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지식정보 왜곡과 사회통합 문제
조우석   |  2013-02-22 17:12:14  |  조회 3989 인쇄하기
지식정보 왜곡과 사회통합 문제

 

- 한 해 쏟아지는 단행본 4만 종은 과연 건강한가


조우석 문화평론가

 

 

책장에 꽂혀있던 옛 베스트셀러를 꺼내 최근 다시 읽으며 흠칫 놀랬다. "이 책이 정말 이랬나?"하는 느낌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책 여기저기에 만만치 않게 박혀있는‘가시’는 한 둘이 아니다. 이를테면 주한미군에 대한 냉소와 비판을 포함해 대한민국 체제와 현대사에 대한 부정이 수두룩하다. 더욱이 그 책은 10여 년 전 MBC-TV‘느낌표’프로그램에 선정돼 10대 청소년에게 두루 읽혔다. 전우익의<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현암사)가 문제의 책이다. 부제가‘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 정치나 이념과 무관한 듯 보이지만 속은 안 그렇다.


“달포 전 팀스피리트 작전이 벌어졌을 때 신문에서, 중단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미군 사령부에 들어가 항의하려다 잡혀갔다는 기사와 사진을 보았습니다. (반대로) 그때 마침 충북 제천지방을 지나다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에게는) 외국군이 신기한 최신무기를 들고 국토를 종횡으로 쏘다니는 것도 색다른 구경거리가 되나 봅니다.(이런)구경꾼들에게는 꺼질 듯 말 듯한 풍전등화의 조국 운명도, 분단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민족의 모습도 다 스릴 넘치는 짜릿한 구경거리고 비치는 모양입니다.”(64쪽)


옛 베스트셀러에 박혀있는 만만치 않은 '가시'


편지 모음집인 이 단행본은 <월든>을 쓴 헨리데이비드소로우 같은 분위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자본주의 정글이자, 자연을 망가트리는 지옥으로 색칠하는 기조를 내내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정기 훈련이 최신무기를 들고 국토를 종횡으로 쏘다니는 식의 활개짓인가? 그래서 분단된 조국의 운명이 더욱 풍전등화라는 식의 터무니 없는 논리비약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한두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민중과 민족 타령에, 분단의 고통 하소연도 지적(知的) 센티멘탈리즘에 다름 아니라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지금 생각하면 좌파 민족주의 정서의 한 전형인데, 고백하자면 필자는 생전의 그를 약간 아는 편이다. 2004년 그가 타계하기 전에 경북 봉화의 그의 시골집에도 놀러갔다. 구수하고 곰삭은 듯한 느낌이 좋은 시골 영감님이었다, 그가 풍겼던 매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냉정하자. 그 책이 베스트셀러로 둔갑하면서 매스컴을 좀 탔던 그는 젊은 시절 정치 경력이 삶의 족쇄가 되어버린 경우이다. 유감스럽게도 이후 더 성장하지 못했다.


전우익은 해방 후 민청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사회안전법에 연루되어 6년 징역형을 살았다. 왕년의 혈기가 문제될 건 없지만, 중장년 이후 그가 제대로 변신하고 균형 감각을 회복했는가는 별도의 문제라는 게 그의 글을 읽으며 새삼 드는 의문이다. 걱정은 따로 있다 그런 그를 생태주의자 시골 농사꾼으로 포장하키고, 그의 글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무비판적으로 읽게 만들었던 이 땅의 지식사회 풍토 전체가 문제다. 그게 지난 달 이 지면을 통해 썼던 글 ‘결국 편향된 지식 정보가 문제다’에서 지적했던 사안이다. 즉 한국사회 통합을 가로 막는 핵심에는 왜곡된 지식정보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으며, 신문방송에서 언급되는 지역갈등, 세대 갈등이란 문제의 표면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때문에 그걸 바로 잡는 거대한 문화운동, 지식운동이 절실하다는 문제제기였는데, 그 글을 내보낸 뒤 필자의 지적이 다소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지인들로부터 받았다.


그렇다면 이 달에는 지식 정보의 왜곡현상은 일상의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지식정보 왜곡에 대한 지적은 주로 중고교 역사• 사회 교과서 위주였지만, 이번 글은 방향을 달리해 단행본 쪽의 문제제기이다. 즉 왜곡된 출판시장이 문제이다. 출판시장의 이념편향이 훨씬 일상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그동안 상대적으로 가려져왔다는 점도 함께 지적돼야 한다.


