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도(道)와 리더쉽
이철영 [경희대 객원교수,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올해는 새 국회와 새 정부를 탄생시킬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이다. 4년여 전 우리 국민들은 민주사회질서를 뒤흔들고 사회 요소요소에서 불안과 혼란을 조성해 온 불법경거망동들을 뿌리뽑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압도적인 지지로 보수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의 첫 단독회동(2008. 5. 20)에서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는 말로 국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더니 어정쩡한 정책들로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샀다. 결국 보수정부의 눈치를 살피던 종북집단은 진보세력들과 합세하여 공공연히 목청을 높이다가 급기야는 우리 재판정에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치는 믿기 어려운 일까지 저질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BBK 사건 특검조사로 기우뚱대면서 첫해에 광우병 촛불시위 등 총 89회의 불법폭력시위로 500명이 넘는 경찰이 부상당했고, 2009년 이래 쌍용자동차노조의 공장점거농성, 유성기업노조의 유혈폭력시위, 한진중공업 사태, 한•미 FTA 반대시위 등 불법폭력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세종시 이전 문제에 있어서는 한나라당내 자중지란으로 결국 야당에 백기를 들었다. 전 정권에서부터 추진되어 왔던 한•미 FTA 체결 문제도 진보세력의 반미정서에 밀려 결국 단독처리라는 극단의 방법을 택하고 나서 이의 무효를 주장하는 진보집단들의 불법시위에 엉거주춤하고 있다.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작년 11월 28일 논설에서 현 정권과 집권당에 대해 “극렬파 의원은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시위대는 경찰을 패더니 그제는 경찰서장에게 린치를 가했다…… 불법폭력 시위대에는 아무 말 못하면서, 광우병 난동엔 맞서지도 못했으면서, 선진국의 가혹한 법 집행은 인정하면서, 이 나라의 제복에는 시비를 건다. 그들에게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라의 도(道)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광우병 촛불시위대의 경찰관 2명 린치와 같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방치하여 급기야 경찰서장이 대로에서 불법시위대에 폭행당하는 수모까지 겪은 현 정부는 김진 위원이 지적하듯이 “공권력의 권위라는 국가철학에 관한 한 낙제생 수준”이다. 그러니 여당에서조차 장기불법점거 농성자에 대한 공권력 집행을 반대하고 폭력시위자에 대한 경찰의 물대포 사용에 대해 “겨울철에 차가운 물대포”라고 비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시위현장에 출동한 경찰서장에게 주먹을 날리는 불법시위대를 배려해 겨울용 ‘따뜻한 물대포’와 여름용 ‘시원한 물대포’를 준비시키는 것이 이 나라의 도(道)란 말인가?
도(道)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삶의 ‘길’을 말하며, 이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생활규범이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도(道)란 한 나라가 나라답게 존립하기 위한 국가철학과 법규, 제도, 통치철학, 국민의식 등이며, 나라의 도(道)를 세우고 이를 실천하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나라의 도(道)를 세우고, 나라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도(道)를 벗어나거나 나라의 목표달성을 저해하는 행동에 대해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로서의 자질과 통찰력, 지도력, 통제력 등이라 할 것이다.
금세기 우리나라 최대의 국사(國事)라 할 수 있는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이 나라의 도(道)와 지도자들의 리더십 수준을 엿볼 수 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후 정권 출범 첫해인 2003년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을 국회에서 가결시켰다. 이 특별조치법은 다음해 10월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이듬해인 2005년 3월 다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공포한 후 2007년 7월 20일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을 개최했다. 이것이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노무현 정부의 정치의 도(道)이었고 리더십이었다.
2007년 대선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원안 추진을 공약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다음 해인 2009년 11월 세종시계획 수정방침을 공식 표명한 후 2010년 1월 행정부처의 이전계획을 전면백지화하고 세종시의 개념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전환한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신뢰만 잃었다"고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런 와중에 2010년 3월 16일 기존의 행정도시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를 건설하는 수정법률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였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의 반발과 원안찬성 여론을 제대로 무마하지 못한 채 수정안 강행처리를 밀어붙였던 것이다.
