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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해진 지식 정보의 세상을 맑게 하는 법
조우석   |  2013-01-24 11:21:21  |  조회 4641 인쇄하기
혼탁해진 지식 정보의 세상을 맑게 하는 법

 

- <책으로 세상 읽기> 배진영 著


조우석 문화평론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균형 잡힌 시민의 한 사람이었다. 사회의 책임있는 주류(主流) 지식인으로 법치주의 신념을 고수하기도 했다. 2000여 년 전 그의 저술 <정치학> 내용도 당시 아테네를 활보했던 민중선동가 무리에 대해 토해냈던 지속적인 경고음에 다름 아니었다. <정치학>을 이렇게 읽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치 우리와 동시대 사람인양 친근하게 다가서는 느낌인데, 이번 달 리뷰하는 새 책 <책으로 세상 읽기>(배진영 지음, 북앤피플 펴냄)를 읽으며 얻은 소득의 하나이다.


저자 배진영에 따르면,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고대 아테네의 선동가 무리들은 복지 포퓰리즘의 남발을 예사로 했다. 또 세상을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로 나누는 이분법에도 꽤 능했다.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그런 행태에 대해 “노!”의 목소리를 아리스토텔레스가 감히 토해냈다. 그가 2000년대 초입 우리사회, 우리시대의 고민을 앞서 했다는 점에서 어떤 동질감까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책으로 세상 읽기>는 새삼 <정치학>의 몇 구절을 추려서 읽어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 이전에 칼럼니스트?


“법이 최고 권력을 갖지 못한 국가에서 민중 선동가들이 나타난다. 민중이 다수의 독재자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민중이 법 위에 군림하는 민주정체에서는 민중선동가들이 부자들과 전쟁을 함으로써 나라를 늘 둘로 나누고 있다.” “민중선동가들은 잉여분을 민중에서 분배하는데, 민중은 받자마자 또 달라고 함으로, 그런 식으로 민중을 돕는 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불 붓기인 것이다.”


이 정도라면 <정치학>은 서양지성사의 고전이자, 동시에 2000여년 전 아테네에 등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사 칼럼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만일 무덤에서 걸어 나올 경우 시차적응 과정이 없이 우리와 즉석 토론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책으로 세상 읽기>는 고전 <정치학>이 당대의 정치사회 현실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자 보고 서로 읽어도 좋다는암시를 독자들에게 새삼 전해준다. <책으로 세상 읽기>는 제목처럼 책에 관한 책이고, 책을 통해 혼돈의 우리사회를 균형있게 바라보려는 작업인데, 이게 은근히 흥미롭다. 이 책에 등장하는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물론 이승만의 <풀어쓴 독립정신>, 세바스티안 에드워즈의<포퓰리즘의 거짓약속>에 이르는 동서양 고전, 신간 등 45권이다. 혹시 이 책 저 책 끌어다 놓은 망라주의는 아닐까? 안 그렇다. 필자는 기왕에 나온 서평집을 적지 않게 봤지만, 책의 선정에서 해석까지 이만큼 일관성이 돋보이는 경우는 드물었음을 밝혀둔다.


선정 기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자유와 조국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 이 서평집에 등장하는 45권의 책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한민국의 성취를 긍정하는 단행본으로 국한했다. 고전과 최근 신간도 적절히 배분돼 있다. 지금 출판시장을 점령하다시피 인문사회과학서의 상당수는 지적으로 편향된 정보를 담은 책이기 십상인데, 저자는 흔치 않게 균형을 잡아준 것이다. 서평 내용도 진지하다. 저자의 45개 매 꼭지의 글에서 우리시대의 문제의식을 만날 수 있는데, 배진영 식 책 독법은 간단하다. 그건 상식과 균형감각 그리고 책임있는 시민의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 균형감각이 드물어진 시대, 저자의 미덕은 상대적으로 더 돋보인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단행본 45권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책임한 선동가들의 못된 습관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법치주의 무시, 포퓰리즘 부채질에 더해 세상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라놓는 선동가들의 사주 아래 민중은 때론 눈먼 폭도로 돌변한다. 그동안 우리는 그런 모습을 옛 사회 따로, 현대사회 따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저자 배진영의 주특기의 하나는 옛 고전의 내용에서 오늘의 한국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그 때문에 거의 매 꼭지가 흥미롭게 읽힌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난 10여년 간 저질 민중선동가들을 신물 나게 보아왔다. 심지어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집회 당시에는 ‘거리의 민중이 헌법이다!’라며 민중들에게 아부했던 먹물도 있었다.”(106쪽)


