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공화국
- 사회적 자본 구축 없이 선진사회 진입은 없다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지난 6월 10일 멕시코의 시장(市長) 선거에 고양이가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는 미국의 인터넷신문 허핑턴포스트(The Huffington Post)의 보도가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었다. 물론 고양이 후보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고양이를 시장 후보에 내세운 이유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모리스(고양이의 이름)의 성품이 정치인에 딱 어울린다"고 한 고양이 주인의 설명이 전세계인의 공감을 샀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전세계인 공통의 정서(情緖)이자 공동의 문제인 듯하다.
얼마 전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세계 107개국 일반인 114,300명을 대상으로 부패 인식과 경험을 조사한 ‘2013년 세계부패척도(世界腐敗尺度: Global Corruption Barometer)’를 발표하였다. 평점(가장 부패 5점, 가장 청렴 1점)으로 분석한 결과, 전세계 공통으로 정당이 가장 부패 정도가 심한 기관으로 인식되어, 정당(3.8점), 경찰(3.7), 공무원(3.6), 국회(3.6), 사법부(3.6), 민간기업(3.3), 의료기관(3.3), 교육기관(3.2), 언론(3.1), 군대(2.9), 시민단체(2.7), 종교단체(2.6)의 순으로 나타났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전세계인 공통의 정서
우리나라에서는 정당(3.9점), 국회(3.8), 종교단체(3.4), 공무원(3.3), 사법부(3.2), 경찰(3.2), 민간기업(3.2), 언론(3.2), 군대(3.1), 교육(3.1), 보건의료서비스(2.9), 시민단체(2.8) 순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청렴한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종교단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정당과 국회 다음으로 부패가 심한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우리 국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는 세계평균보다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뇌물제공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는 뇌물제공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율이 3%로 영국(5%), 미국ㆍ스위스(7%)보다 낮았다(주: 높은 국가청렴도로 잘 알려진 핀란드, 덴마크, 호주, 일본은 1%이며, 107개국 평균은 27%였음). 그러나, 우리나라가 영국이나 스위스보다도 국가청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뇌물공여 경험자가 3%로 낮은 이유는 공직자에게 제공한 수천만 원의 현금이나 명품시계를 뇌물이 아닌 단순한 떡값(선물)이라고 주장하듯 뇌물이 일상화 되어 뇌물에 대한 의식 자체가 희박한 탓이 아닐까?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한국갤럽(Gallup Korea)을 통해 작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1,5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우리나라 국민은 전체 참여자의 70%가 정당을 극단적으로 부패한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이 국회(64%), 종교단체(43%), 사법부(38%), 언론과 공무원(36%), 경찰(35%), 기업(33%), 군대(31%), 교육기관(30%) 등이다. 종교단체와 사법부가 공무원, 언론, 경찰 등보다 더 부패한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종교단체가 정당과 국회 다음으로 부패가 심한 기관?
최근 1만여 교회가 소속된 국내최대 개신교단(改新敎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가 교단 설립 100주년을 맞아 ‘헌법 전면개정’을 추진하면서 소득의 10%를 헌금으로 내는 '십일조(十一租)'를 이행하지 않는 교인에 대해 자격을 정지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개정안 제17조 3항 ‘교인으로서 6개월 이상 예배에 출석하지 않거나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는 교인은 권리가 자동 중지된다'는 부분과,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교인의 의무'로 추가한 제15조). 헌법개정의 취지가 어떻든 일각에선 “하나님 믿는 것도 이젠 돈이 있어야 하느냐......” “교인이라면 당연히 스스로 헌금을 해야 하지만 그것을 강제하는 것은 성경과 배치된다”는 등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종교단체가 정당과 국회 다음으로 부패가 심한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종교단체의 부패 여부나 그 정도를 쉽게 알 수가 없어 그야말로 국민들의 인식이자 추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분야에 과문(寡聞)한 필자도 정부가 최근에 ‘2013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2015년부터 종교인에 대해서도 과세하겠다고 밝힌 것이 세수(稅收) 확대 목적 외에 이와 같은 국민정서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히포크라테스’ 정신도 상업주의에 묻혀버렸다
