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남의 생각을 짜깁기한 책,
그것도 급조된 흔적이 역력해 수상쩍다
- <안철수의 생각> 비판적으로 읽기
조우석 문화평론가
세상이 알 듯 베스트셀러 <안철수의 생각>은 사실상의 대선 공약집이다. 거리에서 무료로 뿌려지지만 아무도 관심 없는 기존 공약집과 달리 이 책은 서점에서 지갑을 열어 구입해야 한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 사이에 수십만 명이 구입하면서 ‘안철수 현상’의 위력을 또 한 번 보여줬는데, 이게 대선 공약집임을 저자 안철수 자신도 이 책에서 암시하고 있다. “앞으로 책임있는 정치인의 역할을 감당하든, 아니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계속하든, 이 책에 담긴 생각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나아가고 싶다.”(머리말)
대선 출마를 선언하건,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처럼 킹메이커로 그치건 간에 이 책이 자기 사회활동의 지렛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엉덩이를 뒤로 뺀 안철수 특유의 엉거주춤 화법(話法)이 책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선일이 4개월도 안 남은 지금 상황인데도 출마 여부는 물론 핵심 내용에서도 감질 나는 소리를 반복한다. 안철수는 물론 대담자인 제정임 모두 그러한데, 그런 태도가 삶의 무게를 건 진중함 내지 정치철학으로 다가올 리 없다. 특히 이 대목. 아홉 차례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제정임이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안철수에게 물었다.
엉덩이 뒤로 뺀 안철수 식의 엉거주춤 화법
“(대선 출마에 대해) 결심이 되셨느냐?” 이 질문에 안철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되물어왔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책임있는 답변과 일정 제시는 찾아볼 수 없다. 쓴웃음이 나올 판인데, 이때 제정임이 잠시 ‘변사’ 노릇을 자청한다. 인터뷰하며 접해본 안철수에게서는 권력의지가 약해 보인다는 게 전반적 인상이라고 일단 밝힌다. 단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는 개혁의지”(원문 그대로임)는 예사롭지 않다는 게 이어지는 그녀의 또 다른 판단이다. 권력의지는 약하지만, 개혁의지는 강하다? 이런 말장난의 반복의 다음 대목도 문제이다.
제정임에 따르면, 제도권 정치에 등을 돌린 유권자 여론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르며, 때문에 최종 결단(대선 출마)을 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안철수의 몫이란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필자의 눈에 비친 안철수는 자격을 가졌는지 판단하기 이전에 ‘답답이’, 딱 그러하다. 이런 안철수이니까 제정임도 선문답으로 화답을 한다. “(당신의) 고독한 결단만이 남았네요.” 둘은 진지하겠지만, 듣는 이는 어이없다. 어쨌거나 <안철수의 생각>은 이른바 고독한 결단을 앞둔 대선 예비주자가 만들어 보인 대한민국의 미래지도(책의 부제)이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 청년실업, 정리해고 등 노동 문제에서 한반도 평화까지 두루 다룬다. 사회 불안의 징후,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 자본에게도 독이 되는 승자 독식 사회에 대한 비판, 900조 원이 넘은 가계 부채 문제, 중산층의 소멸까지 대한민국이 당면한 의제란 의제는 거의 모두 다룬다. 이른바 망라주의적 태도인데, 여기에 공교육의 붕괴와 교육 개혁, 신생 에너지 의지도 밝힌다. FTA와 농업 문제, 그리고 자유, 여성, 장애인, 그리고 다문화사회의 현실까지를 채 300쪽이 안 되는 단행본에 욕심껏 털어놓았다.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편향된 정보의 나열?
