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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양의 선진국에서도 일반인들이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갖게 된 것이 별로 오래 되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대가족제 하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장인(匠人)들은 (한두 명에서 열댓 명까지의) 도제들을 한 가족처럼 데리고 살았고, 서양인들도 예전에는 자녀를 여럿 두었는데 보통 가정의 경우 방이 모든 자녀에게 하나씩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영국의 경우 대량 생산 체제가 발달하면서 수공업의 쇠퇴와 함께 핵가족화가 진행돼 18세기부터는 핵가족이 보편적인 가족 형태가 됐고 그로부터 사생활이 존재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사생활의 일반화와 함께 현대적 의미의 소설 문학이 탄생했다.
그 이전에는 ‘문학’이라면 으레 서사시나 서정시 등의 시 또는 희곡을 말했고 ‘소설’의 전신이라 할 설화체 문학은 대개 잡다한 사건이 어떤 필연적인 연관성 없이 일어나는 문학성이 낮은 ‘이야기’였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소설은 개인의 성격이 그가 처한 상황,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그의 운명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문학적 창작물을 말한다.
그 이전의 농경·수공업 사회에서는 생활이 다분히 공개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이웃과 생활 공간을 공유하고 이웃의 형편과 상황을 빤히 알기에 인간의 내면이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화되면서 이웃 간에도 왕래가 드물어지고 가정이 대외적으로 폐쇄된 공간으로 돼 가자 타인의 사생활, 내면 심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따라서 인간의 사적·내면적인 영역을 탐구하는 소설이 환영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는 한 동네 사람들은 옆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환히 알았고, 고부 간의 관계나 동서 간의 갈등도 온 동네에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프라이버시는 사치라기보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프라이버시가 없는 생활을 생각하기 어렵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커 가면 자녀들의 중학 또는 고교 진학에 맞춰 방의 수를 늘리는 것이 크나큰 과업이요 숙제다. 집 안에서 프라이버시를 얻기 어려운 사람은 도서관이나 공원을 찾아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이제는 프라이버시가 필수적인 삶의 요소가 됐다. 프라이버시는 남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 있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내면을 가다듬고 가꿔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의 원인을 침착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책임 부분을 짚어 보고 앞으로 모든 관련된 사람과의 전향적 관계를 위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자기 성찰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다가 남에게 경원을 당하거나 주관 없이 남에게 이끌려 다니기 쉽다. ‘아줌마’들이 가끔 지탄받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전업 주부의 시간과 공간이 24시간 가족 모두에게 열려 있어 자신의 내면을 가꿀 여유가 없어서다. 자기만의 시간을 자주 갖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게 되고 자기만의 시간을 소화하지 못해서, 무료함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늘 남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군대는 프라이버시가 매우 결여된 환경이지만 그래도 취침 전 5분씩만이라도 자신과의 독대(獨對)를 습관화해야 군 생활이라는 벅찬 경험을 정신의 자양분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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