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독재자인 그는 왜 영웅으로 평가받나?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앤드류 망고 著, 곽영완 옮김
조우석 문화평론가
"폐허의 국토! 기진맥진한 국민! 희망 없는…산발적인 항거! …진정 터키는 이대로 망하고 말 것인가. 진정 터키를 구할 용자(勇者)는 없는가?" "케말 파샤! 그는 터키의 국부(國父)이다. 우리는 터키를 머리에 그릴 때 이 혁명의 영웅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터키의 국민혁명을 말하려면 먼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 나라의 참상부터 인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앤드류 망고 著, 곽영완 옮김, 애플미디어)를 읽으면서 필자가 내내 떠올렸던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고 박정희 대통령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1961년 전후 박정희는 터키의 지도자 아타튀르크(1881~1938)를 자신의 롤 모델이자, 영웅으로 삼고 있었다. 막상 아타튀르크를 다룬 전기, 평전 등은 국내 독서시장에서 흔치 않았다. 어린이용 몇 권 빼놓고는 거의 없었다. 반 박정희 심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인데, 마침 등장한 이 책은 그동안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아타튀르크를 알 수 있고, 박정희의 심리상태도 감지할 수 있어서 ‘양수겸장’의 읽을거리다.

근현대 터키의 영웅 아타튀르크를 아십니까?
필자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읽다가 박정희가 펴냈던 책 <국가와 혁명과 나>란 옛날 책까지 꺼내 함께 뒤져봤다. 1963년 발간된 박정희의 책을 뒤적이면 앞에 인용한 문장이 대뜸 나온다. 느낌표를 남발하는 문장에서 암시되겠지만, 무언가에 비분강개했거나 심하게 요동치는 박정희의 심리상태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위기에 놓인 조국을 위해 몸을 던졌던 아타튀르크와, 거의 반세기 뒤 한반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국가와 혁명과 나>란 옛날 책은 거의 10여 페이지를 아타튀르크와 터키의 근·현대사 서술에 할애한다.(참고로 함께 언급되는 건 이집트의 나세르, 일본 메이지유신 기간의 메이지천황 등이다) 상식이지만, 아타튀르크가 태어날 즈음은 휘황찬란한 오스만제국 600년의 영광이 거의 완전하게 사라진 국면이었다. 독일과 동맹을 맺었던 1차 세계대전의 패배가 터키에게 결정타였다. 이내 투르크·그리스·아르메니아 등 민족· 종교에 따라 사분오열됐고, 서로 으르렁대며 나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등장했던 영웅이 아타튀르크이었는데, 그의 관심은 자명했다. 근대적 민족국가 터키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뭔가 익숙한 명제가 아닌가? 박정희가 내내 외쳤던 조국근대화, 민족 중흥의 캐치프레이즈가 떠오르지 않는가? 아타튀르크는 물론 박정희를 사로잡은 심리는 당시 20세기 내내 한반도를 포함한 약소민족 거의 모두에게 큰 관심거리이기도 했다. 당시 지도자 박정희는 그런 앞뒤 배경을 자기가 쓴 단행본에 담아 국민들에게 직접 읽혀가며 동의를 얻고 싶어 했다. 그게 <국가와 혁명과 나>가 출판됐던 배경이다. 물론 대필했다. 하지만 대필이 대수인가? 1963년 여름 박정희는 대필자 박상길이 쓴 <국가와 혁명과 나> 원고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꼭 제 마음속을 다녀오신 것처럼 정확하게 써주셨습니까?”둘 사이의 대담을 거쳐 이 책을 썼는데, 이 작업은 요즘 집권 초기 박정희의 정치철학과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썩 귀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월드컵과 6·25를 함께했던 '형제의 나라' 터키, 그 나라 근·현대사의 지도자가 1960~70년대 우리 초중고 교과서에 실렸는데, 그것의 앞뒤 배경이 바로 그러했다. 지금 중·장년층은 옛날 교과서에 등장한 이름대로 케말 파샤로 기억하겠지만, 그의 공식 이름은 좀 길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아타튀르크는 '투르크인의 아버지', 즉 국부(國父)를 뜻한다. 국민이 존경의 뜻으로 만든 것인데, 별명 차원을 넘어 영예로운 성씨로 격상됐다. (근대 터키가 연출해낸 정치 리더십과 대중 팔로워십 사이의 행복한 만남이라서 필자는 저들의 형편이 부럽기조차 하다. 이대로라면 박정희에게는 '아타코리아'이란 이름이 붙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아타튀르크 집권기간은 사망하기 전까지 15년. 이때 국가 기반을 닦아 유럽 따라잡기 레이스를 펼쳤다.
