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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2> '싱가포르의 신화' 리콴유 새로 읽기
조우석   |  2013-07-24 13:43:09  |  조회 4504 인쇄하기

<서평2> '싱가포르의 신화' 리콴유 새로 읽기

 

- <리콴유와의 대화> 톰 플레이트 著


조우석 (문화평론가)

 

 

“솔직히 말해 나는 리콴유 흠집내기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이야기라면 이미 잘 알려져있다. 서구 언론은 지난 수 십 년 리콴유를 콧대 높은 소프트 독재자로 묘사해왔다. … 싱가포르를 세운 이 인물을 바라보는 이 책의 시선은 서구 언론과는 차이가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리콴유라는 인물에 대한 솔직하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리콴유와의 대화>(톰 플레이트 지음, RHK 펴냄)에 끌린 것은 이 머리말 때문이다. 아시아 정보통으로 알려진 미국 기자 톰 플레이트는 미국과 유럽 언론 특유의 선입견을 내려놓은 채 싱가포르의 거인 리콴유을 바라보겠다는 선언이다. 희한하게도 싱가포르는 한국과 함께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신생국가인데, 그곳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서구의 평가는 반드시 호의적인 게 아니다. 그를 두고 “새로운 박해자” 내지 “부드러운 독재자”라며 유보적 자리매김이 적지 않다. “동남아의 작은 히틀러”라는 독설까지 있는데, 그건 미국 칼럼니스트 새파이어의 발언이다.

 

 


왜 서구언론은 리콴유 흠집내기에 열중하는가?


아직도 기억에 훤하다. 1994년 싱가포르 곳곳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의 혐의로 구속된 미국의 불량 청소년 마이클 페이 사건 때 리콴유 정부는 태형(笞刑), 즉 곤장을 때렸다. 미국 언론과 인권단체들은 그게 전근대적인 형벌이고, 보편적 인권의 기준에 위배되는 순 아시아 식이라며 맹비난을 했다. 리콴유는 눈도 깜짝 하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서구의 비난은 커졌다. 어느 사회, 어느 나라라도 큰 골치덩이로 등장한 마약 사범에는 가차없는 사형집행을 하는 게 싱가포르의 일관된 정책인데, 그걸 놓고 “이상한 나라”로 규정한다. 왜 너희들은 서구와 다르냐는 볼멘소리가 아닐까?


“서구는 아직도 싱가포르를 기술적으로는 발전해있지만, 지금도 태형제도가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잔인한 사회, 잔디 위를 걸어도, 담배를 피워도, 껌을 씹어서도 안 되는 나라, 그리고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반명예훼손법이 정치인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 그 누구도 싱가포르 건국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라고 여기고 있다.”(43쪽)


국가가 시시콜콜한 시민의 일상생활까지 간여한다 해서 유모국가(the nanny state)라고 조롱하는 이도 있다. 사실 인터뷰어인 저자의 설명대로 사실 싱가포르의 정치 환경은 독특하다. 선거나 정쟁 과정에서 등장하는 정치인의 발언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경우 명예훼손법에 따라 엄청난 벌금이 부과된다. 함부로 입을 놀린 정치인은 재정 파산을 면할 수 없는 구조인데, 양면성이 있을 것이다. 논쟁 자체를 막는 억압적 효과가 없지 않으리라. 대신 기대효과도 크다. 즉 ‘상시적 정쟁(政爭)의 나라’한국에서는 당장에라도 도입해 볼만 하다는 게 필자만의 판단이다.


어쨌거나 싱가포르가 정치후진국이라는 젊은 층의 불만이 없지 않고, 너무 강력한 정부의 지도력에 국민들이 개성이 실종됐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건 그런 배경이다. 한국사회와 닮은꼴이면서도 매우 다른 싱가포르는 강력한 법치 속에서 안정적 성장을 거듭하는 국가인데, 그런 나라를 프로그래밍한 최고지도자 리콴유의 ‘속 깊은 배짱 발언’을 이 책에서 들을 수 있다. 그는 서구언론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데, 이를테면 서구형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을 이렇게 표현한다.