'나쁜 교과서'보다 훨씬 안 좋은 '나쁜 단행본'


지식정보의 왜곡은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에 대한 조롱과 냉소, 그리고 건국 이후 지난 60여 년의 성취에 대한 폄하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건 쏟아지는 단행본 중에서 얼마든지 눈에 뜨이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영화주간지 ‘씨네21’ 편집장 출신의 조선희가 쓴 영화 에세이집 <클래식 중독>(마음산책, 2009)을 들춰보자. 1950~80년대 옛 영화 이야기 사이사이에 현대사의 성취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글이 꽤 자주 등장해 정상적인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저자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연출했던 영화감독 하길종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게 “1970년대 한국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95쪽)이라고 단언한다. 영화 검열로 재주있던 한 작가를 망가뜨려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항변이다. 일단 제기할 수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당시 1970년대 사회가 작가주의, 표현의 자유를 지향하는 감독은 물론 당시 한국인 모두에게 “군사정권 아래 숨죽인 병영사회”(88쪽)로 작용했고, 그 결과 폭발할 듯한 스트레스를 줬다는 식의 비약으로 이어지는데, 그건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서술이 과연 정상일까? 현대사를 보는 시선이 심하게 뒤틀려있음을 물론이다. 지식인 그룹 특유의 리버럴강박증에 뿌리를 둔 냉소의 심리 탓이리라. 그런 심리 구조에서는 건국 이후 네이션빌딩과 국가 동원 체제에 따르는 빛과 그늘을 함께 파악하는 균형감각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삐뚜름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회를 규정하는 건 그들 그룹의 고유한 풍토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맛깔스러운 문장에 생생한 리얼리티 역시 생생한 조선희의 영화 에세이집 <클래식 중독>은 좋은 읽을거리이고, 썩 괜찮은 저술이다. 조만간 당시 시대 영화와 영화사 서술에 많은 참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에서 왜 무언가 방향 모를 분노와 응어리진 냉소가 스멀거리는가? 필요 이상의 작가주의적 태도, 문화 지상주의 태도와 무관치 않다. 그들은 작가주의라는 성채에 갇혀있다. 그리고 문화 지상주의라고 하는 진공 속을 떠다닌다. 그리곤 세상을, 고단했던 현대사를 깔아뭉개려는 오만함을 갖는다.


그건 영화는 물론 문학, 미술 등의 장르에서도 이미 보편화된 태도이다. 어쨌거나 영문도 모른 채 이런 단행본을 시도때도 없이 접할 젊은 세대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생길 리가 없다. 그게 왜곡된 지식정보에 오래 노출되는 데에서 오는 '낙진(落塵)효과'가 아닐까? 가랑비에 옷 젖는다더니 중•고교 시절과 대학생활까지 왜곡된 지식정보에 과잉 노출될 경우 세상과 사회를 보는 정상적인 안목이 형성될 리 없다. 많이 노출될수록 치유하기 힘든 병리학적인 인지(認知)구조를 낳을 수 있다. 그런 풍토에서 전우익의 책을 TV와 신문에서 좋은 책이라고 누구나 거리낌없이 추천해준다. 또 조선희 등이야말로 으뜸가는 영화의 안목을 가진 사람으로 알고 있으니 그들의 단행본에 나오는 지나가는 글귀나 소리를 무비판적으로 읽어낼 것은 분명하다. 전우익, 조선희 외에 그럼 나머지는 멀쩡한가? 아니다. 대한민국 원로의 한 명, 특히 기독교계의 핵심인물인 목사 강원용(1917~2006)같은 이도 그러하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쓴 회고록이자 현대사 증언 <빈 들에게>(전3권, 대화출판사, 1998판 증보판)는 이렇게 서술돼 있다.


“나는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 한국 땅에서 태어났다. 그간의 한국은 내 판단으로는 악마들이 집단을 이루어 지배하는 빈 들(누가복음 4장2절)과도 같았다.… 이 빈 들은 성서에 나오듯 ‘돌로 떡을 만들라’는 물질만능, 경제제일주의, 악마에 절하고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권력숭배사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기복 종교에 의해 지배되는 공간이었다.” 


한국은 악마들이 득시글거리는 텅빈 들판?


물론 현대사에 대한 종교 차원의 성찰이리라. 그래서 절절하다. 하지만 민중신학의 흔적마저 보이는 이런 식의 인식이 끝내 선악사관으로 연결됐고, 치명적인 근본주의적 역사 인식으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안다. 이름깨나 있거나 해당 분야의 핵심 인물과 원로들이 이 정도의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고, 지식정보 왜곡행위에 자의반 타의반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영화를 포함한 문화예술계는 물론이고 한국 보수주의의 원류인 기독교계 인사의 이런 지식정보 왜곡은 인문학 전반으로 확산된 지 오래이다.