부패 정도가 가장 낮은 기관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보건의료서비스(2.9) 분야에서조차 상업주의가 ‘히포크라테스 선서’ 정신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지난 6월 중앙일보 이철호 논설위원은 연세대 총장의 강의내용을 신문에 실었다. 세브란스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모자라고 장례식장만 근사하다는 총장 질문에 대한 대학병원 측의 대답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의료보험 수가가 낮아 클수록 손해가 나서, 최소한의 법적 기준만 맞춰 지었다”, “장례식장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장사가 되기 때문에 근사하게 지었다”는 등이었다고 한다. 또한, “목숨이 달린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작고, 장례식장은 크고…… 병원이 마치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네요?”라는 총장의 질문에 “가격통제를 하니 세상이 불합리하게 돼버렸습니다”라고 답했고, “그럼 병원은 어디서 돈을 버나요?”라는 질문에 “검사를 많이 해야죠. 영국 전체보다 서울에 있는 MRI 대수가 더 많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전반적인 현주소임을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최근 '월급쟁이 증세(增稅)' 논란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들이 작년부터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급여인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를 대폭 인상해 비과세 혜택을 누려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는 작년부터 일반직장인들처럼 소득세를 내는 의원들의 ‘일반수당’과 ‘관리업무수당’은 각각 3.5%만 인상한 반면, 비과세 혜택을 받는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는 과세대상소득 인상률의 무려 18.8배에 달하는 65.8%를 올렸다. ‘부패 0순위’로 인식되고 있는 우리나라 정당과 국회의원다운 후안무치의 일면이다. 오죽하면 “가장 확실한 금연을 위해서는 담배표지의 경고 문구를 ‘이 담배의 판매수익금은 전액 국회의원 복지비용으로 사용됩니다’라고 쓰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까? 국회의원들은 기본급 외에 관리업무수당•정근수당•가족수당•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명절휴가비•급식비•자녀학비지원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약 1억 5000만원의 연봉을 챙긴다. 게다가 일곱 명의 보좌관•비서관 등에 대한 인건비 4억여원과 차량유지비•유류대•운전기사 연봉으로 따로 5000여만원을 지원받는다. 외국 국회의원들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혜택이다.
우리나라의 수사•단속•규제기관일수록 청렴도가 낮다
앞의 조사결과에서 보듯 정당과 국회는 물론 법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법복(法服) 속에 감춰왔던 치기(稚氣), 편견, 오만을 드러내며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12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결과’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 중 수사/단속/규제기관의 종합청렴도가 일반행정기관보다 오히려 낮았으며, 수사/단속/규제기관 중 경찰청, 검찰청이 5등급으로 최하위였고, 그 다음으로 국세청이 4등급이었다. 금융공직 유관단체에서는 금융감독원이 5등급으로 최하위였다. 결국 힘 있는 기관일수록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原電) 비리가 일파만파인 가운데, 한국이 아시아 선진국(developed countries) 중 최악의 부패국가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매년 아시아 각국과 미국•호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외국기업인 1000∼2000명을 대상으로 현지의 부패 정도를 조사하고 있는 홍콩 소재 컨설팅회사 PERC(Political and Economic Risk Consultancy: 政治經濟危險諮問公司)가 금년 3월 발표한 조사결과(가장 부패 10점∼가장 청렴 0점)에 따르면, 한국이 전체 17개국 중 여덟째로 부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004년 6.67점이던 부패 점수가 2010년 4.88점으로 떨어졌었으나, 이번 조사에서 6.98점으로 최고점을 경신했다. PERC는 2013년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를 “아시아 선진국 중 최악이자 지난 10년 중 최악”으로 평가했다. 특히 기업 부패 정도와 부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서 아시아 2위의 불명예를 기록했다.
혈연•지연•학연 풍토와 정부의 규제가 부패 부추긴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는 혈연•지연•학연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풍토와 정부의 규제에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규제는 곧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부패의 도구가 될 수 있고, 혈연•지연•학연은 불공정한 일 처리와 부정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40여 년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선진국 진입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확충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인적, 물적 자본에 대응하는 개념의 무형자본이며, 국가청렴도는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다. 사회적 자본의 확충은 사회전반에 걸친 신뢰도를 높임으로써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게 되어 국가의 부(富)와 사회안정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된다. 앞서 살펴본 조사결과들처럼 부패를 단속해야 할 힘 있는 기관들이 부패에 앞장선다면 누가 어떻게 이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