혹시 우리가 고전 속의 옛 철학자의 발언을 오독(誤讀)한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좀 비약해서 너무 쉽게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때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배진영의 고전 독법은 명쾌하다. 이를테면 근대 보수주의 사상의 아버지로 통하는 에드먼드 버크의 경우를 보자. 그의 핵심저술이자 보수주의 사상의 바이블로 통하는 버크의 명저술<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은 대학 연구실에 앉아 쓴 게 아니다. 프랑스대혁명이 거리를 휩쓸던 한복판에서, 그것도 혁명이 일어난 1~2년 사이 매 사안에 대한 시비곡절을 따지고, 사회변혁에 목을 매다시피 했던자코뱅당 등 과격분자들의 ‘미친 열정’을 비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듯이 버크 역시 당대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셈인데, 그 결과로 위대한 보수주의 예언가인 버크가 탄생했다. 지금 보수주의 사상이란 당시 버크의 발언에 대한 각주라는 게 사상사의 상식인데, 문제는 저자 배진영의 말대로 지금 한국사회는 안타깝게도 뒤늦게 “이념적 내전”(123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있다. 한반도 분단, 그리고 한국사회 내부의 보수 혁신의 갈등이란 세계사적 스캔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실로 안타깝다. 국제정치적으로는 이미 종결된 사안인데, 우리 사회에서만 여전히 뜨겁다는 점에서 거의 시대착오적이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따로 있다. 아직 한국사회에는 한 명의 에드먼드 버크가 탄생하지 않았으며, 보수 진영의 이념적 진지 재구축 문제가 숙제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흥미로운 건 다음 대목. 버크는 프랑스대혁명에 당시 열광했던 한 영국의 ‘정치 목사’를 이렇게 비판한다.


“그의 설교는 문필가 파벌 및 음모꾼 철학자들과 깊숙이 연계된 것이자, 세속권력에 영합된 예언의 노래”이라고…. 혁명에 도취한 파괴가 새로운 질서 수립은커녕 외려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것으로 본 버크로서는 당연한 비판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걸 읽는 배진영의 시선은 지금 한국사회에 닿아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그리고 기독교 일부의 정치목사 그리고 진보당 인사의 면면들이 바로 프랑스대혁명 당시 광기를 내뿜었던 혁명의 전사들과 다를 바 없다.


들어라! 진보연하는 무리들이여


“진보연하면서 트위터나 인터넷 상에서, 혹은 거리나 쟁의현장에서, 선동과 왜곡을 일삼는 폴리페서나 폴리테이너, 작가, 그리 나꼼수 같은 무리들이 바로 그들이다.”(126쪽) 현재와 오늘을 함께 읽어내는 이런 식의 책 독법은 약간의 비약만큼이나 얻는 것도 적지 않은데, 나머지도 그러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자를 자처하는 저자이니만큼 버나드 맨더빌(1670? ~ 1733)같은 그쪽 계열의 고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책에서 맛보는 지적 즐거움의 하나이다.