그 증거로 필자는 김석수(경북대 철학과 교수)가 쓴 <한국현대 실천철학>(돌베게, 2008)을 꼽는다. 대한민국 건국에 철학적 바탕인 일민(一民)주의를 제공했던 철학자 안호상, 박정희의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던 박종홍, 김형효, 그리고 신군부에 참여하며 정치교육이론을 제공했던 이규호 등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 가장 거칠고, 교조적 형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저자 김석수의 눈에 안호상• 박종홍• 김형효• 이규호 등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데 기여”(94쪽)한 것으로 치지도외된다. 국민교육헌장 비판과 결부된 저자의 이런 지적은 실은 국내 철학계의 상식으로 통한다.


“한마디로 국민교육헌장은 ‘민족주의=반공주의=안보주의=산업주의=권위주의=국가주의’ 등식을 잘 담아놓은 개념의 박물관이다. 안호상의 일민주의, 박종홍의 건설• 창조의 논리, 이규호의 정치교육론, 김형효의상응혁명론 등은 모두 이런 국민교육헌장의 정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철학자들이 도덕적 정치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정치적 도덕가의 길을 걸음으로써 국가주의라는 힘의 철학 안에 우리를 가두었다. 국가는 과다실재(하이퍼리얼리티)로서 동일성의 테러가 내장되어 있는 이데아이자, 동시에 감옥이었다.”(112쪽)


철학은 개항기 일제시대 이땅에 유입된 이후 20세기 한국인의 삶 전체를 제대로 성찰해본 일이 드물었다. 그저 이식된 학문, 무국적의 교양 차원이었을 뿐이었다. 다만 안호상 박종홍 김형효 이규호 등은 1948년 대한민국 출범 이후 건국과 부국의 혁명에 이바지했던 의미있는 철학의 씨앗을 남겼다. 되려 그걸 깔아뭉개드는 김석수 류(類)의 비판작업은 필자를 아연실색하게한다.놀랍게도 그런 게 오래 전부터 철학의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지식정보의 왜곡현상은 이처럼 무차별이며, 학문의 깊숙한 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런 좋지 않은 풍토에서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외치는 <88만원 세대>(우석훈• 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 2007년) 같은 책이 오래 전 베스트셀러로 떴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앞의 “짱돌을 들어라”라는 것은 그 책 앞 페이지의 지극히 선동적인 카피인데, 이런 노골적인 폭력이 지식정보를 왜곡하고 휘젓고 다녀도 감히 아무도 간여하려 하지 않는 게 이 나라이고, 이 사회이다. 우석훈이라는 사람은 가히 정신분열의 징후를 보인다지만, 그 못지 않게 아찔한 경우는 따로 있다.


‘시골의사’로 통하는 박경철이 그 경우인데, 그는 우석훈보다 상태가 더욱 안 좋다. 그리고 위험스럽다. 우석훈이 드러내놓고 선동을 한다면, 박경철은 숨어서 음습한 형태로 진행한다. 또 정치인 안철수의 최측근이라는 아우라를 가진 채 이 땅 10대들을 위한 멘토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더욱 가관이다. 그가 최근에 신간을 펴냈지만, 2년 전에 펴낸 <자기혁명>(리더스북)이란 책에 담긴 편향성, 지식정보의 왜곡현상에 필자는 더 주목한다. 이 책에 따르면 박경철은 지난 6년 중•고교와 대학가를 주로 돌았다.


시골의사 박경철“한국은 정의롭지 못한 짐승의 사회”


그의 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2>가 학교 권장도서로 선정되고 나서 강연 요청이 잇따랐기 때문이라는데, 그는 겁도 없이 이렇게 아무런 말이나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금수의 규칙조차 통하지 않는 사회”이고, 그래서 턱없이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정한 시스템의 사회다. 자신은 “이런 불공적 시스템에 대해 최소한 방관 내지 외면을 해온, 원죄가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지금 청년들을 만나면 미안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391쪽)는 입에 발린 말도 수시로 던진다. 필자의 귀엔 이런 말이 책임있는 발언이라기보다는 10대들에게 아부로 들린다. 물론 엄밀한 근거 없는 헛소리이자, 포털에 올라온 토만 기사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치판단이라는 건 아는 이들은 안다. 그런데도 그는 겁이 없다. 한국사회에는“좌파라는 말이 나쁜 뜻이 아님에도 좌파로 규정되는 것을 두려워 하는”풍토가 있다는 어이없는 진단(110쪽)도 서슴없이 하는 식이다.


