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증언하는 박정희에 관한 절반의 진실
-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안경환 著
조우석 (문화평론가)
새 책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출간 소식을 듣고 기뻤다. 우남 이승만과 함께 20세기의 문제적 인물인 박정희에 대한 규명이 아직 충분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몇 해 전 단행본 <박정희, 한국의 탄생>(살림)을 쓰면서 박정희 연구의 빈곤함을 재확인해야 했지만, 친구의 관점에서 박정희를 접근한 신간이 전해줄 메시지에 부쩍 관심이 쏠렸다. 더구나 황용주(1918~2001)가 아닌가. 그의 삶에 대한 책 표지의 짧은 설명이 인상적이다.
“마르크스 보이, 문학청년, 학병장교, 5.16 쿠데타의 주역, 정수장학회의 입안자, 1964년 <세대>지 필화사건의 희생자…. 한 민족주의자의 평생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한국현대사의 이면. 그의 역동적 생의 중심에는 거인 박정희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빛과 그림자였다.”
황용주는 5•16 이전에는 부산일보 주필이었고, 5•16 이후엔 문화방송 사장을 지냈다. 박정희와의 만남은 4•19 직전인 1960년 초. 마침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산에 근무하게 된 옛 친구(대구사범 동기) 박정희에게 군사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을 뒤엎고 새 근대국가를 만들자고 거듭 제안을 했다. 이른바 민족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도 그였다. 당시 황용주가 군인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이런 의기투합이 흥미진진한데, 그는 10대 시절부터 일기를 써왔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그 블랙박스만 제대로 해독해도 얻는 게 상당할 것이다.

서로에게 빛과 그림자 사이였던 박정희와 황용주
단 걸리는 게 있었다. 저자가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온전히 읽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안경환(65)은 서울대 법대 교수. 그는 참여연대 창립 멤버이자 노무현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약간의 진보 성향이 있겠지만, 그 자체로 문제될 건 없다. 최선의 경우 해석의 다양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국내에서 진보연하는 인사들이 가진 지적•정서적 한계를 익히 가늠해왔기 때문에 찜찜함을 피할 수 없었는데, 책의 서문을 훑어보다가 그것만은 아닌가 보다 싶었다.
“글을 쓰는 지난 수년 동안 나는 새삼 나의 세대의 무지와 후속세대의 경박한 오만에 절망하곤 했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고뇌하고, 만들어가면서 분노하고 좌절하던 고인의 세대, 그 세대 지식인들이 (품었던 이상과, 불가피하게)입었던 상처에 따듯한 위로와 깊은 경의를 표한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다. 그 성공의 역사에 이분들의 열정과 좌절, 환희와 분노가 밑거름이 되었다.”
다행이다. 저자가 속류(俗流) 진보 지식인은 아닌 셈일까? 내처 본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2인3각 관계였던 박정희와 황용주 사이의 우정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 이상으로 심도 깊었다. 많은 면에서 달랐지만, 시대인식은 완전 닮은꼴이었다. 사실 둘은 학교 동기이고, 혁명동기였지만 성장과정이 전혀 달랐다. 기질과 스타일까지 편차는 의외로 컸다. 와세다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황용주의 경우 무엇보다 당대의 글쟁이이고 걸출한 문사(文士)이다. 풍부한 인문학적 배경도 예사롭지 않다. 성격은 활달하고 낙천적이었다. 정치철학도 자유주의자 쪽이고, 부산일보 재직 시절 발군의 칼럼을 보면 그는 이른바 저항적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아무리 봐도 박정희와는 극과 극이다. 하지만 둘이 공유했던 군사쿠데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민족주의적 지향은 다른 차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게 포인트이다. 시대인식을 공유했다는 게 둘에게 축복이었고, 그게 현대사 최대의 급물살인 군사쿠데타를 만들어냈다. 둘은 술친구로 화끈했다. 짚어야 할 점은 <세대>지 필화사건이 1964년이란 점이다.
"그의 정치는 절대선(善)" 박정희에게 품었던 신뢰
반공법 위반으로 공직에 나설 수 없었던 황용주는 나이 40대 중반에 사실상의 은퇴를 강요당했던 케이스이다. 즉 박정희와 호흡을 함께 했던 건 쿠데타 초기 4년이 채 안 된다. 비공식 교류야 이후로도 계속 됐지만, 유신 이후 그마저도 뜸했다. 그런 그에게 박정희의 정치란 절대선(善)이었다. 생애 말년까지 박정희를 향한 맹목적 사랑은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이 본체이고, 박정희는 분신이라는 자부심까지 있었다는데, 실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2001년 여름, 숨을 거두기 직전 상황은 많은 걸 시사한다. 다음은 프랑스에 막 달려와 임종을 지켰던 외동딸 란서의 회고이다.