이 책은 경제학자 애덤스미스에 앞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 주목했고, 통상과 사유재산권 보장의 중요성 그리고 법치주의, 양심의 자유, 정교 분리의 원칙을 역설했는데 이게 훗날 아담 스미스는 물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에게 영감을 안겨줬음을 짚고 있다. 즉 마키아벨리야말로 정치와 도덕 사이를 분리시킨 사람인데,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이 그 말고도 버나드맨더빌 등을 포함해 여럿이 있고, 그들이 서양 근대문명을 함께 열었다는 게 중요하다. 이들은 인간 이기심과 욕망을 한껏 자극할 때 생산성이 올라가며, 그래야 궁극으로는 통상(通商)과 산업이 장려되며 국부(國富)를 창출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책으로 세상 일기>의 미덕은 이런 서양 고전을 우리 이야기, 한국 근•현대사의 이야기로 바꾸는 재주인데, 버나드맨더빌 이야기를 하다가 이승만 등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논리 개진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 전통도, 자본주의의 전통도 없는 이 척박한 땅에 영미 사회가 오랜 세월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아 정착시킨 자유자본주의를 이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가운데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승만 대통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의 혜안이 아니었다면, 오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271쪽)


이 꼭지와 별도로 이승만의 명저술<독립정신>에 대한 리뷰에서도 저자의 입장은 재확인된다. 그는 왜 이 책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인 저술 중 백미(유영익 박사의 평가)인가에 공감하며, 대한제국 시절 “통상과 교류는 이로운 것”이라는 이승만의 놀라운 선견지명이 어떻게 해서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점검한다.

 

필자의 눈에 <책으로 세상 읽기>는 우리시대 혼탁한 지식정보라는 늪에서 피어난 흔치 않은 꽃이다. 거의 매 꼭지에서 놀라운 애국심과 함께 충정이 배어있어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진보연하는 게 무슨 유행이자 습관이 되어있는 답답한 현실을 거꾸로 가기로 작심한 저자의 선택이란 숫제 용기에 다름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책이 지금보다 수 십, 수 백 배 더 조명 받고 상업적 이익까지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평 말미에 이 책에서 조명된 45권의 책 제목을 일단 공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리라. 생각을 모으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이 이상 가는 게 없을 듯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책임있는 주류가 진정 의미있는 문화전쟁을 치른다고 할 때, 이 책을 읽는 작업은 무시할 수 없는 전력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 기회에 우파는 도무지 책을 사보지 않는다는 징크스도 깨졌으면 하기 마음이다.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송복),『매천야록』(황현),『건국과 부국』(김일영),『풀어 쓴 독립정신』(이승만),『벼랑 끝 외교의 승리』(박실),『국가와 혁명과 나』(박정희),『박정희』(1~13)(조갑제),『장제스 일기를 읽다』(레이 황),『쇼와사1, 2』(한도 가즈토시),『펠로폰네소스전쟁사』(투퀴디데스),『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공화주의』(모리치오비롤리),『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드먼드버크), 『성경-사무엘 하』,『이상한 패배』(마르크 블로크),『브레이크아웃 - 1950 겨울, 장진호전투』(마틴레스),『모사드』(데니스 아이젠버그 외), 『망치로 정치하기』(박성현),『나는 보수다』(조우석),『사상과 언어』(양동안),『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캐스 R. 선스타인),『글렌벡의 상식』(글렌벡) ,『폭력에 대항한 양심-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슈테판츠바이크) ,『살아남은 자의 슬픔』(베르톨트 브레히트),『93년』(빅토르 위고), 『포퓰리즘의 거짓약속』(세바스티안에드워즈),『북학의』(박제가) ,『소유와 자유』(리처드파이프스) ,『꿀벌의 우화-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버나드맨더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도다』(월터러셀미드) ,『러쉬』(토드부크홀츠),『언더도그마』_마이클 프렐, 『복지전쟁』(로저로웬스타인),『무엇이 잘못 되었나』(버나드루이스),『물의 미래』(에릭오르세나),『감정의 지정학』(도미니크모이시),『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복거일),『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김기수),『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마크 레너드),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폴 존슨), 『냉전의 역사』(존 루이스개디스),『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C. 터너조이),『민족주의는 반역이다』(임지현),『상식』(토머스 페인),『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장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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