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반값 등록금 논란의 덫
- 정치적 접근을 피해야 더 큰 사회적 비용 줄인다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지난 5월 4일 민주통합당이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하고 당헌•강령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교육정책에 ‘반값 등록금’이라는 용어를 삭제했다. 이에 대해 ‘반값 등록금 운동’을 주도해 온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참여연대 희망본부 등 진보성향 단체들이 즉각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취임 전인 지난 1월 29일 박근혜 당선인 측은 "반값 등록금 공약은 예정대로 지킨다"며 "대학 구조조정은 반값 등록금과 별개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지난 3월 25일 한대련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야가 ‘반값 등록금’ 외치지만 시행 못하는 이유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면 등록금이 싸다고 온 국민이 만족할 것인가? 전면적인 대학무상교육이 아닌 한, 장학금 혜택을 늘인다고 장학금제도에 불만을 가진 학생이 사라질 것인가?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한 왈가왈부 이전에 이 문제가 정치적 쟁점과 사회갈등의 주요 현안이 된 과정을 시점 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아래에서 보듯 어느 정부나 정당 할 것 없이 ‘반값 등록금’ 문제를 구체적 대안 없이 대선과 총선을 위한 정략적 목적으로 떠들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야 모두가 ‘반값 등록금’을 경쟁적으로 외치면서도 정권이 두 번 바뀌도록 시행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9월 한나라당이 고등교육법 개정 등 ‘5대입법’ 계획 발표로 ‘반값 등록금’ 논쟁의 불을 지핀 후, 대선을 10개월 앞둔 2007. 2. 7. 김형오 원내대표가 2월 임시국회에서 ‘반값 등록 금법안’, ‘반값 아파트 법안’ 등 4대 민생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밝힘. 그 후 이명박 정권 내내 별 진전이 없다가, 총선과 대선을 1년 여 앞둔 2011. 5. 22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 시행 의지를 밝힌 후 ‘반값 등록금’ 관련 갈등과 논란이 다시 촉발됨.
▲이틀 후인 5. 24. 선거에서 ‘반값 등록금’ 문제의 주도권을 여당에 내주지 않으려고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반값 등록금 대책’을, 다음날 천정배 최고위원이 "무상 등록금”을, 5. 30. 정동영 최고위원이 “등록금 폐지론”을 주장하며 한 술 더 뜸.
▲며칠 뒤 2011년 06~7월 한대련 및 야4당이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 촉구 촛불집회를 연일 벌였고, 이들 집회에는 유시민, 권영길, 손학규, 김진표, 정동영, 천정배, 이정희, 조승수 등 야4당대표, 원내대표, 최고위원들과 야권 주요인사들이 대거 참여함.
▲2011. 6. 17.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 불가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후, 2011. 8. 8. ‘반값 등록금’ 문제 제기 후 속수무책이던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만 0세부터 전면무상보육 실시’를 주장하며 새로운 논쟁의 불씨를 당김.
▲대선이 임박한 2012. 7. 29.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대학등록금 부담을 분명하게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고, 2012. 10. 18. 안철수 후보도 집권 내 대학 ‘반값 등록금’실현 계획을 밝힘.
▲대선 직전인 2012. 12. 1. ‘반값 등록금 국민본부’와 한대련이 벌인 ‘반값 등록금’집회에 통진당 이정희 대선후보와 김재연 의원, 이수호 서울시 교육감후보, 민통당 박홍근 의원 등이 참석함.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2013. 3. 25. 한대련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에게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했고, 지난 5. 4. 민통당이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고 당헌•강령개정안을 의결하면서 교육정책에 ‘반값 등록금’이라는 용어를 삭제함.
박근혜 대통령에게 혹이 된 반값 등록금 문제
이상에서 보듯 ‘반값 등록금’ 문제는 2006년 9월 한나라당이 논쟁의 불을 붙인 후 2007년 대선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여야가 서로 목청을 높이다가 결국 대선 전 "대학등록금 부담을 분명하게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며 `반값 등록금' 실현 의지를 밝혔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떼어내기 힘든 혹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교육 현실을 살펴보면 ‘반값 등록금’ 문제는 국민의 눈치나 살피면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를 정점으로 감소추세를 보여 2012년 71.3%로 낮아졌지만, 아직도 50퍼센트 중반의 OECD 국가 평균보다 훨씬 높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199개 4년제 대학과 156개의 전문대학이 있으나, 4년제 대학의 80%에 해당하는 155개 대학이 사립대학으로, 등록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공립대의 비율이 미국 70%, 프랑스 86%, 독일 95%, 이탈리아 93% 등임에 비해 우리나라는 20%에 불과해 대학교육이 사립대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는 전문대는 거의 모두가 사립대이다. 그 때문에 자녀등록금이 이미 가계부담의 주요인이 되었으면서도 대졸실업자 문제는 더욱 심화되는 등 사회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에는 등록금만 내면 입학이 되고 입학만 하면 졸업이 보장되는 대학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감사원의 부실대학감사 결과에 따르면, 미달된 학과에 교직원과 가족들을 '전액 장학생'으로 등록시킨 후 수업도 듣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학위를 수여하는가 하면, 학생들로부터 '백지 원서'를 받은 후 합격할 수 있는 학과를 교직원이 대신 써주는 방법으로 학생을 뽑은 학교도 있다. 이런 식으로 대졸자를 양산하니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 10명 중 4명이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2013년 4월 국회도서관이 발간한 자료(`청년실업 한눈에 보기`)에 의하면 2011년 2월 기준으로 그 해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비경제활동률은 42.9%에 달하여 2007년 34.0%, 2008년37.8%, 2009년 40.8%, 2010년 42.8%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반값 등록금’을 시행한다면 이런 한심한 부실 대학에까지 예산을 대거 투입하면서 청년실업자를 대거 양산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부실대학 구조조정으로 대학진학률부터 낮춰야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면 물론 국민의 학자금부담이 줄어들고 대학진학 학생수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학생수의 증가는 대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고,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학생 수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대졸실업자가 더 늘어날 것이며, 대학진학의 붐은 고졸기술인력의 감소로 노동시장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노동의 질을 떨어뜨려 국가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욱이, 무리한 대학진학으로 저소득층의 가계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키거나 ‘반값 등록금’에도 대학에 못 가는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대학등록금이 거의 없다는 유럽국가들의 대학진학률이 대체로 40% 내외인데 반하여 대학등록금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이들 국가의 두 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들 선진국가들의 대학진학률이 낮은 이유는 대학공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학생들은 등록금이 무료라도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직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전문지식을 배우고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지 취직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자긍심이나 학문연구에 대한 사명감이 있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세계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기초과학이나 인문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가계부담 및 국가와 대학의 재정부담을 줄이고 청년실업률을 낮추면서 산업경쟁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값 등록금’ 문제를 놓고 정치적으로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대학 입학과 졸업의 문(門)을 대폭 좁혀 대학진학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 올바른 해법일 것이다. 즉, 정부가 2011년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는 부실 대학 구조조정을 강력히 시행하여 부실 대학을 과감히 퇴출시키고 대학정원을 대폭 줄이는 한편 대학입학자들에 대해서는 장학금과 금융지원 등의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 근본대책일 것이다.
만일 정부가 산업경쟁력과 청년실업률 등을 포함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선거공약에 이끌려 ‘반값 등록금’ 문제를 무리하게 시행한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반값 등록금’ 시행을 위해 정부의 예산문제나 대학의 재정문제 등을 따지기에 앞서, 과연 ‘반값 등록금’이 온당한 정책인지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재고정리’ 구호 같은 ‘반값’이란 말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주먹구구식의 선동적인 표현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