그 결과 “비판의 목소리를 가라앉고 기득권에 유리한 것만 옳고, 시장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반공적인 것으로 찬양되는 것”이 문제라는 제법 점잖은 지적도 내놓곤 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옳은 답을 알고 있다는 식의 방약무인의 태도를 가진 그는 실제로 아무 이야기나 늘어놓는다.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이익 추구란 기업의 존재이유가 아니며, 성장일변도란 국가의 임무가 아니라는 식의 발언도 그 중 하나이다. 약간의 글솜씨를 가지고 세상을 희롱하고, 10대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그의 실체라고 필자는 본다.


“국가는 잠재성장률을 넘는 GDP 성장률을 목표로 내세운 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몇몇 대기업에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고, 토목사업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성장을 좆는다. 그 과정에서 소외된 곳에 가야 할 자원, 사회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투자해야 할 자원이 집중됨으로써 국민은 불행해졌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단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만 움직인다면 당장 임금과 고용을 줄이고, 사회에 대한 공헌을 외면하며, 국가 권력과 결탁해 불법과 탈법을 서슴지 않게 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개인 역시 살아남기 위한 경주를 벌일 수밖에 없다.…사회 전체가 헬레나의 입술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 박사의 아바타가 되어버린 셈이다.”(19쪽)


지금까지 문제가 된 중•고교의 역사• 사회교과서만해도 실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교과서란 한 사회 표준적 인식을 반영하기 때문인데,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단행본이 문제이다. 쏟아지는 신간이 이렇게 반사회적인 지식정보로 채워져있다는 건 사회공동체 차원에서도 심각한 현상이다. 도대체 한 나라 한 사회의 출판물이 이토록 왜곡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려 30여 년 동안 체제 부정의 정서를 가진 쪽이 쥐고 흔들어왔다는 것부터 의아하기 짝이 없다.
함께 기억될 게 있다. 지식정보의 왜곡은 한 전직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끝내 망가뜨렸을만큼 결정적 해악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던가? 노무현이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과정"이라고 핏대를 올리고, 그래서 과거사 정리라는 소모적 통치행위에 매달렸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도무지 비정상적인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그의 좁은 식견, 즉 지적 성장사 때문이었다. 그런 환경을 만든 게 바로 이 사회의 왜곡된 지식정보 문제였다. 노무현만 그러한가? 그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던 1952년 생 이해찬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정보 왜곡현상, 사회통합 차원에서 재점검되어야


그의 레토릭대로 자신이 20, 30대를 보냈던 1970~80년대는 "캄캄했던 그 시절"이었는데, 박현채의<민족경제론>, 리영희의<우상과 이성>, 송건호의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따위를 읽으면서 젊은 시절 지적 성장을 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안타깝다. 한 사회 사회지도자의 지적 너비가 그 정도인가? 문제는 이 사회의 엘리트나 지식계층의 거의 누구나 그렇다는 점이고, 거의 예외가 드물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식정보 왜곡 현상은 한 세대를 뛰어넘어 대물림이 되고 있다. 반복하지만 지식정보 왜곡현상이 시민교육 그리고 통치환경과 사회통합 차원에서 점검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가 이번 글의 요지인데,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이번 글에서 다루지 않았다. 정확한 사태 파악이 우선이고, 그래야올바른 처방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귀띔해드리고 싶은 것은 왜곡된 단행본 시장이란 이미 자기 완결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맹렬한 자기 확신 속에서 그런 출판물을 찍어내는 출판사가 다수이다. 그걸 사회적 정의라고 여기는 것이다. 덩달아 따라가는 기회주의적이고 상업적인 출판사의 세력도 무시 못한다.


이렇게 해서 한 해 평균 쏟아져 나오는 단행본은 4만 종 내외. 모든 책이 지식정보를 왜곡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런 쪽의 출판물에 입맛이 심하게 길들어져있다. 책이란 의례 그런 게 정상이고, 좋은 책이겠거니 하는 심리가 만연한 것이다. 자칫 그걸 잊고 있으면 새삼 환기시켜주는 시스템도 이미 갖춰져 있다. 요즘 매면 나오는 책이 <아까운 책 201*>하는 제목의 단행본이다. 밀어내기로 나오는 책에 밀렸으나, 미쳐 놓친 좋은 책을 50권 씩 별도의 서평과 함께 따로 소개하는 단행본이다.이를테면 <아까운 책 2012년>에 소개된 50권 중 사회분야는 11권이 랭크돼있다. 분위기 파악차 그 11권 중 일부를 대강이나마 꼽아보자. 앞의 것은 서평 제목이고, 뒤의 것은 책 제목인데, 조금 과장하자면 지금 한국사회는 혁명 전야라는 착시현상을 안겨준다. 21세기가 아니라 지난 세기 중반쯤으로 시계가 멈춘 듯도 하다.