“아버지 손을 잡았다. ‘제가 왔습니다. 란섭니다. 일어나셔야 해요.’ 그 순간 아버지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고 있던 나의 통곡이 터졌다. 아버지 얼굴에 가까이 대고 외쳤다. ‘아버지, 나야 나. 눈을 떠봐요.’ 잠시 안간힘을 쓰는 듯이 한순간 눈동자가 힐끗하더니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외침의 소리가 (아버지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마지막에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 정희야! 아, 란서야!’ 그리고는 (아버지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501쪽 발췌)
황용주의 '임종 오열'은 비감하면서도 장엄하다. 박정희-황용주의 우정, 아니 시대인식은 그토록 끈끈했고 견고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가 5•16에 기여한 대목은 어디까지일까? 그게 좀 아쉽다. 이 책은 꽤 많은 황용주 관련 일화를 다루면서도 막상 핵심인 5•16에 대한 그의 기여의 디테일과 범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결정적 대목에서 ‘부실 서술’의 혐의가 있는데, 때문에 독자는 책 읽는 내내 연신 답답하다. 여러 가지 정황적 증거로 보다 황용주는 쿠데타에 동기부여를 한 인물의 한 명이라고 추론해야 한다. 아니 공모라고 해도 된다. 둘이 꿈꿨던 쿠데타의 성격은 ‘민족주의 혁명’으로 요약된다. 새로운 근대국가 건립을 하되, 195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민족주의 열풍을 한국적으로 변용해 남북통일까지 예비한다는 정치철학이 깔려있다. 유엔 동시가입의 로드맵도 황용주는 구상했다.(이 대목은 박정희와 큰 차이가 있다) 피폐한 민생을 끌어올리는 경제건설에 대한 의욕 내지 비전도 둘은 공유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미 구문(舊聞)이다. 황용주가 별도의 자리에서 그 내용을 구술(<박정희 기념사업회녹취록>, 2001년)한 바 있다.
저자는 그것을 이 책에서 다시 인용하고 있을 뿐이니 이 책의 새로운 규명작업은 거의 없는 셈이다. 포괄적으로 “군사정권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당사자”라는 반복 주장만 나열될 뿐이다. 쿠데타 초기 박정희의 정치철학을 담은 작은 책자 <국가와 혁명과 나>의 집필과정에서 황용주가 초고를 감수했다는 추정도 저자는 하고 있는데, 물증은 없다. 다소 의아하게도 이와 관련한 황용주의 인터뷰 증언 인용도 없다.
"군사쿠데타 일으켜라" 권유했던 언론인 황용주
저자는 자신과 동향(밀양) 인사인 황용주와 교류를 한 게 꽤 오래 전부터이고, 유족으로부터 일기를 넘겨받은 게 10여 년 전이라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결정적 사안 몇 몇 개에 대해서는 섬세하고 정교한 증언을 따냈어야 옳았다. 그런 허점이 많이 아쉽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 책은 우리의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친다. 다분히 산술적으로 펼쳐진 황용주의 생애사에 박정희 스토리가 에피소드로 얽혀든 밋밋한 수준의 서술이다. 알고 보면 그마저도 요령부득이라고 해야 옳다.책 서두에 고향 이야기가 너무 비중이 크고, 학병(學兵) 이야기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묘사돼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고 있다. 책의 뼈대와 구조는 시원치않은데, 작은 디테일에 매달리는 셈이다. 실은 황용주라는 인물의 캐릭터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황용주의 후배 기자는 이렇게 한 줄로 그 사람의 스타일을 요약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야’ ‘자’하는 사이라는 황용주는 호탕하고 배짱 좋고 카리스마 넘치는데다 범의 눈을 한, 스케일 큰 사람이다.”(권도홍 지음 <날씨 좋은 날에 불던 바람>(나남) 52쪽)
유감스럽게도 이 신간에 핵심을 찌르는 그런 압축적 묘사는 없다.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는 여러모로 구슬을 꿰다 만 느낌을 피할 수 없는데, 왜 그럴까? 그건 저자의 한계이다. 단 안경환의 한계도 있겠지만, 그건 좌파연하는 이 땅 지식인들이 공유하는 지적 한계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박정희 시대를 포함한 현대사를 보는 시야가 제대로 열려있지 못하거나 근거없는 편견이 많기 때문에 온전한 전체 모습을 볼 수 없는 구조적 결함이다. 우리학계는 이래저래 시대와 인물을 함께 볼 수 있는 큰 지식인이 없는 셈이다. 과도한 비판이 아니다. 책의 곳곳에서 그런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이를테면 3공화국의 핵심인 한일 국교정상화를 두고 “성급했다”고 저자는 단정을 짓는다.(365쪽). 한일국교 정상화야말로 박정희 18년 정치생활의 일대 승부수였고,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바로 잡아준 결정적 카드였다는 건 역사의 상식이 아닐까? 결정적인 건 따로 있다. 저자가 유신체제를 “전체주의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렇다. 그건 터무니없는 실수에 해당한다. 기본권 일부를 제한한 조치를 전체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학의 기초를 모르는 판단이라서 의아스럽기조차 하다.
