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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배우면서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아니었지만 유학생으로, 그리고 연구교수로 미국과 영국에 몇 년 거주하면서 언어 자체가 민주적이라 민주주의가 발달했고, 잘 시행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중국에 가 보니 중국어에는 경어가 없는 데도 우리나라보다 불평등이 몇 배 더 심한 것을 보고 언어와 정치의 민주성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어쨌든 우리말에는 엄연히 경어가 존재하고 존댓말·반말·해라 중에 한 가지를 쓰지 않고는 한마디도 말하기가 어려우니까 경어를 제대로 구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존댓말도 제대로 쓰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젊은이들이 너무 존댓말을 쓸 줄 몰라서 어처구니없고 민망스러운 일이 많다. ‘시건방져서’ 경어를 제대로 안 쓰는 학생들도 있지만 애써 경어를 쓰는데 잘 못 써서 상대편을 높이는 대신 자기를 높이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우리 학과의 연극반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학생 연극 공연을 관람하러 갔는데 연출진 중의 한 학생이 “왜 온다고 연락드리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올 줄 알았으면 좋은 자리를 준비해 놓았을텐데 송구스럽다는 말인데 “왜 오신다고 연락하시지 그러셨어요”라고 해야 할 것을 ‘온다고’로 선생은 낮추고 ‘연락드리시지’로 자기들은 높이는 말이 됐다. 추천서를 부탁하면서 “의문 나는 것 있으면 제게 전화로 여쭈어 보세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요즈음 젊은 남성들은 어쩐 일인지 남들 앞에서 자기 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제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부인’은 남의 부인을 높여서 부르는(또는 자기 아내를 직접 대해서 깍듯이 부르는) 호칭이므로 남에게 자기 부인을 지칭하는 말로는 쓰지 말아야 하고, ‘제’라는 스스로를 낮추는 말에 남의 부인을 높여서 부르는 ‘부인’을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성함’은 남을 높여서 말할 때 쓰는 단어인데 “제 성함은 ○○○입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제 성함은 ○자 ○자 ○자 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름을 ‘○자 ○자 ○자’로 부르는 것은 예전에 연장자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이었을 때의 관행인데 자기 이름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댁’은 남의 집을 높여서 부르는 말인데 자기를 낮춰 말하는 ‘저희 댁’은 ‘제 진짓상’만큼이나 상충되는 말이다. 한편으로 ‘댁’이라는 말을 몰라서 ‘선생님 집’이라고 계속 말하는 문학박사도 있다.
경어는 원래 손아랫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는 언어 체계가 아니다. 예전에는 손아랫사람에게도 나이 차이와 친소 관계, 학문적 성취를 고려해서 ‘하시게’ ‘하게나’ 등의 반(半) 공대어를 썼는데 이제는 불과 한두 학년의 선후배 사이에서 봉건 시대의 주종 관계를 무색케 할 만큼 극단적 하대와 공대가 쓰이고 있다.
나이가 한두 살 많다고 어른이 돼서 만난 사람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쓰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다. 나는 어른이 돼서 만난 사람에게는 아들딸 같은 사람이라도 절대로 반말을 쓰지 않고, 학생이라도 다른 학교 학생에게는 절대로 반말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부모 연배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반말을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말을 높이라고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서로 과히 유쾌하지 못하니까 대부분은 그냥 그런 사람과는 접촉을 최대한 피한다).
우리 모두가 아주 형제처럼 친해지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깍듯한 존댓말을 쓰도록 하면 서로 존중하는 기풍이 진작돼 우리의 민주주의가 향상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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