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법과 법치
- 법과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부터 쌓자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과거 군사정부 시절 “박사(博士) 위에 육사(陸士)”라는 말이 유행했다. 막강한 군부의 권력과 육사출신 군벌의 전횡을 빗댄 풍자의 변(辯)이었다. 그 후 문민정부 이래 국민의 귀에 익숙해진 유행어가 “헌법 위에 '떼법'”이다. 무지한 폭력과 몰염치한 억지, 무력한 공권력과 황당한 법원 판결 등이 판치는 야만적 사회현상을 비꼬는 자조적인 한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관련 남북정상회담 발언 내용이 공개된 후 세상이 혼란스럽고 소란스럽다. 자중하고 근신하며 국민의 눈치를 살펴야 마땅할 사람들이 오히려 목청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NLL 관련 발언’이나 ‘녹취록’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다 궁지에 몰리자 “녹취록 조작” 운운까지 하던 사람들이 ‘NLL 관련 발언’의 실체가 공개되자 ‘대화록’ 공개 자체를 문제 삼고 “대화록 사전 유출” 의혹 등으로 여당을 몰아세우며 문제의 본말(本末)을 흐리려 하고 있다. 정치판의 속성이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 눈에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이자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닐 수 없다.
국회와 정당들이 '떼법'과 '배째라 문화'에 앞장서는 것은 비단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주: '배째라 문화'란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떼쓰면 득 본다”는 '떼법' 억지와 “아니면 말고”식의 ‘배째라’ 몰염치가 판치는 우리 사회의 야만적 사회현상을 일컬은 용어임). 오물과 최루탄을 던지며 몸싸움을 일삼다가도 세비인상, 국회의원연금 등과 같은 집단이기적 안건들은 여야가 야합하여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행태도 '떼법'과 '배째라 문화'의 전형이다.
우리 모두가 '배째라 문화'에 감염되었나?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운동권 노래에 잠 깨는 아침”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아침 7시가 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아파트 주민 중 한 분이 운영하는 회사에 노사 분쟁이 발생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정문 앞에서 매일 아침 시위를 벌인다는 것이다. 관리소 측은 분당경찰서장이 집회와 시위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침마다 거친 소음으로 수천 가구 주민을 괴롭히는 사람이 합법적이라고 한다면 법이 잘못됐거나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에 문제가 있다.”라는 요지의 글이다.
사실, 이런 일은 이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도처에서 합법을 빙자한 불법이 판치고 있다. 시위에서 '합법'이란 '집시법(集示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집회 신고'를 했다는 뜻이지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정부청사나 법원, 구청 앞에는 1년 내내 각종 연합회, 연대, 협회, 조합 등의 고성방가가 그치지 않는다. 덕수궁 정문 옆에서는 불법 '농성촌(村)'이 강제 철거된 이후에도 시위단체들이 불법점거시위를 계속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 2009년 '용산참사' 사건을 주도했던 '전철연'이 지금도 “철도공사 제2의 용산참사를 원하는가?”라는 등의 섬뜩한 구호를 내걸고 또 다른 폭력시위를 예고하고 있는데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에 당시 수감자 8명 전원의 사면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집회와 시위 허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
옥외집회나 시위를 벌이려면 '집시법(集示法)' 제6조에 따른 신고서를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면 된다. 그러나, 집회 및 시위 신고 내용이 어떻든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는 주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제5조 “집회 및 시위의 금지”). 또한, 집회 또는 시위 신고 장소가 “다른 사람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로서 집회나 시위로 재산 또는 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사생활의 평온(平穩)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그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집회나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제8조 “집회 및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 통고” ③. 1.).
결론적으로, 위의 “운동권 노래에 잠 깨는 아침”과 같은 시위는 관할경찰서장이 즉각 금지시켰어야 마땅하다. 관할경찰서장이 집회와 시위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공권력의 직무유기이다. 상습적으로 공공시설을 점거하고 고성방가를 일삼는 자들에게 집회를 허가해 주고 명백한 불법시위에도 속수무책이라면 법과 공권력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법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집단들에 대해서는 이들의 법적 권리를 제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개인의 자유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보장되고, 개인의 권리에는 사회적 의무가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질서유지선'(police line)이 어린애들 줄넘기인가
일반 국민들의 '떼법' 망동도 도를 넘는다. "출입문이 안 열려 못 내렸으니 책임을 지라"는 승객의 항의로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행 중이던 지하철이 후진한 황당한 일도 있었고, 단식투쟁으로 시끌시끌했던 ‘천성산 도롱뇽' 해프닝은 2조 원을 훨씬 넘는 경제적 손실만 초래했다. 2012년 여수엑스포에서는 기다리다 지친 관람객들의 항의와 폭력에 밀려 개장 15일만에 예약제를 폐지했고, 그 결과 그 다음날부터 주요 전시관의 대기시간이 한때 7시간이나 걸리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원칙이 '떼법'에 밀려 무너지면서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우리 국민의 법의식 수준은 OECD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그래서 법으로 정한 '질서유지선'(police line)을 어린애들 줄넘기줄 정도로 생각하는 자들이 '떼법'으로 경거망동한다. 덕수궁 앞에 수십 명의 경찰들이 온종일 줄지어 시위대를 막고 서 있을 일이 아니라 '질서유지선'을 침범하여 '떼법'으로 막무가내는 자들을 엄벌하여 법을 농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공권력과 시위대가 밤사이에 아군과 적군이 바뀌던 고지탈환전투와 같은 공방을 벌이면서 공권력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가? 사회적, 경제적 약자라고 해서 ‘법치’를 우롱하는 '떼법'이 용인될 수는 없다. 불법시위를 막기 위해 시위자수보다 많은 경찰이 동원돼야 한다면 이 나라 꼴이 무엇이 되겠는가?
