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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 운동권이 한국현대사를 만나기까지
조우석   |  2012-12-21 18:37:56  |  조회 5777 인쇄하기
골수 운동권이 한국현대사를 만나기까지

 

- <유령과의 역사투쟁> 황성준 著


조우석 문화평론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미국 팀과 소련 팀 사이에 벌어졌던 극적인 준결승 농구경기. 우승후보인 미국 팀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경기이다. 그보다 놀라운 건 당시 세계 언론의 보도였다. 그들은 약체 소련 팀의 깜짝 승리라는 뉴스와 함께 한국 관중석의 소련 팀 응원 분위기를 타전하기에 바빴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스포츠 뉴스이자, 한국사회 변화 징후이기도 했다.


기억하시는지? 약 200명의 낯선, 그러나 잘 조직된 젊은 응원단이 관중석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들이 주도한 응원 때문에 경기장은 적성(敵性)국가 소련의 홈그라운드를 방불케 하는 일대 이변을 일으켰다. 스코어는 76대 82. 미국과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한국에서 그토록 강력한 미국팀이 일방적으로 야유를 당했고, 경기도 패배했다. 당시는 냉전시대 한복판이 아니던가. 불과 1~3년 뒤 눈앞에서 벌어진 사회주의권 대붕괴의 징후를 아무도 감지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25년 전 서울올림픽 때 일어난 운동권의 '반란'


지금 일반인들은 “그때 그랬었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어쩌면 그건 한국사회에 불기 시작한 이른바 반미 정서의 첫 분기점인지도 몰랐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혹시 숨어있는 손, 즉 연출자는 있었던 것일까? 있었다면 누구였을까? 이 경기의 앞뒤 맥락을 꿰게 해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유령과의 역사 투쟁>(황성준 지음, 미래한국미디어 펴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전대협을 포함한 학생운동권은 이른바 분단 올림픽 저지투쟁을 기획했고, 일부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대한 옹호 투쟁을 벌였다. 몰락하는 세력에 대한 눈먼 지지 움직임이 25년 전, 그러니까 사반세기 전 서울의 대낮에서 운동권의 주도로 이뤄졌던 것이다. 운동권은 미국과 소련이 맞붙은 당시 농구경기야말로 시범 케이스라고 운동권을 판단을 했는데, 현장에서의 소련 응원을 주도했던 주인공이 <유령과의 역사 투쟁>의 저자 황성준(49, 주간 ‘미래한국’편집위원, 동원대 초빙교수)이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이던 그는 이런 ‘투쟁결과’를 시내 호프집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운동권 지휘부를 찾아가 의기양양하게 첫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다. 그는 사회주의를 동경한 나머지 소련으로 직접 들어갔다. 그게 올림픽 3년 뒤인 1991년도의 상황. 이 과정에서 ‘콜라를 밀매해야 하는’ 현실사회주의의 모순을 경험했고, 소련이 붕괴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그러면서도 이념의 덫에 잡혀있던 그의 맹목적 신념은 전혀 변치 않아 소련 응원전의 성과를 모스크바의 공산당 간부에게 급기야 자랑까지 했다. 충격적인 것은 그때 당 간부의 고백이었다.


“그러나 1991년 8월 소련 불발 친위쿠데타 이후 소련이 사실상 해체돼 갈 때 88서울올림픽이야말로 사망해가던 소련 사회주의에 대해 마지막 일격을 가한 사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당시 (저자는) 소련공산당 국제국 비서들과 토론한 시간을 가졌는데, 이들은 88올림픽의 충격은 뇌사 상태로 누워있던 소련 사회주의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보란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177쪽)


"대한민국 건국과 부국(富國)은 세계사의 드라마"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사회주의 붕괴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던 대한민국 좌파 운동권 학생, 붕괴 직전의 공산주의 소련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들려주던 소련 공산당 간부…. 또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부국(富國)의 드라마는 거의 세계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발견도 중요하다. <유령과의 역사 투쟁>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많은데, 문제는 따로 있다.