당내 갈등 속에 한나라당은 2010년 6월 2일 서울시 구청장선거에서 25개 구청장 중 무려 21개 자리를 민주당에 내주고도 참담한 반성은커녕 계파간 반목으로 민심을 잃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이던 행정중심복합도시수정안도 결국 2010년 6월 29일 국회본회의에서 부결되어 폐기 처분됐고, 수정안에 앞장섰던 정운찬 총리는 취임 10개월 만에 사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자존심까지 걸린 국가중대사가 국회에서 부결된 후 유구무언인 반면 정당정치의 기본을 깨고 야당의 손을 들어준 박근혜 의원은 수정안 부결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과정에서 돈봉투가 오갔다는 당 소속의원의 폭로로 한나라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것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정치의 도(道)이고 리더십 수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다해외순방기록을 작년에 이미 깨고 최다해외순방을 기록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해외순방으로 이룬 업적과는 별개로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국내에서는 악재가 터졌다. 이 대통령의 캐나다•멕시코•파나마 순방 중에는(2010. 6. 29) 행정중심복합도시수정안이 국회본회의에서 부결되었고, 작년 8월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기간 중에는 서울시 무상급식주민투표 개함이 무산되어 이 대통령 귀국 다음날 서울시장이 사퇴했다. 결국 10•26 재보선에서 연평도포격과 천안함폭침 사건이 우리가 북한을 자극한 탓이라고 주장하는 좌파무소속후보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와 같은 심각한 대형악재들에 대해 이 대통령은 묵묵부답 이상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국민의 분노와 실망을 키웠다.
작년 9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뉴욕방문 기간 중에는 부산저축은행 로비 의혹으로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대한 스폰서 의혹이 폭로되었다. 10월 미국 방문 때는 내곡동 사저 논란이 터져 결국 사저이전계획을 백지화하게 되었고, 이어서 11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과 필리핀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에는 국회에서 한•미 FTA 동의안이 날치기 통과되어 국회파행과 폭력시위의 빌미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악재들을 우연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또한 이명박 정부의 정치의 도(道)이고 리더십 수준이라 할 것이다.
작년 11월 26일 저녁 민노총, 민노당, 참여연대 등이 주축인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사전신고 없이 한•미 FTA 비준 무효 불법집회를 열었다. 전•의경 8000여명과 살수차 5대를 대기시키고 경고방송을 반복하던 경찰에게 우의를 차려 입은 일부 시위대는 "물대포 쏜다고 말만 하지 말고 빨리 쏘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물대포를 쏘지 못하게 하고, 경찰이 시위대에 손이라도 대면 언론이 앞장서서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나니 경찰서장이 불법시위자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피하는 외에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권력 행사가 가장 엄격한 미국에선 고위인사들이 불법집회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도로를 무단점거하고 동료 시의원들과 시위를 벌이던 워싱턴 DC 시장이 현장에서 체포되어 수갑을 찼고, 미연방하원 민주당 원내 수석부대표 등 하원의원 5명이 시위 도중 폴리스라인을 몇 발자국 넘어 걸어가다 경찰에 체포됐다. 영국에서도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는 시위자는 벌금형이나 금고형에 처해진다. 이처럼 폭력시위는 물론 경찰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무관용 주의’로 국가의 공권력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의 자유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경찰을 때려도 체포하지 못한다. 법 때문이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려는 특권의식과 무지한 비판여론 때문이다. 야당의원들은 불법시위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정치권의 권위와 법질서를 짓밟으면서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경찰이 경찰서 안에서 폭행당하며 쫓겨 다니고 취객이 경찰서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리는 나라가 되었다. 이 지경에서 누가 집권을 한들 이 나라의 도(道)를 바로 세우고 리더십을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노태우 대통령은 ‘물태우’라는 별명과는 달리 재임기간 중 공권력의 권위를 지켜가면서 과감한 정책을 구사했다. 국내에서는 국제수지의 흑자와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맞춰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을 전면 자유화시켰고, 1990년 10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조폭 762명을 구속시키며 국내의 조폭조직들을 와해시켰다. 1991년 12월에는 서울에서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하여 남북한의 점진적•단계적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국제적으로는 구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본격화에 발맞춰 1989년부터 1992년에 걸쳐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소련, 중국 등 공산진영 국가들과의 수교를 통해 북한을 압박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남북기본합의서는 사문화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는 DMZ를 침투하던 북한공비 3명을 사살한 사건 외에 북한의 무력도발이 없이 남북간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구축했다.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을 성사시키고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달래던 김대중 정권 당시 두 차례의 간첩선 침투사건 및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우리 함정포격사건(1999년 연평해전과 2002년 서해교전)이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것이 노태우 정부의 정치의 도(道)이었고 리더십이었다.
