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에서 북한 인권의 전위(前衛)로
이런 게 책임있는 지식인의 모델이다
- 하태경 지음, 『민주주의에는 국경이 없다』 글통, 2011
조우석 문화평론가
한 번 사람에게 끌리니 그가 가진 비전과 철학의 디테일까지 궁금해졌다. 국회의원 하태경(새누리당, 44)의 경우가 그러한데, 실은 지난 달 굿소사이어티와의 인터뷰 때 필자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조주현 박사(서울대 강사)에게 “끼워 달라.” 라고 자청한 결과인데, 길지 않은 시간 대담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 직전 나름 인터뷰 준비를 하며 지난 해 그가 펴낸 두 권의 책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글통) <만화 김정은>(시대정신)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태경은 분명 ‘콘텐츠가 있는 사람’인데, 삶의 내력을 더 알아보기 위해 바로 두 권을 살펴 읽었다.
행운이었다. 이렇게 배짱이 맞고 기분 좋게 읽히는 책은 많지 않다. <만화 김정은>은 지난 해 정초, 그러니까 김정일 사망 거의 1년 전 출간됐는데, 내용이 생각 이상으로 충실하다. 지난 10여 년 새 또 다르게 변화되고 있는 북한사회 분위기도 리얼하지만, 이번 달 서평의 대상은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에 국한된다. 세상이 아는 대로 하태경은 1980년대 극력 운동권의 핵심이었다가 자유주의자로 전향한 사람인데, 자신의 전력을 이렇게 진솔하게 털어놓은 텍스트는 흔치 않다. 본인 말대로라면 종북 좌파 학생운동의 대부에서 지금은 북한 인권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누가 그를 기회주의 변절자로 욕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그게 공허한 신상 발언의 차원을 넘어 시대적 의미가 너끈하다. 시대착오적 생각을 소신인양 끌어안은 채 사회비판을 습관적으로 하고, 리버럴하다는 걸 정치적으로 올바름이자 사회적 훈장으로 여긴 채 우쭐대는 우리네 ‘거품 지식사회’의 풍토에서는 더욱 각별하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안다. 개인사 자체로 흥미진진하지만,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대학가 지식인 그룹의 동향을 훑어볼 수 있는 읽을거리로도 손색없다. 글쎄다. 말 많은 대한민국의 일부는 그를 기회주의자 혹은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태경 본인이 그런 말에 꿈쩍할 리 없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 반대이다.
즉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대한민국과 한반도 운명에 대한 절절한 그의 관심은 20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관통되고 있다. 단 주변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다. 동유럽, 소련의 몰락, 그리고 대한민국의 놀라운 성공과 북한의 대량 아사(餓死)라는 놀라운 현실의 변화 앞에 능소능대하게 운동의 대상을 바꾸고,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히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건 변절이 아니라 성숙이며, 낡은 껍질을 벗으려는 책임있는 노력이다. 고백하지만 이 책을 읽기 직전에 밑줄을 쳐가면서 읽었던 책이 따로 있었다. 또 다르면서도 닮은꼴인 경제학자 안병직·이영훈 교수의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기파랑)이었다.
두 학자의 의기투합이 실로 볼만했다. 특히 안병직 교수는 원조(元祖) 좌파 경제학자였다가 오래 전 개종해 세상을 보는 시선이 180도로 바뀌는데, 필자는 그 분 학문 변화의 궤적이 갖는 진실성에 크게 매료됐다. 우파 진영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것 자체로 희망인데, 안병직·이영훈 그리고 하태경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시대착오적인 종북 좌파, 건국 이후 역사를 실패한 과정으로 보는 외골수의 진보 진영, 지금도 과거사 청산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청맹과니 학자 그룹과 깔끔하게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하태경의 목소리로 건국 이후사가 왜 신데렐라의 탄생이며, 건국과 부국의 지도자 이승만·박정희가 네이션 빌딩의 걸출한 지도자인지를 들어보자.
