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에 출렁이는 사회
이철영 [경희대 객원교수,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소설가, 연예인, 개그맨 등 인기인들이 우리나라 엘리트 세대이자 우리나라 미래의 주역인 2040 세대의 생각과 행동을 멋대로 흔드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확산에 따라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인기인들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의견 표명이나 비아냥이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의 견해나 의견이 객관성과 진실성을 가지지 않으면 사소한 말장난 하나로 세상을 출렁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지난 11월 23일 공지영 소설가는 트위터에 “이제 집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기다리는데 한 떼의 아줌마들이 제 곁에 앉더니 ‘우리 온천 다녀오는 동안 FTA 비준됐네. 참 잘됐다. 최루탄 던진 놈도 있대. 국민 수준 알아줘야 돼. 그런 놈을 뽑고’하는 대화를 나누더니 일등석 가더군요. 그때서부터 열나고 토할 것 같았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공 씨의 현장감 있는 글은 하루 사이에 약 27만 명의 팔로워들이 받아본 후 수많은 팔로워들이 또다시 이 글을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퍼 날랐다. 그야말로 SNS의 위력과 위해(危害)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공 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 씨가 이용했다는 대한항공의 후쿠오카 노선에는 일등석이 없다. 그래서 일부 네티즌들이 “왜곡정보로 선동하지 마세요. 저도 아줌마같이 왜곡하는 사람 보면 열나오고 토나와요”라고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계속 회답을 회피하던 공 씨는 일주일 만에 “아 그걸 제가 왜 해명해야 하는지… 후쿠오카서 서울 오는 세시 삼십분 대한항공이었어요 왜 일등석이 없나요. 참…”이라는 무책임한 글을 올렸다. 착각이었든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든 이런 부류의 글들이 여과 없이 순식간에 수백만의 SNS 세대들을 일희일분(一喜一憤)하게 만들어 이들이 촛불시위장으로 달려가 경찰관까지 거침없이 폭행할 정도의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SNS의 위력이자 위해다.
지난 12월5일 오후 우리나라는 통관 집계 기준으로 수출 5153억 달러, 수입 4855억 달러로 연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우리나라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 이래 수출위주의 경제정책을 편 지 50년 만에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역 1조 달러 달성은 이미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미국•독일•일본•중국•프랑스•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 등 과거 식민지를 부리던 8개국과는 달리 식민지에서 독립한 피원조국가에서 무역 1조 달러의 원조국가로 비약한 유일한 사례라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수지는 정부수립 이래 1985년까지 계속 무역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86년에 들어서 수출 347억 달러에 수입 316억 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31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정권으로 이어지는 1990년부터 IMF사태가 발생한 1997년까지 다시 무역적자로 돌아섰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1998년부터 노무현 대통령 말기인 1997년까지 10년 동안 계속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제대통령으로 기대되었던 이명박 대통령 집권 첫해인 2008년에 1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133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2008년 9월 한 인터넷 사이트(‘ISSSSSUE’)에 게재된 자료에는 1961년부터 2008년까지의 수출입무역통계 자료를 과거 정권 별로 구분하여 집계해 놓고 이 사실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말한 경제를 망친 ‘잃어버린 10년’동안 우리나라 무역 흑자는 최고였네요. 박정희 때도 계속 적자였고, 80년대 후반 3고 호황 때만 4년간 흑자,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0년간 흑자였습니다. 1961년부터 1997년까지 누적 적지만 700억 달러 적자, 김대중 정권에서 940억 달러 흑자로 모두 만회하고 노무현 정권 때도 980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08년 들어 경제 대통령은 다시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로 표시되는 통계는 어떤 사회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확신의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통계를 작성할 때 통계 표본을 선정하는 방법이나 조사방식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계수치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목적이나 방법에 따라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에 통계수치에는 수많은 함정이 있다. 수치로만 따지자면 위의 집계가 거짓은 아니지만 위의 주장은 구체적인 배경설명 일체 없이 통계자료를 편파적으로 취합하고 해석하여 일반 국민의 판단을 오도하려는 의도가 여실하다. 해당 통계자료를 특정 시기의 특수 상황들을 감안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이와 같은 주장들의 허구성을 쉽게 밝혀낼 수 있다.
우선,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86년에 사상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당시의 무역수지 흑자는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등 소위 단군 이래 최고의 삼저(三低)호황에 힘입은 결과로 이후 1989년까지 무역흑자가 이어졌다. 1990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반도체 불황과 함께 대외여건에 따른 1990년 변동환율제도 도입, 1992년 주식시장개방, 1996년 OECD 가입 등의 자본자유화 정책의 확대 및 환율의 하락으로 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 폭의 감소 등으로 계속 무역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1998년에는 외환 위기로 인해 IMF에 의해 원화 환율이 대폭 평가절하되어 결과적으로 수입이 전년대비 35.5%(513억 달러)가 급감해 390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전년도(1997년)에 8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던 무역수지를 마치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390억 달러의 흑자로 전환시킨 위업을 달성한 것처럼 평가하는 것은 아전인수이자 사실의 은폐와 왜곡이다.
