일 ‘슈퍼스타K 3’가 1차 예선을 통과한 참가자 접수를 시작한 첫날 서울지역에서만 하루 만에 5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니 가히 오디션 열풍의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지원자의 연령층도 10대 초반에서 60대 이상으로 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생역전으로 일확천금과 스타의 영예를 거머쥐려는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꿈에 들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슈퍼스타K’ 방송 첫해에 전국적으로 71만 명이 오디션에 참가하더니 작년에는 134만 명, 올해에는 193만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2010년도 통계에 따르면, 오디션에 직접 참가하거나 관심을 가질 연령층이라고 할 수 있는 15세 이상 24세의 우리나라 전체 인구수는 약 650만 명이고 15세에서 29세까지의 인구는 1,000만 명을 조금 넘는다. 193만 명이면 전국의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젊은이의 30%,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젊은이의 20%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중복지원자 숫자를 감안하더라도 다른 방송사들의 오디션프로그램과 연예기획사들의 오디션들까지 합치면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젊은이들이 오디션 광풍에 휩쓸려 다니고 있는 것이다.
아마추어들의 스타탄생 서바이벌 오디션과는 다르지만 MBC의 ‘나는 가수다’(일명 ‘나가수’)도 오디션 광풍에 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7월 초 현재 ‘나가수’ 청중평가단을 신청한 누적 인원이 2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매회 청중평가단이 500명임을 감안하면 500회 정도에 해당하는 인원이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나가수’ 방청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인터넷에 '청중평가단 되는 비법'이라든가 "나가수 방청 티켓 파세요"라는 글들이 떠돈다고 한다. 광풍의 수준을 넘어 공해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오디션프로그램의 과열경쟁은 방송사들의 무책임한 시청률 지상주의에 기인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방송사들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오디션 과정에 시청자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상품의 탄생과 발전이 사회적, 시대적 흐름과 아티스트 개개인의 개성과 창작적 재능을 통해 이루어지기 보다는 방송사 담당자와 선택된 시청자그룹의 수준이나 취향에 좌우될 우려마저 있다. 또한 문화상품의 탄생과정이 서바이벌게임 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이 사회에 승자생존, 승자독식의 투쟁풍토가 확산될 수도 있다. 더욱이 방송사에 의해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등장한 스타가 프로로서 자신이나 팬들이 기대한 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무대에서 사라진다면 현재의 오디션 광풍은 그야말로 방송사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일진광풍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오디션 광풍의 또 다른 문제는 언론의 보도처럼 가수나 연기자 오디션 지망자들을 대상으로 족집게 강사와 현직 PD까지 나와 고액과외를 하는 음악/연기학원이 등장하고 이들 학원에 신청자들이 줄을 선다는 것이다. 음악학원만 해도 전국에 1,000곳이 넘고 서울에만 30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에는 수강생이 500명에 이르는 대형 학원도 100여 곳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사설 학원에서는 추가 돈을 받으면서 오디션 지망자들의 개성(끼)까지도 연출해 주고 있다고 한다. 이런 오디션 열풍 속에 가수 되는 법을 안내하는 책들까지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원에서 음악의 기초나 기량을 다듬어주고 아티스트로서의 열정과 숨겨진 끼를 발산하도록 지도하는 게 아니라 단기간의 합격을 목표로 심사위원의 구미에 따라 길들여진 앵무새들을 양성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문화상품을 창작하는 아티스트들이 잘 훈련된 운동선수처럼 양성되고 길들여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각종 오디션 기회들을 찾아 전국에서 몰려다니는 수백만의 젊은이들 중 과연 몇 사람이 스타탄생의 관문을 통과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오디션 광풍은 우리 사회에 허망한 꿈을 마구 뿌려대는 심각한 공해가 될 수도 있다. 문화상품의 유통채널로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독점하고 있는 방송사들이 스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공개하고 경쟁을 부추기며 그들의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면서 오디션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광풍은 일확천금과 스타의 영예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최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오디션 열풍과 함께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것이 K-Pop 한류 열풍이다. 한류(韓流)란 본래 중국에서의 한국 대중문화 열풍을 표현하기 위해 2000년부터 중국언론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이후 한국 드라마와 가요, 영화 등의 대중문화에 대한 열풍은 대만, 태국,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몽골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배용준과최지우가출연한 TV 드라마 〈겨울 연가〉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으로까지 열풍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는 등 한류는 동아시아의 특별한 ‘문화아이콘’이 되었다. 한류는 이런 모든 현상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용어이다.
