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사회를 비추는 거울 ‘안철수’
우창록 (재)굿소사이어티 이사장
요즘 어딜 가나 4개월도 채 안 남지 않은 2012년 제 18대 대선 전망이 화제입니다. 중장년층에서 청년과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모였다 하면 누가 각 당의 최종 대선 주자로 등장할까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입니다. 비전과 정책에 대한 토론은 뒷전인 채 관전평이 일단 요란합니다. 이미 등장했거나, 등장이 예상되는 유력 후보에 대한 품평은 물론, 또 다른 인물이나 변수의 등장으로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도 따집니다. 후보 교체 말고도 전혀 뜻밖의 변수가 돌출해 판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측됩니다. 즉 대선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정치 특유의 역동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그리고 정치과잉 현상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특이하게도 중앙정치, 그것도 대권 주자 몇 명에 과도한 관심이 몰려있는 구조이며, 상대적으로 공동체로서의 지역사회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굿소사이어티 이슈레터 9월 호는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작된 뒤 지금까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안철수 현상”을 짚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어느 쪽을 편들 생각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오래 전 재단이 선언해온 가치 두 개를 황금률로 삼아 분석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재확인하지만 사회통합이야말로 굿소사이어티의 가치이며, 세부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 법치주의 사회, 합리적 시장경제 등이 우리의 철학입니다. 이 거울에 비쳐본 “안철수 현상” 분석이 이번 호의 핵심 내용입니다. 구체적인 ‘안철수 현상 읽기’ 논의는 전문가 세 분의 몫입니다만, 여기서 잠시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 보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대선을 넉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집권 여당의 유력 후보를 제치고 정치에 발을 담근 적도 없는 장외(場外) 인사가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는 현상부터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안철수 교수 본인의 고백도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정치는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열정을 갖고 계속 몰두할 만한 일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를 지금까지 자문(自問)하고 있다고 그는 자기가 펴낸 책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의 역량을 내세웁니다. 40대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 철강 회사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맡아 60~70대 이사들과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강조합니다. 이와 별도로 이른바 청콘(청춘콘서트)이란 이벤트를 통해 20~30대와도 교감했다고 자부합니다. 이런 비정치적 경험이야말로 정치에서 소통과 합의를 이뤄내는 강점이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안철수 현상”은 제도권 정치, 기존 질서가 철저히 불신 당하는 매우 한국적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게 안타깝습니다. “안철수 현상”은 극히 한국적인 상황의 부산물이 아닐까요? 안철수가 아닌 그 누구라도 비슷한 모양새와 요건 몇 개를 갖춘다면, 제도권 정치의 대항마로 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도권 정치에 발 담근 전력이 없어야 합니다. 동시에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연성(軟性)의 이미지에 기존 역사의 부정, 공정사회, 경제민주화 등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을 가끔씩 던져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콘으로 떠오를 수 있는 에너지와 상징성을 갖춘 인사라면, 언제든지 기성정치인을 물리치고 대선후보로 등장할 수 있는 게 한국사회입니다. 책임 있는 주류가 없는 한국사회의 풍토 속에서 제2의 안철수, 제3의 안철수는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여야를 막론한 제도권, 그리고 주류 사회의 자기반성이 절실한 대목입니다. 이런 측면 때문에 안 교수를 보고 ‘건드리면 더 커지는 사람’이라는 말이 시중에 나옵니다. 안철수를 합리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무작정 비난할 경우 외려 안 교수의 지지율만 높여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묻지도 않고 좋아하는 현상’에 대하여 무언가 짚어 보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사실 10년 전 “노무현 현상”도 그랬습니다. 그는 제도권 내의 국외자였습니다. 노무현 바람은 제도권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묻지마 투표’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철수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 보다는 2012년 여름에 “안철수 현상”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근본적인 문제, ‘책임 있는 주류’의 재구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굿소사이어티가 앞으로 해야 할 큰 영역이 바로 이 대목이 아닐까 새삼 생각을 합니다. 이슈레터는 선택과 집중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듯이 이번 달은 “안철수 현상 읽기”에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원고도 풍요롭습니다. 기획연재 중인 ‘경제민주화의 덫’ (필자 좌승희 서울대 겸임교수)도 여전히 흥미롭고, 논쟁적입니다.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구두선으로 외칠 때 ‘아니오!’라고 외칠 소수의견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제 이슈레터의 고정란으로 자리 잡은 ‘굿소사이어티 서평’도 관심이 갑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펴낸 <청개구리 성공신화>란 책이 우리의 관심인데, 고진석(독서 컨설턴트) 리뷰어는 무려 35매에 해당하는 장문의 서평을 보내왔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모두가 실패할 것이라 예측했던 한국경제는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다. 아니 기적이기 전에 수수께끼이다. 한국의 발전 모델은 우연이 아니며, 후진국에서도 재현 가능한 최고의 대안 모델이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발전의 요인을 제대로 알고 전수하자!” 그게 저자가 한국경제발전론 <청개구리 성공신화>를 쓴 이유인데,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주장입니다. 서평도 정교하고 진지해서 그 자체만으로 훌륭합니다. 다음 달 새 이슈레터가 나올 때쯤이면, 무언가 어수선했던 많은 것들이 교통정리가 되고, 말끔히 정리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