국제적으로는 2007년 미국에서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2008년 9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신청으로 정점에 달하면서 국제금융시장 전체에 신용경색을 불러왔다. 우리나라는 2008년에 처음으로 수출이 4천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전세계적인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고유가의 여파로 인한 세계경기침체의 영향 등으로 무역수지 흑자 10년 만에 다시 133억 달러의 적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2008년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이다. 그 후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404억 달러와 412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끝에 마침내 2011년 12월5일에 수출 5153억 달러, 수입 4855억 달러로 무역흑자 298억 달러의 연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것이다.
통계수치에 대한 편향적인 해석이나 왜곡은 무역 1조 달러 달성 보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12월 5일 KBS 1 TV 저녁뉴스에서 보도기자는 “10억 원을 수출할 때 생기는 일자리는 2000년 15.3명에서 10년 만에 9.8명으로 줄었습니다. '수출만 잘하면 모두가 잘 살수 있다'는 신화는 더 이상 불변의 진리는 아닙니다.”라고 보도하면서 수출을 많이 해도 예전처럼 일자리가 많이 생기거나 생산이 늘어나지 않아 수출 대기업만 살찌고 국민에게는 그 효과가 돌아가지 않는 성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지었다. 수출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고용창출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되지만, 이는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수출을 많이 해도 국민에게는 그 효과가 돌아가지 않는다. 무역이 늘어날수록 대기업만 살 찌고 일자리는 늘지 않아 실업률이 상승한다”라고 믿게 할 수 있는 경솔하고 무책임한 보도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반 철광석, 해산물 등 1차 산업 품목을 시작으로 가발, 신발, 섬유, 봉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을 주력 품목으로 수출하다가 2천 년대에 들어 수출주력품목이 자동차, 선박, 휴대폰 및 IT관련 제품 등 자동화 대량생산체제의 첨단공산품 위주로 바뀌면서 생산에 투여되는 인력이 대폭 감소하게 되었다. 수출주력품목이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공산품으로 대체되고 생산설비가 첨단 자동화됨으로써 줄어드는 생산인력은 곧 업계의 생산성과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10억 원을 수출할 때 생기는 일자리 수는 당연히 계속 줄어야 마땅할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수출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첨단산업을 주축으로 발전하면서 자연히 고용창출의 효과가 줄어들게 되었고, 국제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낮고 고용의 탄력성이 높은 해외로 이전하는 등의 현실이 고용감소와 실업률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강경 노조의 저항으로 근로자의 해고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기업들이 국내에서의 고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 것도 심각한 실업문제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여 현재 세계 52개국에서 10대 교역상대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현재의 심각한 실업문제와 직접 연관 지어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는 2040세대를 앞세워 한•미 FTA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민노당이나 일부 시민단체들의 한•미 FTA 무효 주장과 반미 논리를 부추길 우려마저 있다. 촛불을 들고 외쳐대는 2040세대의 분노는 한심한 정치권을 비롯한 기성세대 전반에 대한 불신과 증오이자 청년실업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분노이다. 우리나라의 2040세대는 반공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북세대도 아닌 감성적인 탈이념의 세대이다. 종북 진보집단이 이들 세대의 감성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이들을 종북 진보이념의 세대로 몰아가고 이들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면서 이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통계수치는 수많은 사연들의 총체적 결과가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계수적으로 표시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계상의 각종 수치들은 이를 분석하는 관점이나 기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통계 상의 특정 결과수치만을 자의적으로 조합하거나 분류하여 편향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 은폐하여 사람들을 호도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표성이나 객관성이 없는 표본과 방법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의 결과치 만을 유포시켜 여론을 흔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입과 입을 통해 소문이 퍼지던 시대에 ‘발 없는 말이 십 리를 가는’ 동안 SMS(Short Message Service)나 SNS를 통한 소문은 수십만 리를 간다. 이처럼 SMS나 SNS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정보나 치명적인 거짓 루머를 실시간으로 방방곡곡에 퍼뜨릴 수 있기 때문에 최근 각종 선거에서 이들 매체가 널리 이용/악용되고 있다. 선거에서 결과가 공지된 다음에는 거짓 소문의 진실규명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컴퓨터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사회 한쪽 구석에서는 “아니면 말고”나 “배째라” 식의 부도덕과 몰염치가 더욱 판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공지영 소설가 같은 사람이 무역 1조 달러 달성에 관한 위의 보도 내용을 “10억 원을 수출할 때 생기는 일자리는 2000년 15.3명에서 10년 만에 9.8명으로 줄었습니다. 무역규모가 커질수록 실업자는 계속 더 늘어나고 수출 대기업만 살찌게 만듭니다”라고 SNS를 통해 유포시킨다면 한•미 FTA 무효를 외치고 있는 그들의 세상이 또 한바탕 출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짓말이나 말장난의 홍수가 세상을 흔들어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열려있는 한 세상이 통째로 쓸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