일부 젊은 층에 국한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K-Pop 한류 열풍은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유튜브(YouTube) 마케팅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여성보컬그룹이 라스베가스 무대에 나서고 최근에는 K-Pop의 주역들이 파리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올해 초 남성보컬 ‘빅뱅’이 미국 아이튠즈(iTunes) 앨범 차트 톱 10에 들기도 했으며, 지난 4월에는 가수 ‘비(Rain)’가 타임잡지 구독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현지 젊은이들로 구성된 ‘코리안컨넥션협회’(Korean Connection Association) 회원들은 K-Pop 공연 하루 연장을 촉구하는 거리행사(flash mob)를 벌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단면만 본다면 그야말로 1964년 이래 비틀즈를 위시해 미국을 열광케 한 영국 아티스트들의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K-Pop의 파리공연 당시에는 프랑스 주류 언론의 냉담 속에 우리 언론들만 과장 보도를 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4월27일 “한국의 K-Pop이 세계의 팬들을 열광시키면서 약 20억불(12억 유로)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하여 아시아 전역에 걸친 한류(Korean Wave) 열풍의 주역이 되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K-Pop의 파리공연 직후인 6월 14일에는 “한국 팝뮤직(K-Pop)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South Korean pop music)”이라는 제목으로 비판적인 내용들만 보도하였다. 이 보도의 주 내용은 K-Pop이 미국과 유럽에 눈을 돌리면서 아티스트들에 대한 처우(수익분배)도 바뀔 것인가 하는 비아냥과, 소속기획사에 대한 ‘동방신기’의 소송 등 아티스트에 대한 기획사의 부당한 처우에 관한 법정분쟁, 장기 노예계약 문제 등이며, “한국의 K-Pop 아티스트들은 장기간에 걸쳐 (연예기획사들에 의해) 제조(양성)되기 때문에 유명해지기까지 엄청난 비용이 들어 결국 아티스트에게 줄 돈이 없게 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음악으로 유명해 질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문제점들로 유명해 질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로 끝맺었다.
우리의 언론들은 애국적 견지에서 보도의 공정성을 잃고 연예기획사들은 사업차원에서 아전인수격 과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번 K-Pop의 파리공연에 대한 보도처럼 공연장의 열기가 마치 그 나라 또는 그 사회 전체의 열기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 일간지는 <'SM타운 파리공연' 공개…환상 퍼포먼스로 "유럽도 접수">라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진실을 접할 수 없는 대부분의 젊은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애국심으로 흥분된 찬사와 기대의 글들로 환호한다. 이러한 과장보도와 애국적 흥분은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오디션 광풍과 K-Pop 열풍에 들떠있는 순진한 젊은이들에게 결국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것이다.
방송사의 오디션 광풍과 K-Pop의 열풍은 우리사회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우선 중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공부가 우선이어야 할 학생들에게 공부할 의욕을 상실시킬 우려가 있다. 대학입시지옥, 취업대란, 집 한 칸 마련할 희망조차 보장이 안 되는 직장생활 등 암울한 현실 속에서 허덕이는 학생들에게 오디션을 통한 스타탄생은 그야말로 인생역전의 드라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타탄생에 실패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좌절감과 이런 오디션에 도전조차 할 수 없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감수해야 상대적 박탈감은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1970년대 이래 건설과 조선 및 자동차산업, 전자산업 등 우리나라 주요산업의 높은 국제경쟁력은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우리 산업제품의 국제적 브랜드가치 급상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IT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소프트웨어 산업이 국내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제조업 시대는 가고 정보화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다. 결국 젊은이들이 소위 3D 업종을 기피하고 서비스산업이나 문화산업에만 눈을 돌리면서 우리나라 제조산업의 생산현장들은 해외로 떠나고 국내의 생산직 인력은 외국인으로 대체되는 결과를 낳게 되어, 제조업계는 숙련된 인력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반면 대학졸업자 태반이 백수인 기현상이 초래되었다. 최근 대학에서 강의 중 한 남학생이 늘어놓은 넋두리가 생각난다. “교수님, 제가 생긴 게 멀끔해서 개그맨도 될 수 없고, 생각이 멀쩡해서 연예인도 못 되어서, 이렇게 공부나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학교 졸업하면 태반이 백수이고 취직해봐야 평생 집 한 칸 장만하기 어렵다니 제겐 꿈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라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의 현실이고, 우리 젊은이들의 딜레마이다.
해외에서의 K-Pop 한류 열풍은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우리 산업제품의 국제적 브랜드가치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산업현장을 기피하고 실력과 노력 대신에 끼와 운에 매달려 문화산업 광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뒷걸음 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외모지상주의 풍토 속에서 성형수술이 젊은이들의 일상다반사가 되고 있고, 성실한 노력을 통한 성취보다는 일순간의 횡재의 꿈에 젖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방송사 개그프로그램들의 찜질방 패션, 색동옷 씨름꾼 패션, 내복 패션 등 공영방송에 걸맞지 않는 낯뜨거운 차림새나 출연자들의 궤변과 기괴한 몸짓에 열광하고 연예오락프로그램들의 각종 유치한 게임과 알맹이 없는 말장난에 눈과 귀를 떼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K-Pop 아이돌스타들의 판에 박은 듯한 얼굴들과 반나체의 기묘한 몸짓들이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방송사들은 젊은이들의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연예 프로그램들을 양산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을 중독시키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튀는 패션과 자극적인 막말로 젊은이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방송사는 시청률을 얻는다. 그야말로 시청률에 급급한 방송프로그램들이 우리사회에 뿌리는 공해라 할 수 있다.
방송사들이 시청률 때문에 우리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은 풍조를 조성하거나 도덕적 타락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는 프로그램들을 무책임하게 양산해서는 안 된다. 바늘구멍보다 작은 인생역전의 무대로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들뜨게 하는 오디션프로그램들이나 기행과 궤변의 잔치인 개그프로그램들과 연예인들의 신변잡담으로 일관하는 연예 오락프로그램 등과 같은 시청률위주의 프로그램들이 우리사회에 끼치게 될 역기능에 대한 방송사들의 책임있는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