아타튀르크는 '투르크인의 아버지'라는 뜻
그런 그를 다룬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 근현대사이자, 우리의 내력처럼 읽히는데, 근대적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 국가 만들기)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가를 새삼 보여준다. 실은 저들의 성공만큼 우리도 반세기 뒤에 네이션빌딩 작업에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 사회간접자본과 중화학공업 분야 등은 저들을 크게 추월했고, 때문에 터키는 한국경제 성공의 비밀을 배우려 한다. 그런 배경을 따져볼 수 있는 이 책의 등장은 정말 반갑다. 영국BBC 기자 출신의 저술답게 객관적인 게 장점인데, 여기에서 궁금증이 든다. 건국과 부국 지도자에 대한 터키의 국민적 존경심 때문인데, 저들과 우린 왜 이렇게 사정이 다를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읽는 필자의 가장 큰 관심은 그 대목이다. 터키의 웬만한 도시에서는 아타튀르크 이름이 붙은 도로가 흔하고, 이스탄불 공항에도 그의 이름이 있다. 터키인들이 그를 독재자보다 국부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애국심과 민족애가 남달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족의 문화를 믿고 민족의 저력을 믿었다는 점도 국민의 신망을 받는다. 철저히 외세 의존적인 생각을 배제했다는 것도 아타튀르크의 매력이다. 타 민족이 갖추고 있던 좋은 점만은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이 때문에 그는 터키인들 뿐 아니고 세계의 모든 역사가들이 추앙하는 제3세계의 지도자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 면에서 박정희가 아타튀르크에 뒤진다고 필자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다만 지도자를 바라보는 그 나라 시민들의 잣대와 태도가 다를 뿐이다. 아타튀르크도 '독재자와 영웅'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 지도자로 평가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에게 ‘독재자’라는 멍에를 씌운 건 15년간의 장기 집권에만 초점을 맞춘 외부세계와 세속주의 정책에 반감을 지녔던 이슬람 지도자 일부이다. 터키 국민들은 그를 나라의 기반을 다진 ‘영웅’으로 추앙하며 지금까지도 존경심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는 건국과 부국의 지도자 이승만, 박정희 두 명에게 합당한 존경은커녕, 외면과 폄하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건국 이후 우리 현대사가 실패한 역사라는 대중적 정서와 학계 일부의 목소리가 너무 세기 때문이다. 20세기 대한민국은 지구촌의 신데렐라 국가로 떠올랐다는데 그 사실을 외면하려는 시선이 아직 많은 것이다.
왜 우리는 '아버지 죽이기'에 코 박고 있지?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 중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난 몇 안 되는 국가이며, 더 나아가 근대적 산업경제를 건설하고, 안정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정착시킨 국가”라는 시선을 외면하는 것이다. 앞의 인용은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 그렉 브라진스키의 저술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원서 제목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에 등장하는 말이다. 신데렐라 국가로 일어선 한국 현대사의 현실과 달리 한국 학계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좌파가 주도하는 역사 허무주의이다.
그래서 중-고교 역사 교과서가 내내 그 모양이고, 그들은 1960~70년대 개발 시기를 회고할 때 습관처럼 “암울했고, 어두웠던 역사”라고 헛소리를 반복한다. 이승만의 1950년대 역사 역시 민족의 자생적 꿈이 외세에 의해 깨졌다고 아예 단정하기도 한다. 19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 역사를 정통성이 없다고 규정하는 것도 예사이다. 그게 우리 시대 대중정서이다. 무언가 많이 잘못된 사회정서인데, 그게 실로 안타깝다는 걸 일깨워주는 책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이다.
반복하지만 이 책은 터키근대사와 함께 국민영웅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어제 오늘도 보인다. 아타튀르크를 다룬 단행본은 국내에 흔치 않았던 점, 어린이용 몇 권 빼놓고는 거의 없었던 이유도 보다 분명해진다. 뭘 모르는 학계와 대중사회, 이런 시류에 영합하려는 출판계의 '얼렁뚱땅 상업주의' 풍토에서 아타튀르크 책을 펴내는 건 거의 실책이다. 아타튀르크하면 누구나 '꺼내선 안 되는 이름' 박정희부터 연상할 테니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이런 분위기를 뚫고 나온 '눈치 없는 책'이다. 그래서 더욱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