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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 만연한 한국은 왜 저(低)신뢰 사회인가
강규형   |  2013-10-23 14:44:31  |  조회 3218 인쇄하기

보험사기 만연한 한국은 왜 저(低)신뢰 사회인가

 

- 저신뢰 고비용의 구조 바꿔야 성숙한 시민사회 된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과거 빈 택시와 접촉사고가 있었다. 페인트가 긁힌 정도의 경미한 사고여서 연락처와 보험회사를 알려주고 집에 왔다. 그런데 밤에 택시기사가 전화를 해 타고 있던 승객이 입원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보험사기임을 직감하고 보험사의 특수수사대에 연락을 했더니, 유령승객을 내세워 보험금을 타내는 전형적인 “끼워 넣기”수법이라고 하면서 조치를 취했다. 결국 승객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됐지만, 이제는 기사 자신이 갑자기 아프다고 병원 행을 고집하는 바람에 보상금과 치료비를 물어주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 더 심한 경우도 많고 필자가 당한 경우는 약과라고 한다.


몇 해 전에는 뒤에서 트럭에 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는 많이 손상됐으나 다행히 몸에 큰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병원의 원무과장이 은밀히 보자고 하더니 속칭 “나이롱 입원환자”가 돼 보상금을 타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나는 앉아서 보상금 타서 좋고, 병원은 입원도 하지 않은 환자 입원/치료비를 보험회사에 청구할 수 있으니 쌍방이 다 좋은 일 아니냐는 얘기였다. 황당한 표정으로 그 제의를 거절하고 나서 씁쓸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었다. 이러한 사기 행각 때문에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너무나 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경미한 교통사고 피해자도 일단 드러눕고 보자?


일부러 사고를 당하거나 피해를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보험금을 탔다가 적발된 사람이 3년 새 80%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2010년만해도 보험사기로 5만4천994명이 적발됐고, 이들이 타낸 보험금은 3천467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사고 뒤 허위로 입원하는 `가짜 환자'가 실제로는 연간 9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최근 조선일보의 10월 16일자 특집 보도(“車 살짝만 스쳐도 입원… 10명 중 8명은 '꾀병'”)는 이런 보험사기의 백태(百態)를 더 디테일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는 교통사고 처리에 경찰이 관여하지 않고, 일부 병원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진단서를 남발하고, 사고 해결은 보험사 직원이 떠맡는 구조가 고착돼 그 결과 '공권력 공백' 사태가 생기고 경미한 교통사고 피해자조차 로또에 당첨된 듯이 '드러눕고 보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통탄한다. 교통사고 환자의 입원율을 현재의 5분의 1 수준으로만 낮추더라도 1년에 1조원 이상 사회적 비용이 절감된다고 이 보도는 지적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사고 피해자의 입원율(2011년 기준 50.9%)은 일본(5.2%)에 비해 무려 10배 정도이다. 한국의 자동차보험 급여액 중 개인 치료비 지급액이 40%에 이른다. 독일은 5%미만이라 한다. 일본도 한때 입원율이 높았지만 정부와 의료기관, 소비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에 나서면서 비율이 떨어졌다.


그 동안 국내에서는 자동차 사고로 가벼운 상처만 입어도 입원하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요양급여 운영체계 제도개선 보고서에서 손해보험협회의 부재환자 점검결과 부재율이 15~19%이고 부재환자 중 무단외출환자는 41.8%라 밝히면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입원기간에는 외출과 외박은 물론, 음주와 유흥업소도 출입도 빈번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자동차 보험뿐만 아니라 보험금을 노린 기업형 보험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종전에는 보험계약자 스스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기극을 벌여왔지만 최근에는 보험 모집인 등 보험 종사자들이 보험금을 편취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대형 보험회사에서 5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일한 김모 씨(56•여)는 지인들에게 “보험료를 안 내도 되고, 보험금 일부도 줄 테니 보험에 가입하라”며 권유해 손쉽게 23명의 고객을 모았다. 그러고는 평소 알고 지내는 병원장에게 허위 통원진단서를 발급받아 총 220여 회에 걸쳐 1억6600만 원의 보험금을 가로챘다고 한다.


대중 한 명 한 명의 각성 없이 민주사회 없다


필자 세대는 학창시절 “대중(大衆)은 무조건 옳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역사는 대중이 우둔할 수도, 타락하기도 쉬우며, 심할 경우 집단광기를 일으킬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다. “각성된 대중”이라는 뜻으로 민중이라는 단어를 쓰며 이런 딜레마를 피하려 노력한 학자도 있었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스페인의 사상가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는 이미 20세기 초에 이러한 함정을 간파하고 “대중의 반역”이란 명저에서 “대중의 반역이란 인류의 철저한 타락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드레퓌스 사건 때 하층민들은 죄 없는 드레퓌스를 반역자로 몰았고,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양심 있는 지식인들을 매도했다. 히틀러를 광적으로 지지했던 압도적 대다수 독일국민들은 과연 현명했던가?


이러한 ‘대중의 반역’은 저소득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생생히 두 눈으로 본 일인데, 점심때 한국사회의 공공질서 부족에 대한 열변을 토하며 소주 2병을 드신 명문대 원로교수가 만취된 상태에서 차를 몰고 곡예운전을 하는 상습적 행태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민사회의 룰에 반(反)하는 예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고속도로나 간선도로에서 출구를 놓쳤다고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아랑곳 하지 않고 후진을 감행하는 운전자를 본 경험이 누구나 있으리라.


일본계 미국인이자 세계적인 사상가인 프랜시스 후쿠야마(Fukuyama)교수는 <트러스트(Trust)>라는 책에서 선진사회와 후진사회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뢰 정도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을 신뢰도가 높은 사회로 보지 않았다. 살다 보면 많이 느끼는 일이겠지만, 한국사회는 낮은 수준의 신뢰부터 문제를 노정(露呈)한다. 책임감이 부족하고 서로 믿기 힘든 한국사회는 불신의 사회이다. 그러기에 ‘고비용(高費用)’ ‘고위험(高危險)’사회이기도 하다. 인간사회가 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는 정도에 비해서 더 심하다는 얘기다.


대중은 방치됐을 경우 오도(誤導)하기 쉬운 존재이며, 가끔은 양심을 판 야수의 모습으로 표변한다. 여기서 요즘 한국사회에서 한창 주목 받고 있는 공화주의(共和主義)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영국의 정치사상사학자인 쿠엔틴 스키너(Quentin Skinner)가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라는 저작에서 주장한 공화주의 자유론의 요체는 “공동체에 책임지면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즉, “자유롭고 평등한 가운데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공 선(善)을 추구하는 시민이 두텁게 존재할 때” 그 사회는 공화주의에 기초한 진정한 시민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대중도 교육되고 각성돼야 건전한 시민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유사 이래 성숙한 시민사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 동네북과 같은 신세인 정치인이나 재벌들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를 이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과잉이 가져오는 해악을 치유해가면서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뤄나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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