구체적인 내용? 그건 알려진 바와 같다. 전반적으로 민주당 정책과 닮은꼴인데, 구호 좋고 명분 그럴싸한 것이라면 일단 끌어 모았다. ‘싱겁다’ ‘대학생의 모범 작문(作文) 같다’라는 비판의 소리는 피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중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대목이 있다. 복지정책과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相生)문제는 구체성이 약간 살아있다. 벤처기업을 창업·경영한 본인의 체험이 녹아 있기 때문일까? 그 딱 한 곳 빼곤 나머지 대부분 영역에서는 마냥 뜬구름을 잡는다. 정확하게 말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주워 모은 정보를 부지런히 나열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그것도 편향된 정보 위주인데, 그래서인지 필자는 안철수라는 벼락치기 대선 예비주자의 머리 내부를 어렵지 않게 스캔할 수 있다고 감히 판단한다. 특히 논란되는 것이 “소통 부재와 개발만능주의 정부가 빚은 참극”이라고 표현한 제주 강정마을과 용산참사 대목이다. 사태의 실체를 모르면, 그런 식의 물에 물탄 레토릭을 반복하는 법이다. 천안함의 진실 문제를 놓고 “기본적으로 정부 발표를 믿습니다. 다만,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문제가 커졌다고 생각”(159쪽)한다는데, 매사가 그런 식이다. 더 이상 어떻게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사실 조사와 공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안철수의 엉거주춤주의란 보수 진보의 균형을 잡는 척하며 좋은 말이라면 일단 쓸어담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반영하는데, 이게 책 전체를 관류한다. 그런 게 바람직한 중용적 태도나 균형이 아님은 물론이다. 욕심 사나운 태도? 그런 것도 아니다. 핵심은 간단하다. 그런 모호함이란 안철수라는 남자의 철학 부재, 비전의 실종을 보여준다고 나는 본다. 정당이란 정치의 지렛대도 없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변덕스러운 국민 지지율에 등 떠밀려 예비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와중에 그가 무리수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 대표적인 사례는 부지기수인데, 그 중 하나가 다음이다.
“학교교육이 입시 경쟁을 벗어나 총체적인 전인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사와 학교 경영진, 학부모들이 이런 방향에 대해 공감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성과주의, 1등이면 뭐든 용서되는 교육풍토를 바꿔야지요.…함께 잘 사는 사회가 목표가 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게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회 전체가 함께 변해야 하고요.”(202쪽)
지루한 동어반복을 줄였음에도 이런 식이다. “총제적 전인교육”, “성과주의 탈피”, “함께 잘 사는 사회”, “잘할 수 있는 길 찾아주기”, “사회 전체가 함께 변화하기”…. 불과 책 한 페이지가 이런 상투어와 군더더기로 가득하다. 이게 무얼 말해줄까? 거의 단정해도 좋다. 두루뭉술한 레토릭의 반복 속에 정치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비전과 철학은 없다는 증거라고… 설사 그런 ‘미래 지도’가 있다고 해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그에게 없다고 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건국사와 현대사를 보는 시각도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이다.
현대사에 대한 구렁이 담 넘어가는 해석
“우리는 선진국들보다 훨씬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 산업화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 민주화의 논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요.”(37쪽). 뭐하자는 건가? 전형적인 절충주의적 화법에 자기 시각과 안목은 없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려도 좋으리라. 빌려온 남의 생각을 짜깁기해 만든 책, 그것도 1년 내외의 속성 교습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급조된 수상한 책이 <안철수의 생각>이다.
필자는 다른 건 몰라도 책을 감별하는 능력만은 좀 있다고 자부하는데, 자주 구사하는 어휘 몇 개나 목차만 훑어봐도 눈에 훤하다. 좋은 피아니스트인지 아닌지, 자기 스타일이 있는지의 여부는 첫 소절 첫 음표를 때릴 때 번개처럼 감지된다. 아니 무대 위를 걸어 나오는 태도만 봐도 그가 어떤 음악을 펼치리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나의 중간결론은 이렇다. 한 무자격자의 용감한 출사표, 그러나 내용은 부실하며, 싸움터로 나갈 담대함조차 부족한 자의 공허한 결전 의지….