“강력한 리더십은 국정의 요체”라는 아시아의 마키아벨리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것처럼 작금의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시스템이며, 이를 능가할 제도는 없다는 (서구의) 주장은 절대 진리일 수 없습니다.”(75쪽)


리콴유의 정치철학은 단순한 취향 내지 변덕이 아니다.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적절한 거리 두기에서 출발한다. 사실 그가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운 개성 있고 용기 있는 지도자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잡지 ‘포린 어페어스’기고를 통해 그걸 주장했고, 한국의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걸 반박하는 보편적 글로벌리즘을 내세워 대립각을 세웠다. 어쨌거나 리콴유에게는 그런 배짱의 정치철학이 있고, 그래서 적지 않은 내외의 적을 만들기도 하지만 생애 만년의 그는 지금도 요지부동이다.


저자에 따르면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없으면 효과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래서 종종 마키아벨리주의자로 지목된다. 다른 지도자들처럼 국민의 사랑과 인기를 얻는 걸 원하겠지만, 꼭 필요한 정치적 결단을 포기하는 타입은 결코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한 효율 제일주의와 엘리트 시스템이야말로 싱가포르 성공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리콴유는 말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믿는 것은 명백한 허위의식이거나, 최악의 경우 사악한 속임수(158쪽)에 불과하다고. 놀라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기술적 합리성이 최고치에 달한 현대세계는 정치지도자에서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라고 하는 거짓 주술(呪術)에 사로 잡혀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리콴유는 감히 “노!”의 목소리를 내는데 그게 싱가포르라고 하는 현대국가의 건국과 부국을 성공케 한 바탕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해야 옳다.


“리콴유의 관점에서 볼 때 비효율적 민주주의는 우민정치와 포퓰리즘을 정당화한다.”(122쪽)“리콴유에 따르면 성과주의 시스템은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반면)엘리트 체제를 찾아볼 수 없는 엄격한 민주주의 시스템은 평범에만 주목한다. 반면 솔직하고 용감무쌍한 엘리트들, 즉 현대의 왕자들은 거침없이 진실을 말하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158쪽)


20세기 아시아 정치거목들의 같은 점, 다른 점


기왕에 리콴유에 관한 단행본은 <리콴유 자서전>(문학사상, 2001년)과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문학사상, 2001년)이 있으니, 신간 <리콴유와의 대화>는 그걸 염두에 둔 채 은퇴 이후 그 괴팍한 지도의 속내를 확인하면 된다. 필자가 이 책을 통독한 느낌은 리콴유에게서 한국의 건국 지도자 우남 이승만과, 부국의 지도자 박정희 분위기가 함께 느껴진다는 점이다. 세 지도자 사이의 정치철학은 물론 퍼스널리티 그리고 스타일까지 그러하다. 우연일 리 없다.


이승만의 경우 미국과 서구에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숱한 오명과 별명을 얻어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독재자, 야심가, 반동분자, 무책임한 인물 등의 규정은 흔한 일이었고,“유엔의 문제아” “무책임한 개구쟁이”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로버트 올리버 지음 <신화에 가린 인물 이승만> 342쪽, 건국대 출판부) 서구 신문들의 만평에서 희화화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강력한 반공산주의 철학도 닮았다.


정치지도자로 유사점은 박정희-리콴유 사이에 더 많다. 리콴유가 변종의 민주주의자라면, 박정희도 그러했다. 집권 초기 박정희가 민족적 민주주의 구호를 내세웠고, 유신 선포를 전후해서는 거의 노골적으로 서구사회의 정치철학과 민주주의에 거리를 뒀다. 그걸 독재자의 권력욕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필자는 그런 판단이 얼마나 얼치기 보편주의자들의 몽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함께 음미해볼 점은 대기업과 재벌을 앞세운 박정희 식 경제개발 전략과 새마을운동의 핵심 철학은 산술적 평등주의, 기계적 평등주의 따위를 가볍게 무시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박정희-리콴유의 통치철학의 유사성은 어쩌면 아시아적 개발전략 혹은 아시아적 민주주의로 새롭게 규명되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리콴유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이 흥미로운 이유는 또 있다. 박정희의 정치철학이 일본 군국주의와 1930~40년대 만주체험에서 나왔다는 게 그간의 가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님을 리콴유가 보여준다. 필자에겐 이 대목이 흥미롭다. 리콴유는 박정희와 달리 서구교육, 그것도 서구민주주의의 요람인 영국에서 대학교육을 받았다. 그런데도 둘은 너무도 유사한 정치리더십을 발휘했고, 효율 제일주의를 무기로 현대적 네이션 빌딩에 성공했다.