이뿐 아니다. 박정희에 대한 균형을 잃은 묘사, 도처에 등장하는 날선 비판은 꽤 되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누가 (부일장학회의) 김지태를 구속하고 협박한 대가로 재산을 강탈할 아이디어를 냈는가? 많은 공범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주범은 박정희이다.”(397쪽) 너무 단정적이고 거친 서술이 아닐 수 없는데, 저자가 주로 인용하는 참고문헌은 좌파 역사학자 한홍구가 쓴, 다분히 정치적이고 당파성이 강한 성격의 단행본 <장물바구니>이다. 한홍구는 역사학자로 신뢰하기엔 적절한 인물이 아니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알긴 할까?
정수장학회 건만 해도 그렇다.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말하자면 한 국가의 모든 것을 쥔 절대 권력자였다. 그런 그가 지방신문 하나를 탐내서 장물로 삼았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아닐까? 지금도 순전히 정치적 공격을 위해 정수장학회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박정희의 18년 통치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흠 잡을 게 없는가를 보여주는 일일 뿐이다. 실은 농지개혁을 포함한 현대사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의외로 짧거나 비어있다는 것도 금세 확인되는데, 이에 더해 박정희에 대한 기초 정보도 태부족한 것도 드러난다. 박정희 장인의 이름 ‘육종관’을 ‘육종수’로 잘못 표기한 것(70쪽), 그의 군인 이력에서 중요한 ‘광주 포병학교장 임명’을 ‘광주 보병학교장’(264쪽)이라고 엉뚱하게 쓴 것도 단순한 오•탈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착오라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저자는 박정희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채로 박정희 책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심히 안타깝지만, 그렇게 판단할 증거는 많다.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는 많은 논쟁점이 더 있으나 지면 관계로 일단 접는다.
다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던 “글을 쓰는 동안 새삼 나의 세대의 무지와 후속세대의 경박한 오만에 절망하곤 했다.”는 자탄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런 비판은 저자 개인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세대 전체가 ‘역사와의 진정한 화해’에서 충분치 못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책이 안겨준 소득은 꽤 된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박정희 생애 첫 슬럼프인 대구사범 학생시절의 방황을 연구하는데 약간의 암시를 던져준다. 동시에 박정희 연구에 새로운 증언과 자료가 나올 수 있다는 희망도 안겨준다. 많은 점에서 미진한 저술이지만, 미진하기 때문에 박정희 연구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효과는 없지 않은 셈이다.
실은 박정희의 속 깊은 친구로는 1960년대의 대표적 지식인인 시인 구상(1919~2004)이 꼽힌다. 둘은 또 달랐다. 세상사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웠고, 그래서 한갓지게 막걸리를 함께 했던 넉넉한 관계였다. 그러다 개각 소식이 들리면 구상은 시골로 숨어들었다. 대통령에게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이었는데, 생전 대통령에 대해 입도 벙끗하지 않은 채 타계했던 ‘구상’은 간혹 속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박정희를 품을 만한 그릇이 대한민국에는 없어.”
친구 박정희를 무한히 사랑했던 황용주의 경우와 비슷한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거인 박정희를 품는 단행본 역시 우리에겐 없다. 이 시대가 지적으로 올망졸망한 난쟁이의 시대임을 새삼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사족. <황용주 일기 발췌록>, 그런 책을 펴내야 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 분량과 함량이 어느 정도인지가 신간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충분히 검토해볼만하다.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같은 의미있는 증언이 나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