그런 ‘현실 따로, 인식 따로의 대한민국 현대사’ 문제는 2010년대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다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게 문제이다. 저자는 그 숙제를 책 제목대로 ‘오래 전에 사라져야 했을 역사의 유령(幽靈)’이라고 규정한다. 건국 이후 성공한 현대사에 애써 눈 감고,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유령에 매달리는 놀라운 역설적 국면에 대한 지적이다. 지금 건국사에 대한 인식의 미비 내지 자기비하의 상황이란 역사 유령이 출몰하는 비상식적 상황이라는 문제제기이다.


그걸 정면에서 지적하는 <유령과의 역사 투쟁>은 흥미롭다. 전형적 386 운동권 세대의 자기고백이자 전향 이유를 담았지만, 전향 전후 국내와 소련을 포함한 국외의 리얼리티가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어리석었던 지난날에 대한 뉘우침? 맞다. 변한 세월 아직도 눈치 보고 있는 이른바 진보세력 학자들의 어정쩡한 태도에 비춰 이 책은 놀랍게도 진솔하다. 다음은 그의 고백이다.


“나는 20대 청년시절에는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국가이고,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가 바뀌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유령과의 역사 투쟁>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성공한 대한민국 건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아직도 옛 유령에 홀려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심장과 두뇌를 어떻게 되찾아올 것인가를 묻는 지금의 과제를 잊지 않는다. 오래 전 이념을 털어내고 전향한 저자에 따르면, 역사의 유령을 정리해주는 일은 그 나라 시민교육 차원의 문제이다. 상식이지만, 그것은 사회 주류계층의 의무이기도 하다.


<유령과의 역사 투쟁>은 그 역할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을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빼앗긴 보수우파의 위기”라고 규정하는데, 그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로 요약된다.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이책에서 눈여겨볼 점은 미국사회에 대한 분석이다. 미국에서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좌파적 이념이 지식사회의 유행으로 등장했고, 1960년대 68혁명 이후 반전운동 등을 계기로 활개를 쳤다. 단 이에 대응한 그곳의 책임있는 사회주류는 정교한 이념 전투(the battle of ideas)를 반세기 훨씬 넘기 전부터 준비했다.


궁극의 질문  "젊은이들의 심장을 어떻게 되찾아올까?"


“미국이 직면한 위기는 본질상 지적, 아니 정신적 위기”라고 진단을 내렸고, 그게 1930년대 경제교육재단(FEE) 설립, 이후 보수주의 싱크탱크의 설립으로 가시화했다. 1960년대 벌어진 그런 지식 운동, 이념 전투의 분위기 속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정치입문을 시작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이 책은 지적하는데, 그게 시사하는 바는 한국사회에 무척이나 많다. 사실 이 신간에 대한 관심은 12월 26일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국립근현대사박물관으로서, 개항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중심으로 건국과 부국에 역점을 두는데, 이게 ‘유령과의 역사투쟁’에서 분기점이 될지 아닐지를 지켜봐야 한다. 이 책의 저자 황성준의 지적대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빼앗긴 보수우파의 위기는 한국이 직면한 위기는 본질상 지적, 아니 정신적 위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실은 <유령과의 역사 투쟁>은 서평집이다. 킴 필립스-페인의 〈보이지 않는 손들(Invisible Hands)〉등 33권의 책에 대한 소개를 겸하고 있다. 매 책 소개 때마다 저자의 경험담과 에피소드,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한 시각이 녹아들면서 유기적인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한 Ex-Communist의 책과 세상 읽기’로 되어있지만, 책 정보도 얻고 애국주의적 시각도 챙길 수 있다.


33권은 주로 영미권의 고전 반열의 저술들이라는 게 특징이다. 당대를 뒤흔들었던 지성인 33인의 명저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는 33권의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독자들에게 준다. 참고로 저자 황성준은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인 단편소설〈소나기〉의 저자인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손자이며, 유명한 시집〈즐거운 편지〉를 펴낸 황동규(전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의 조카이다. 여러 가지로 흥미롭게, 진지하게 읽히는 것은 그런 문화사, 사회사의 맥락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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