"한국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리콴유의 조언을 기억하라


아직은 가설이지만, 둘은 유교문화를 포함한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했다고 볼 순 없을까? 그 실마리를 이 책에서 잡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싱가포르는 서구국가들과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들과 같을 순 없습니다. 목표도 다르겠지요.”(216쪽)


필자는 리콴유의 이 육성을 1960~70년대 내내 한국사회에서 자주 들어본 듯해서 두세 번 반복해서 읽었음을 고백해둔다.


사실 리콴유와 박정희가 공유하는 정치문화 DNA인 강력한 국정 리더십, 효율 제일주의와 엘리트 시스템 그리고 서구 민주주의와 또 다른 토착화된 아시아적 정치철학이란 너무도 흥미진진한 비교연구의 대상이다. 필자의 판단으로 이런 정치문화 DNA는 싱가포르와 한국이 생존 위험을 안고 만들어진 국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경우 리콴유의 말대로 1965년 건국(말레이시아연방에서 분리 독립)과 함께 “몸통이 없이 심장만 물려받았던 국가”(<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69쪽)였다. 당시를 회고하며 리콴유는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식량은 물론 식수조차 자국 내에서 구할 수 없는 인구 200만 여의 작은 섬국가, 내륙지역이 없는 도시국가의 한계였는데, 이런 환경에서 비상한 경제, 뛰어난 정치를 추구하는 것은 리콴유의 싱가포르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더구나 한국과 또 달리 다인종, 다언어의 사회구성은 막 건국한 작은 나라에겐 치명적인 요소였으리라. 리콴유는 성장기 시절 무려 네 개의 국가(國歌)를 부르며 컸다.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를 부르다가 짧은 일제 점령시기에는 '기미가요'를 합창해야 했다. 직후 말레이시아의 '나의 나라'에 이어 분리 독립 이후에는 '싱가포르여, 전진하라'를 불렀다는 그의 고백 앞에 필자는 가슴이 아려왔다.


사족 1 =  <리콴유와의 대화>를 읽은 뒤 우연치 않게 접했던 책이 <자유를 향한 20세기 한국정치사>(일조각, 2008년) 였다. 필자가 1931년생 원로 정치학자인 한배호 전 고려대 교수인데, 이 책에 이런 ‘한국적인, 매우 한국적인’ 글이 있어 여기에 기록해둔다. “싱가포르는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한, 세계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가진 나라 중 하나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는 자기 정적으로 무자비하게 억압한 사람으로 알려진 독재정치가다. 이들 모두 박정희를 숭배했던 사람들이다. 마하티르는 ‘Look East'라는 표현을 써가며 박정희 정권의 개발주의를 지지하고 모방하려 했다.”(405쪽) 한배호뿐일까? 한국의 대다수 정치학자를 포함한 ‘환상 속의 민주주의자들’은 아직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지 모른다.


사족 2 = 다시 훑어본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말미에 한국 관련 서술이 꽤 눈에 뜨인다. 리콴유가 박정희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인데, 동시에 1987년 전후 격렬한 노동쟁의와 학생 시위를 보며 "한국인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지적한 것도 기억해둬야 한다. 그 대목은 이렇다. "그들이 시위할 대는 중세의 검투사처럼 플라스틱 방패를 들고 보호구를 얼굴에 쓴 전투경찰만큼이나 매우 조직적이고 훈련이 잘 되어있었다. 그들은 정부당국에 반대할 때는 거세고 폭력적으로 행동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IMF 이후 한국사회를 유심히 관찰하며 한국은 발전과 퇴보의 기로에 서있다고 진단한 그의 언명은 지금 더욱 리얼하게 다가온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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