“북한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선거를 정착시킨 데에 있다. …이승만은 독재도 했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사람이기도 하다. 역사에 대한 입체적 평가가 필요하다.”(p. 84)
“(현대사 공부를 하면서)박정희에 대한 평가 역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 (박정희 집권 초기는) 좌파 성향을 가진 유엔 개발프로그램 같은 기구가 권장한 자립경제 모델 즉 수입 대체 모형이 인기였다. 박정희가 높이 평가 받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다른 개도국의 사례와 달리 박정희는 그 한계를 인식하고 곧바로 국가발전 전략을 수출주도형으로 수정했다. 그가 보여준 이 순발력이 향후 우리 근대사의 산업화 과정에 엄청난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젊었고, 그만큼 실용적이고 개방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다른 아시아·아프리카와 달리 우리나라가 크게 앞서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p. 97)
"이승만·박정희는 네이션 빌딩의 큰 지도자" 진솔한 평가
이 정도의 정치적 각성이라면, 그를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후속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하태경이 현대사를 긍정하게 되면서 예전 불편했던 아버지(38년 생)와의 관계도 회복됐다. 산업화 과정에서 그토록 헌신하신 분을 “역사도 모르는 분”(p. 89)이라고 속으로 업신여겼는데, 지금은 완전 반대가 됐다. 아버지, 당신의 삶을 생각하면 하태경은 눈물부터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변화된 아들을 무한 신뢰하는 부친은 이렇게 말씀한다. “앞으로 네가 무엇을 해도 너를 믿는다.” 그런 하태경의 자기변화는 몇 차례 계기가 있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우선 서울대 극렬 운동권 이후 고려대 국제대학원을 다시 다녔는데, 주입된 도그마를 깨뜨린 진짜 공부가 그때였다. 이후 다시 중국 유학(길림대)을 갔는데 이때 굶어죽는 북한 현실을 발견했다. 1994년 무렵 북한의 대량 기근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한국인으로 거의 가장 빠르게 접했다. 이들 탈북자들을 직접 만나보며,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전태일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하태경이 북한 인권가로 변신한 것도 너무도 자연스런 논리이다. 이미 자유민주주의자로 바뀐 상황에서 비극의 현장과 역사의 피해자들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저쪽 지도자 김정일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는 국경이 없다>와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의 역사관은 상당 대목 일치한다. 하태경이 가진 생각의 학문적 버전이 안병훈·이영훈 교수 대담집이라고 보면 된다. 안병훈·이영훈 교수의 건국사론을 기회에 귀띔하자면, “결과적으로 38선은 근대문명의 북방한계선”이라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서구가 발명한 근대적 자유와 사유재산제는 현대문명 두 개의 초석이다. 그걸 부정하면서 출발한 동유럽과 소련은 자멸했다. 즉 설계 미스의 결과였다. 중국은 뒤늦게 민법을 개정해 사유재산제를 10년 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사회주의 도그마에 충실했던 바보 체제이자, 역사의 돌연변이인 북한이 지금 저 지경의 불량국가로 몰린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그럼 통일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의 본질은 시장, 사유재산, 법치 등의 근대문명이 북한에 이식되고 정착하는 과정”(<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267쪽)이다. 더 이상 명쾌할 수 없다. 어떠신지? 아직까지도 “우리민족 끼리!” 라는 헛구호를 앞세우는 맹목적 통일론자 내지 가짜 민족주의 진영에게는 정문일침이 따로 없다.
'늦깍이 386세대' 안철수에 대한 하태경의 비판
이번 서평의 주인공은 “문명 이전의 사회를 통치하는 최악의 독재자”를 대항해 열린북한방송을 세웠고, 지금 글로벌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꼭 한 달 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의정활동 목표로 북한 민주화와, 한국보수의 혁신 문제 두 개를 꼽았는데, 모두 자신의 고단한 삶의 과정에서 캐낸 캐치프레이즈이다. 그런 내용을 담은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는 쉽게 읽힌다. 그에겐 글을 편안하게 쓰는 재주가 있는 듯한데,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을 꼭 봐야 할 사람은 많다. 1980년대 한국운동권이 가졌던 놀라울 정도의 친북 사회주의의 집단 성향 내지 편향된 정서를 알고 싶은 이라면, 당연히 읽어둬야 한다.
필자는 유신세대이라서 그보다 세대가 10여 년 빠른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어떤 분이 “한국에 빨갱이가 있나?” 라고 하셨던가? 대권 주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안철수 부친 식의 한갓진 소리를 하는 자칭 타칭 리버럴 인사들도 읽어봐야 한다. 실은 젊은 층은 더욱 읽어주길 권한다. 역사에 비약은 없다. 전시대의 아픔과 그걸 깨고 나온 선배 한 명의 고해성사는 <88만 원 세대> 류의 책만 본 당신들, 그리고 <안철수의 생각> 따위의 위선으로 포장된 정치상품에 관심있는 당신들에게는 '보약'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히 시민 교과서로도 손색없는데, 시장 반응이 좋은 건 아니다. 도대체 우파의 책은 왜 이렇게 인기 없을까? 왜곡된 출판시장 풍토 탓인데, 필자가 검색해보니 이 책은 등장할 때 일간지 서평도 거의 없었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메이저 신문에서도 무시당했다. 이번 달 서평 대상으로 올린 것도 그런 사정을 감안한 소리없는 응원이다. 여기에서 보너스 정보 하나가 있다. 대권 예비 주자 안철수에 대한 하태경의 조언이 한 곳 등장하는데, 흥미롭다. 즉 1980년대 학생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채 방관했다는 걸 미안해하는 많은 동료들이 지금도 품고 있는 부채의식을 언급하면서 안철수를 그 전형적 사례로 들었다. 그 대목 인용 직전 마무리 발언. “하태경 의원, 띠동갑인 나는 당신의 팬입니다. 동시대인으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만 해도 어디입니까. 부디 우리가 귀하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실망시키지 말아주기를 바랍니다.”
“안철수 교수도 1980년대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 학생이 가지고 있는 운동권에 대한, 불필요한 부채의식이 꽤 강한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을 ‘늦깍이 386세대’ 라고 부른다. 그런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의 나보다 더 반정부적이고, 반 재벌적이며, 반미적이다. 또 북한에 대해 온정적이기도 하다. 안 교수도 비슷한 것 같다. 그는 의사 공부, 소프트웨어 공부는 치열하게 했겠지만, 나라 체제 이념 등에 대해서는 그만큼은 못했을 것 같다. 그의 발언은 지금 (2012년의) 정치구도를 거의 1980년대(의 도식)처럼 민주 대 반민주로 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p.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