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위하여
우창록 (재)굿소사이어티 이사장
한국경제가 총체적 곤경에 처했다는 지적이 부쩍 늘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오늘의 상황은 경기불황의 차원을 떠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데, 급제동이 걸린 지금의 경제성장은 3%대 성장조차 버겁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계 부채는 여전히 경제위기의 요인이고 취업난(難), 빈부 격차, 복지 수요 그리고 최근엔 엔저 비상까지 문제가 어지럽게 꼬여 있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해 성장판이 거의 닫혀버린 게 아니냐는 진단도 들려오더니 가슴 철렁한 뉴스까지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외교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는 최근 ‘멈춰버린 한강의 기적’란 글을 통해 우리가 매일 같이 체감했던 두려운 현실을 새삼 환기시켰습니다. 사교육비와 가계 부채에 짓눌려 중산층이 붕괴되고, 삼성과 LG•현대자동차를 제외한 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더 이상 한강의 기적은 작동하기 어렵다는 게 그들의 중간 결론입니다.
경제민주화 구호가 경제를 압박하는 지금의 상황
이런 단언에 정치권도 술렁이지만, 뚜렷한 처방이나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없습니다. 한국경제는 어쩌다 키가 크지 않는 '소수점 아래 경제'가 됐을까요? 지금이야말로 경제의 틀을 크게 한번 흔들어 회생을 도모할 시점인데,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요? 이달 이슈레터는 큰 반전(反轉)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복잡한 이론을 떠나 우리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해 점검해볼 경우 얻을 게 또 있을 것입니다. 기회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강력한 지도력과 재계의 공격적 투자 속에 돌아가던 우리 경제가 어떤 이유로 인해 활력을 잃었고, 지금에 이르렀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의 첫 번째가 이른바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를 꼽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경제민주화 문제는 최소한의 공감대 형성이 없으면 구호만이 남습니다. 이 경우 대중들의 반기업 심리, 부(富)에 대한 적대감으로 점차 변질됩니다. 지금 이게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아닐까요?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적대적 환경 속에서 투자 의욕이 쉬 살아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한쪽에서는 온갖 사회악의 주범인양 대기업을 윽박지르고, 또 다른 쪽에서는 투자를 종용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매우 한국적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국회에서는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같은 내부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전에 없이 강력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5억 원 이상을 받는 CEO와 임원들의 개인별 연봉 공개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런 장치들이 당초의 의도대로 경영 투명성을 높이게 될지는 가늠하기 힘든데, 경기회복에 초조한 정부는 대기업에 투자를 연신 종용하는 이중적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초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0대 재벌기업 사장들을 모아놓고 투자해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경제민주화를 겁내지 말라’는 말도 했지만, 재계의 반응은 그렇게 살갑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격적 투자를 주문했고, 경제민주화에 대해 설명했으나 정책의 모호성은 여전합니다.
왜 동부팜한농은 기업농에서 철수해야 했나?
제가 알기에 우리사회를 걱정하는 적지 않은 이들은 지금 더 많은 경제민주화의 말잔치와, 대기업에 대한 엄포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정책의 모호성을 벗기 위해서는 분명한 교통정리와 우선순위 설정이 필요할 때입니다. 굿소사이어티 이슈레터가 이미 여러 차례 다뤘듯이 경제민주화란함께 못 살자는 구호일 수가 없습니다. 재벌을 손보기 위한 것 역시 아닙니다. 경제회복에 대한 기술적 처방 이전에 해야할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합니다.
이런 큰 그림이 없으니 한국경제는 어수선한 가운데 자꾸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 문제를 새삼 확인시켜준 것이 최근 벌어졌던 대기업 영농회사인 동부팜한농 사태입니다. 그 기업은 수출용 토마토를 생산하기 위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첨단유리온실을 준공한 지 89일 만에 손을 떼기에 이르렀습니다.
대기업이 농업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잠식하는 것과 똑같다는 분노에 찬 목소리에 밀린 것입니다. 전국토마토생산자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동부팜한농에서 생산된 비료•농약 등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창조경제를 운운하던 정부는 아무런 교통정리도 못한 채 무기력한 관망만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번 사태가 일단락됐고, 동부팜한농은 철수를 기정사실화했다고 하지만, 바람직한 사회적 합의까지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이번 달에 우리가 고령화되고 있는 국내 농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외부 자본의 도입이 약(藥)인지 독(毒)인지에 대한 찬반 논쟁을 해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찰이 하나씩 쌓이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몇 년 뒤에는 한국경제의 기적이 다시 작동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경제민주화도, 창조경제도 결국은 민생문제이고, 국가적 활력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