“이것은 책이 아니라 분노이자 절규이다.(희정 지음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 "전투적 인권운동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앤드류헬퍼 지음 <검은 혁명가 말콤액스>), “동아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고토큐슈스이 지음 <나는 사회주의자다>)”, "코스타리카의 작지만 온전한 평화,(아다치리키야 지음 <군대를 버린 나라>),“푸르른 이십 대에게 보내는 마르크스의 연애편지(우치다타츠류 등 지음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이땅의 망해 버린 교육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지음 <교육 불가능의 시대>)….


어떠신지. 왜곡된 지식 정보의 문제야말로 문화전쟁이 겨냥해야 할 주력전선이라는 게 필자의 주장이 공허한 게 아니라는 걸 재확인했으리라고 믿는다. 즉 방향 모를 사회적 분노와 적대적 감정, 제도권 전반에 대한 묻지마 증오와 불신은 몇몇 집단과 진영 그리고 세대단절과 지역갈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발견이 중요하다. 반복하지만 지역 갈등, 세대 갈등이란 문제의 표면에 불과하다. 사실 기존의 표준적 지식과 정보를 엎어버리고, 주류 언론의 정보 유통을 거부하는 흐름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진행돼왔다. 그게 1970년대 민중문화운동이 펼쳐진 이후의 상황이다. 애초 문학 부문에서 시작해 미술, 영화, 연극 부문으로 가치를 쳤고, 이른바 1980년대 학술운동을 거쳐 지금은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자기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작업에 성공했다. 그 결과 춥고 배고팠던 1960~1970년대의 헝그리 사회는 이제 앵그리 사회로 발전했고, 지식정보가 온통 왜곡된 사회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냉정하게 말해 건국 이후 한국 사회가 공유해온 가치의 총합이란 그렇게 신통한 게 못된다. 여기에 정부•공권력•기성세대 등 제도권 전반에 대한 묻지마 증오와 불신은 정당한 사회적 분노의 차원을 크게 넘어선다. 그 결과 소모적이고 내출혈을 강요하고 있다. 그게 주변부화되고 파편화된 상태로 우리 시대 대중을 오염시키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사회통합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 혹은 암적 존재가 분명하다.

 

지난 주 게재된 글 <문화운동의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자>에서 황성준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의 본질은 2040세대에서 지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안티 대한민국 진영에게 빼기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지적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는이러한 사실은 대학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 및 사회과학 강의 내용과 대형서점에 진열돼 있는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의 목록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으며,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대학 강단 ‘주류’는 좌익진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은 그의 맺음말이다.


"믿기 힘들다고? 대학에서 진행되는 강의내용을 조사해 보기 바란다. 출판 분야 문제는 대형 서점을 방문해 보던지, 아니면 사회과학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안티 대한민국 진영의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일에 걸쳐(최소한 1980년대 초부터) 끈질기게 벌여온 저들의 문화•이념투쟁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헤게모니가 온존하는 한, 젊은 세대의 ‘두뇌’와 ‘심장’은 저들의 손아귀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발언에 필자는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젊은 세대의 두뇌와 심장은 물론이고, 이 이전에 50~60대 이하 이 사회 거의 모든 세대의 영혼부터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저들 진영의 논리와 지식정보에 의해 상당 수준 오염되어 있다. 그동안 우리를 프로그래밍해오고, 가치판단을 주도해온 지식정보의 왜곡 현상은 그만큼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이 거대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는 섣부른 사회통합의 구호란 의미있는 처방은 물론 구두선도 못 된다는 점을 재삼 밝혀두고 싶다.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702 한국영화가 강해진 진짜 이유  강규형 13-03-21 4692
701 오리(梧里) 정승과 황희(黃喜) 정승  8  이철영 13-03-21 5631
700 '평등한 낙원' 공산주의 꿈과 좌절 70년  조우석 13-03-21 3869
699 음악(音惡), 미술 (迷術) 그리고 문학(文虐)  이상억 13-02-25 4019
698 새봄, 청신한 기풍이 사회에 감돌길 기대합니다  우창록 13-02-22 3789
697 지식정보 왜곡과 사회통합 문제  6  조우석 13-02-22 3989
696 100% 대한민국을 위한 조건  우창록 13-01-24 3981
695 여성 대통령에 기대하는 리더십  6  이철영 13-01-24 4320
694 특집3>결국 편향된 지식·정보가 문제다  1  조우석 13-01-24 3899
693 혼탁해진 지식 정보의 세상을 맑게 하는 법  83  조우석 13-01-24 4641
11121314151617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