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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복수, 파괴적 복수
서지문   |  2005-10-14 12:52:07  |  조회 2178 인쇄하기
아주 오래 전에 친구 중의 한 명이 사귀던 남자에게 악랄하게 배신을 당한 일이 있었다. 친구는 가난한 작가 지망생인 그 남자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격려하면서 5년 동안이나 헌신적인 애정을 베풀었는데 그 남자는 친구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몰래 다른 여자와 사귀며 재정 지원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나의 친구들은 분개해 언성을 높이며 절대로 그런 배신자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고 복수해야 한다며 이런저런 복수의 방안을 내놓았다.

나도 그 철면피한 남자에게 분노를 느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날의 분위기로 보아 그 친구가 남은 삶을 오로지 그 남자에게 복수하는 데 소모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 됐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고귀한 청춘을 5년이나 그 비열한 인간 때문에 낭비한 것만도 원통한데 나머지 인생도 그 인간 때문에 허비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인간은 그런 식으로 계속 사람을 이용하다가 결국 자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지만 비록 그가 출세하고 잘산다 하더라도 그를 깨끗이 잊고 다시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단언했다.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친다면 결국 일생 그의 제물이 되는 것과 다름없으니 이제는 자신의 삶을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결국 피해를 당한 친구가 잘사는 것이 제일 좋은 복수라는 것으로 중론이 모아졌다.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복수의 감정이다. 그래서 ‘복수’를 주제로 한 멜로드라마는 손쉽게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유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경험이 있고, 모두 조금씩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복수극’은 대개 복수의 허무함을 결말로 보여 주고 복수보다 용서가 현명하고 아름다운 일임을 역설하지만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그 교훈보다 복수심의 노예가 된 사람의 ‘너무나 인간적인’ 집념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복수심을 유발하는 상황은 참으로 많다. 가장 대표적인 상황은 위의 친구처럼 자기가 순정을 바친 또는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복수심을 품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하찮은 말이나 행동에 상처를 입고 증오에 불타게 되는 경우도 있고,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대화도 나눠 보지 않은 상대편에 열등감을 느껴 미워하며 잘못 되기를 바라게 되는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시민이 매일매일 힘없는 설움과 분노를 느끼지는 않을 정도로 선진국이 됐다. 그러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관공서에서 증명서 하나 떼려고 해도 큰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래서 1960, 70년대에는 ‘억울하면 출세해라’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제는 억울함을 면하기 위해 출세할 필요는 그리 절실하지 않지만 아직도 소송이라든지 사업하는 데 있어서는 힘없는 사람이 설움을 겪게 되는 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아니꼬운 인간들에 대한 앙갚음으로 출세하려 한다면 끝없이 출세해야 하고 그러고도 종국에는 허무만 남게 되기 십상이다.

세상에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앞으로는 나 같은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를 개선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있다. 복수심으로 자신을 소모할지, 아니면 모두를 위한 창조적인 에너지로 변환시킬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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