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속의 괴물들
- 온라인게임의 사회적 심각성을 말한다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지난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3500여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나라 게임리그인 GSTL(Global Starcraft II League)의 결승전이 열려 우리나라 10대 프로게이머가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e-스포츠’계의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최고 수준의 유무선 인터넷망과 PC방의 확산으로 ‘온라인게임(네트워크게임)’과 프로게임리그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겠지만,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온라인게임에 몰두해왔기에 미국 미디어업체가 주관한 대회에서 한국의 프로게이머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지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온라인게임으로 유발된 사회적 부작용이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조선일보’가 온라인게임의 부작용과 사회적 병폐에 대해 집중 보도한 바 있다. 게임 중독 청소년들의 끔찍한 사례들을 돌아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된다. 작년 7월에는, 투신자살한 70대 여성의 시신을 한 고교생이 흉기로 찌르고 폭행까지 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얌전한 성격의 이 고교3학년 학생은 FPS(First Person Shooter: 1인칭 슈팅게임) 등 폭력성이 강한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온라인게임 세계에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게임이 수두룩하다. 가상인간을 전기톱이나 면도칼, 쇠꼬챙이 등 끔직한 도구로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한 괴롭히는 ‘고문게임’도 있다. ‘스타크래프트2’와 같은 유명 게임들도 폭력성에서 예외가 아니다. 온라인전투게임의 세상은 상대를 제압하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생사가 걸린 전쟁터이다.
물론 모든 온라인게임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어서 교육적인 게임들도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청소년들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에서 스릴을 느끼며 더욱 더 폭력적인 게임에 빨려 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제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실제현실을 혼동하고 게임 속의 폭력을 현실세계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현상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끈질긴 국민성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폭력적인 게임에 중독된 사람은 인지능력과 감정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폭력에 둔감해져서 실제 행동도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주위사람들에게 게임 속 상대를 대하듯 폭력을 가하며 일종의 ‘새디즘’(sadism)에 빠져들 수도 있다. ‘새디즘’은 주로 남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충동을 만족시키는 변태적 성심리(가학성음란증)를 지칭하지만, 성적 성향과 관계없이 남에게 잔인하게 고통을 주거나 남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심리를 말하기도 한다. ‘새디즘’은 ‘사이코패시(psychopathy)’와 같은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나타나서 강도, 강간, 연쇄살인 등 각종 강력범죄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성가족부가 작년 10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독서량은 계속 감소한 반면 온라인게임 이용시간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청소년 10명 중 9명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온라인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스마트폰 소지율이 2010년 5.8%에서 2011년에는 36.2%로 급증했다. 스마트폰으로 때와 장소의 구애 없이 모바일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과(過) 몰입의 폐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컴퓨터게임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들이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어른들이 온라인게임 세계를 모른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밖에서 온종일 모바일게임을 하거나 온라인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들여 게임아이템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수백 만 원에서 수천 만 원에 달하는 인기 있는 게임아이템을 사기 위해 청소년들이 폭력과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기도 한다. 게임아이템은 게임업체나 아이템 중개업체를 통해 구입하거나 게이머들 간에 직거래로 매매된다. 지난 2월 조선일보 특집보도에 따르면, 온라인축구게임에 빠진 한 중학생은 자신의 팀을 최강팀으로 만들기 위해 부모의 신용카드를 훔쳐 돈을 마련해 '메시'나 '다비드 비야' 같은 유명선수(게임 아이템)를 1000만원에 사기도 했다. 『게임중독이 도박중독으로 전이된 것이다. 이처럼 게임에서 시작된 중독 증상이 다른 중독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게임의 병폐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정부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사업목적으로 게임아이템을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작년 11월 만16세 미만 청소년들이 자정 이후 오전 6시까지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한 '셧다운제'를 실시한 데 이어 올 2월에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에 '쿨링오프제'를 포함한 게임규제안을 포함시켰다. '쿨링오프제'란 2시간 단위로 게임접속을 자동 차단하여 10분 후 1회에 한해 재접속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최고의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문화 콘텐츠 수출의 첨병으로 대우받던 한국의 게임 산업이 학교폭력과 청소년비행의 주요 원인으로 전락하여 술이나 담배와 같은 청소년 유해요소의 하나로 규제를 받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규모는 2001년 약 3조 원 규모에서 10년 만인 2011년에는 약 8조 5천억 원의규모로 성장하여 수출액만도 약 2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는 K-pop의 시장규모가 약 1천억 원이고 우리나라 영화수출 규모가 약 2백억 원인 것에 비하면 게임 산업은 거대 규모의 ‘한류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한 것은 스마트폰 보급이 급증하고 4세대 이동통신기술인 LTE(long-term evolution)의 전국망이 구축되어 모바일게임을 비롯한 온라인게임이 청소년문화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온라인게임에 중독된 20대 임신부가 양수가 터진 줄도 모르고 게임을 하다가 PC방 화장실에서 출산 후 영아를 유기·치사한 사건으로 사회가 경악했다. 이 여인은 7개월 동안 동거한 아기 아버지의 인적 사항도 모른 채 '동거하면서도 그와 게임만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작년 7월 폭탄테러와 총기난사로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테러범 안데르스 브레이빅의 범죄동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브레이빅이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을 혼동하는 듯한 정신 상태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게임산업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인재들이 모여 고부가가치의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대표적 업종으로 급성장하여, 기업과 기업가에게는 대박을 안겨줬고 나라에는 수출증대의 경제효과를 가져다 줬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가 황금알 수확에 연연하는 사이에 이 사회는 청소년들이 모바일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들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게임 속 전투에 몰입하는 거대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가상현실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현실세계에서도 인간성이 실종된 잔혹한 전투를 벌인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정부는 물론 온라인게임의 황금알로 부(富)를 축적해온 관련업계 모두가 게임으로 야기된 사회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책임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