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1> 진실의 유통량 늘릴 때
지식정보의 오염을 막을 수 있다
- <자유의 위기> 자하문클럽 보고서 著
조우석 <문화평론가>
요즘 좌파는 엄살이 여간 심한 게 아니다.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 전교조의 법외 노조화 등 최근 현안을 놓고 '한국 사회의 거대한 우회전'이라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여전히 좌파 정서와 구호가 지배적인 사회로 남아있다는 걸 그들도 알고, 우리도 가늠한다. 1980년대 이후 그들이 문화권력을 쥐고 있으며, 이에 따른 지식과 정보의 왜곡현상이 문제인 상황인데, 새 책 <자유의 위기>(자하문클럽 지음, 조갑제닷컴 펴냄) 등장은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심정적 위로가 됐고, 좌파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좀 더 넓어지는 경험도 했다. 이 정도 단행본이 지속적으로 나와만 준다면, 이 정도의 진실 유통량을 늘일 수 있다면, 일방적인 너무도 일방적인 지식정보 오염 현상을 차단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편가름이나 진영 논리가 아니다. 그동안 지식과 정보 균형이 너무 한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져오지 않았던가. <자유의 위기>에는 그런 현상을 우려하는 필자 11명이 쓴 10꼭지의 글이 실려있다. 필자들은 자하문클럽 멤버들인데, 필자 한 명이 일관된 시각으로 쓴 게 아니라서 좀 어수선하고 들쭉날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기우였다.

지식정보의 오염 차단하는 효과 기대해도 좋을 듯
분야별 점검 방식이 마치 잡지를 보는 듯하면서도, 매 꼭지가 깊이가 없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속 깊은 교감을 했던 글이 절반 이상이니 야구로 치면 5할 타율을 넘는 셈일까? 시야를 확장시켜줘서 유익했던 글로 '종북좌파 세력의 계보'(김성욱 사단법인 한국자유연합 대표), '한국경제문제의 본질과 발상의 전환'(최광 외국어대 명예교수)에서 '역사전쟁에서 우군을 갖지 못한 대한민국'(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이 있었다. 글 하나하나가 꽉 차있다.
그 이상으로 짜릿했던 글을 만나는 멋진 경험도 할 수 있었으니 지적(知的) 즐거움이 배가됐다. '사이비 경제학과 그 오류들'(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한국언론의 선동기관화 연구'(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두 꼭지였다. 그게 안타깝기도 했다. 이런 책이 기껏 수 천 권 팔리는 게 출판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열 배 이상 팔리게 할 순 없을까? 그래서 이 책 서문의 지적대로 "위선적 명분론과 좌경적 선동을 무기로 삼는 집단주의적 인기영합적 정치세력"에 진정 의미있는 타격을 줄 순 없을까? 자칭 민중주의, 민족주의 세력 대신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존중하는 세력"(역시 서문에 나온다)이 지식사회의 주력이 될 순 없을까?
한 권의 책에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한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 가능성을 필자는 봤다. 정규재의 글 '사이비 경제학과 그 오류들'이 그 하나인데, 글맛까지 좋았다. 이 짧은 글은 그동안 좌파들이 유통시켜온 언어와 개념 그리고 논리 대부분을 과학적 오(誤)개념(misconception)으로 규정한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이자, 정규재 TV 대표로 이미 유명한 그의 지적에 따르면 그럴싸한 경제민주화라는 구호야말로 대표적 오개념이다. 부자에 대한 증세(增稅) 주장이나 보편적 복지 주장 등도 모두 그 쪽이다.
오개념은 비유컨대 서양 중세 시절의 케케 묵은 천동설처럼 과학적 근거가 없다. 저자는 이렇게 신랄하게 말한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사이비 경제개념이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에는 종북세력 못지 않게 사이비 경제개념을 퍼뜨리는 자들도 포함시켜야 마땅하다. 사이비 경제개념은 대한민국의 이념의 토대를 허물어가면서 우리 주변에 너무 널리, 그리고 너무 깊숙이 침투해있기 때문이다."(98쪽) 일테면 이런 글을 한 번 읽어보시라.