나의 이런 판단이 예단(豫斷)으로 끝나길 바란다. 그가 책임있는 자리에 올라 이 나라를 통치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밝히지만 필자의 이런 판단은 <안철수의 생각>만을 보고 내린 결론이 아니다. 그가 예전에 펴낸 단행본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김영사)를 다시 봤지만, 같은 결론은 피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그는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이 모자라다. 설사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간결하고 소박하게만 풀어놓는다면, 그게 외려 미덕일 수 있지만, 그마저도 없다. 약간 있는 건 공허한 레토릭의 반복이 거의 전부이다. 그것도 남이 붙여준 장식품이다.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는 “그(안철수)가 꿈꾸는 건 영혼이 있는 기업”이라고 되어 있지만, 당시 흔한 경영학 실용서의 유행어를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출판사는 안철수를 “정직과 진실로 승부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때부터 치켜세우고 있던데,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다. 실체보다 부풀려진 안철수의 이미지는 당시 벌써 커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 안철수의 책 비판적으로 읽기는 책 두 권만을 보고 내리는 판단이 아니다. 주변의 친구를 보면 주인공까지 알 수 있는 법인데, 그의 숨은 책사(策士)인 박경철이 연구 대상이다.
한국이 정의와 공정성이 결핍된 사회라고?
박경철은 ‘시골의사’란 이름으로도 제법 알려졌고, 안철수와는 이른바 청콘(청춘콘서트)을 함께 하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멘토 소리를 들었던 사이이다. 지난 해 서울시장 후보 양보를 둘러싸고 안철수와 박원순 사이를 오갔던 주인공이니, 안철수의 복심(腹心)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지난해 말 신간 <자기혁명> (리더스북)을 펴냈다. 청년들을 위한 장외(場外) 교사임을 자임하는 그는 자기 책에서 제법 엄숙하게 목소리 톤을 조절한다. “시장 만능주의가 미래를 어둡게 한다.” 다음 대목을 유심히 살펴보시라.
한국사회는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 박사의 아바타”(19쪽)이며, 지금은 “정의와 공정성이 결핍된 시대”(387쪽)이며…. 이런 대목이 지천에 깔려 있다. 검증 불가능한 비판의 칼을 마구 휘두르는 박경철, 한 마디로 방자한데다가 매우 위험한 사람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따로 있다. 박경철은 “체념과 비탄을 결의와 공분으로 바꾸자”는 선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섣부른 사회비판을 안철수도 상당 대목 공유하고 있다고 필자는 가늠한다. <안철수의 생각>을 보면 본래는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책을 펴내고 싶었다고 고백하는데, 만일 나왔다면 박경철의 <자기혁명>과 흡사했으리라.
그래저래 필자의 눈에 <안철수의 생각>은 짜깁기의 책이며(형태로는), 불량식품의 수준이라서 쓴웃음이 터져 나오는 책에 불과하다. 뒤표지에 이런 굵은 활자가 보인다. “도전은 힘이 들 뿐, 두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안철수에게 기회에 조언을 하나 해주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레토릭으로 무얼 겨냥하는 줄을 나는 알겠다. 그러나 당신이 도전할 수 있는 것에만 도전하길 바란다. 혹시 품을 줄 모를 당신의 엉뚱한 욕심과 만용 때문에 나는 요즘 잠자리가 두렵고 뒤숭숭하다.”
지난 달 서평에서 국회의원 하태경이 안철수를 짧게 평했던 말이 생각난다. 안철수는 ‘늦깎이 386세대’인데, 1980년대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 학생이 가지고 있는 운동권에 대한, 불필요한 부채의식이 꽤 강하다는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의 나보다 더 반정부적이고, 반재벌적이며, 반미적이다. 또 북한에 대해 온정적이기도 하다. 안철수도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라는 게 하태경의 말이다. 지금 (2012년의) 정치구도를 거의 1980년대(의 도식)처럼 민주 대 반민주로 본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는 지적인데, <안철수의 생각>을 겹쳐 읽으니 더더욱 공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