이처럼 각종 '떼법' 망동이 '법치'를 유린하고 있는데도 일부 언론들이 ‘법치’를 위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편향된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 또한 엘리트집단들의 '떼법' 궤변이 아닌가? 굵직한 시위장마다 신부(神父)나 수녀(修女) 복장으로 점거농성을 벌이는 '정의구현 사제단(司祭團)'은 국민들 눈에 “떼법구현 사재단(私財團)”이나 “배째라문화 전도사(傳道師)” 쯤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황당한 논리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집단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일부 야당의원들은 좌편향 사상과 '배째라 문화'에 감염된 격리대상 환자들 아닌가?
국회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떼법 난무의 요인
대다수의 국민이 국회와 사법부를 불신하고 있는 것도 이 사회에 '떼법'이 난무하는 요인의 하나이다. 작년 5월 국회 스스로 후진성을 인정하듯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 국회에서의 몸싸움을 없애고 예산안 등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스스로 ‘어린이선진화법’을 만든다고 의젓한 어린이가 될까? ‘
필리버스터’(Filibuster: 장시간 연설이나 다수의 수정안 제출 등 계획적인 의사진행방해 행위)와 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를 도입하면서,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원칙까지 훼손시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요하는 조항을 신설하여 국회가 공전(空轉)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결국,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과 대통령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소수당의 발목잡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합법적인 ‘떼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스스로 야당에 발목 잡힐 법안을 통과시켜 놓고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감격했다니 기가 찰 일이다. 국회에서 이런 식으로 법을 만드니 국민이 법을 우롱하고 ‘떼법’이 판치는 것 아닐까?
판사나 법원의 판결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 국민을 아연실색(啞然失色)케 했던 향판(鄕判) 수석부장판사, 막말 판사, 성추행 현행범 판사 등에 이어 ‘시정잡배’ 눈높이 재판을 하겠다던 ‘가카새끼 짬뽕’ 부장판사는 ‘시정잡배’ 수준의 파렴치 범행을 저지르고 판사직을 물러났다. 최근 현직 부장판사의 박사논문을 통해 1심 유죄판결이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540건 중 504건(93%)이 무죄로 확정됐음이 밝혀졌다.
필자가 가까이서 겪었던 형사사건의 경우에도 무죄가 명백한 사건에 대해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90여억 원의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까지 시켰으나,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당시 1심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는 우수판사로도 선정되었고 현재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어있다. 억울한 판결로 참담한 감옥살이를 한 국민의 피해는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형식적인 보상만 하고, 황당한 판결을 한 판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 받아가며 승진까지 하는 것이 국민의 상식으로 납득이 갈까?
법률전문 시민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이 작년 전국 성인남녀 1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민 법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77%의 응답자가 “법원이 불공정 재판을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전국 고교생 3400여 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무려 94%의 학생들이 권력과 재력이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고, 고교생 10명 중 7명은 우리나라 법률이 공평하지 않다고 답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참으로 기가 차다. 여야가 합의하여 ‘NLL 대화록’을 열람한다더니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고 한다. 여야는 이 문제를 놓고 정치공세에 골몰하고 있지만, 누가 역사와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지 온 국민이 철저히 지켜볼 일이다.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직대통령의 사저와 친인척들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재산을 압류 당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월 20일에는 70여개 좌파 노동•정치단체들이 울산 현대차에 버스 60여대와 열차 2량으로 전국에서 몰려가 소위 ‘희망버스’ 시위를 벌이며 죽봉(竹棒)과 돌멩이로 100여명을 다치게 했다. 정부공문서 위조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광주시장은 정부의 강경대응방침에 대해 ‘타 대회와의 형평성’을 운운하며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적반하장이다. 그야말로 ‘떼법’과 ‘배째라 문화’가 판치는 이 사회 각계각층의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전형이다.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공직기강의 타락이 도를 넘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잃은 탓이 아닐까? 법치를 통해 공권력의 권위와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면 우선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고 정부는 물론 국회와 사법부 또한 '떼법'과 '배째라 문화'에 단호하게 대응하여 법과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쌓아야 할 것이다. 법치가 곧 자유민주주의의 뿌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