프랑스가 히틀러에 점령당했던 당시 런던에서 프랑스 임시정부를 이끌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2번의 총리를 거쳐 10년간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했던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은 자신과 국민과 조국을 삼위일체로 여기며 폐허의 프랑스를 강대국 대열에 올려놓았다. 웅변가이자 문장가인 드골은 종전 후의 경제난과 공산주의 위협 등 갈등과 분열의 조짐 때마다 불평•불만에 찬 국민 앞에 직접 나서 단도직입적인 호소로 국민을 설득했으며, 국제문제에 있어선 돈키호테식 전술도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가중대사에 있어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서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2008년 광우병 촛불사태, 2009년 용산 전철연사태, 2011년 한•미FTA 및 4대강 사업 반대,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 등 좌파의 불법과 폭력이 난무할 때나, 2010년 세종시수정안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나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터졌을 때,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을 좌파무소속후보에게 넘겨주었을 때에도 어떤 설득이나 해명이 없었다.
작년 말 교수신문은 대통령과 정부의 소통부재를 꼬집는 표현으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을 ‘올해(2011년)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한•미 FTA 단독처리, 4대강 사업 추진, 역사교과서수정 논쟁, 대통령측근 비리, 농협전산마비, 중앙선관위 디도스(DDos) 공격, 내곡동사저 논란 등의 중대사에 소통부재로 결국 사회적 혼란과 불만만을 키웠음을 생각하면 2011년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을 선정한 것에 공감이 간다.
‘엄이도종’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일화로,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范武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해 혼란에 빠진 틈에 종(鍾)을 훔친 자가 종이 너무 크고 무거워 조각을 내서 가져가려고 망치로 종을 치니 소리가 크게 울려 다른 사람이 종소리를 듣고 와서 종을 빼앗아 갈까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독선적인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판이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나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요즘 우리 사회는 소통부재뿐만 아니라 허위정보의 과잉소통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한 허위정보의 급속한 확대재생산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사회에 혼란과 불만이 급증하는 현상이다. 진보성향 인터넷매체들과 일부 정치인들이나 인기인들이 쏟아내는 궤변, 거짓말, 헛소문, 말장난이 사회를 휘젓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엄이도종’의 도둑처럼 자기 귀를 막고 요란하게 종을 쳐대는 무리들이 널브러져 이 사회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이어 민주통합당도 지도부 예비경선과정에서 돈봉투가 오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친이•친박간의 갈등으로 민심을 잃고 압도적인 지지로 10년 만에 국민이 되찾아 준 우파정부를 다시 내줄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어느 누구도 국민에게 사과하는 자세는커녕 또 다시 비대위와 친이계간의 갈등 속에 저마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 분주하다. 정권은 철새정치꾼들의 잔칫상이나 안철수 원장의 청춘콘서트처럼 추종자들의 열광에 홀로 도취하는 독무대가 아니다. 정치는 정당, 이념, 계층, 성별과 세대의 차이를 어우르고 소통하는 리더십이다. 이런 리더십은 개인의 야망만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추종자들의 열광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정권을 탐하여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엄이도종’의 도둑처럼 나라의 종을 깨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종은 ‘자유민주주의’이며 이를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 우리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정치인들은 정권을 탐하기에 앞서 정치의 도(道)를 먼저 깨우쳐야 한다. 나라를 위해 미국 제헌헌법안에 대한 자신의 반대의사를 기꺼이 털어버리고 감동적인 찬성연설로 미합중국 탄생의 전기를 마련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철학과 원칙을 고수하면서 호소와 설득의 정면돌파로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낸 드골의 리더십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 정치의 도(道)가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