과학적 오(誤)개념에 불과한 경제민주화 논리
"한국경제는 자본주의의 종말적 폐해에 직면해 있다. 황금 만능주의적 외형 성장에 치중하다 보니 한국인의 문화적 정신적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빈부격차도 날로 심화되었다. 경제개발 50년이라고 하지만 자본이 승리한 것일 뿐 서민의 삶의 질은 개선된 것이 없다. 그건 농업을 희생한 바탕 위에서 소수의 자본가를 위한 산업성장이었다. 자유무역은 다국적 대기업이 후진국을 착취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한미 FTA는 그런 대표적인 족쇄다. 치열한 경쟁은 전통적인 공동체 정신을 여지 없이 파괴하였다. 치솟는 자살률과 학교 폭력 따위는 그런 경쟁 만능사회가 불러오는 결과의 하나다. 사회는 분열되었고, 시민의 공동체적 연대감은 파괴되었다."(99~100쪽 발췌)
저자 정규재가 임의로 재구성한 이 문장의 논리와 배면에 깔린 정서에 적지 않은 무리가 "그래 그래" 하며 공감을 하겠지만, 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럴싸한 거짓말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황금만능의 외형 성장, 정신적 삶의 피폐, 자본의 승리, 소수의 자본가를 위한 경제성장, 대기업의 착취, 경쟁만능의 사회…. 이 모두가 검증 불가능한 용어 혹은 주장이며, 도덕적 단정을 깔고 사실과 주장을 혼동하고 있는데 불과하다는 게 정규재의 주장이다. 그래서 경제논리가 아니고, 과학적인 게 아님을 물론 뻔한 거짓말이다.
이런 오개념이 노리는 것은 정규재의 지적대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투쟁과정과 한국인의 치열했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주장"에 불과하다. 막상 저들은 신념에 차있다. 좌파 무리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자못 심각한 전제를 깔고 있다. 그래서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며 호들갑을 떠는데, 그 대표적인 구호가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력을 독점한 재벌의 개혁과 자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저들은 점잖게 말한다. 지금 대기업 30개를 3000개의 작은 기업으로 쪼개는 것도 필요하며, 산업계는 중소기업 위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말도 곁들인다.
신자유주의 천지와 자본주의 정글에 불과한 이 현실에서 과도한 경쟁은 자제되어야 하며, 경제적 평등이 더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경제의 천동설 지지론자들은 입을 모은다. 급기야 간이 커진 좌파 무리는 그걸 헌법정신이라고까지 대담한 억지 주장을 펼친다. 정규재에 따르면 그런 사이비 경제 개념의 출발은 19세기 마르크스에서 출발했는데, 지난 20세기 지구촌의 절반이 그 사이비 논리의 제물(祭物)로 바쳐져 빈곤과 저개발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 그리고 1960~70년대 개발연대의 우리는 용케도 그걸 피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개발연대 이후 한 번도 정부정책에 찬성한 바 없는 좌파
그게 진실이다. 놀랍게도, 아니 당연한지도 모르겠으나 좌파 무리는 1960~70년대 개발연대 이후 단 한 번도 정부의 경제개발 드라이브에 찬성 의견을 내본 적이 없다. 이를테면 원로 경제학자인 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와 그의 제자 그룹의 경우 유사(類似)좌파인데, 그들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에 노골적으로 항의했던 걸로 유명하다. 쌀도 부족한 상황에서 농지훼손은 결코 안 된다는 억지 논리였고, 일본 철강회사의 지원으로 제철회사를 세운다는 것은 도로 일제 식민지로 돌아가는 일이라서 안 된다며 생떼를 썼다.
"우리도 먹고 입을 게 없는데 왜 수출인가?"라며 박정희정부의 수출증진 정책에도 '묻지마 반대'를 거듭했다. 지금 한국경제의 성장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대체 무어라 할까? 면목 없으니 고개 숙이거나, 지식인 윤리를 저버린 죄과에 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런 이는 극히 드물다.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 같은 학자가 예외적으로 몇 명 있을 뿐이다. 절대 다수는 지금도 그럴싸한 헛소리를 반복한다.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행복은 증진되지 않았다."라면서….
"경제발전의 성과를 개인의 심리적 만족 여부로 바꿔 해석해버리면, 이는 더 이상 학문도 아니요, 이론도 아니다."는 게 정규재의 따끔한 지적인데, 안타깝게도 그런 오개념을 퍼트리는 자들은 경제학계는 물론 국사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그리고 정계와 언론은 물론 연예계에도 다수를 점유하고 있다. <자유의 위기>에 등장하는 '종북 좌파 세력의 계보', '친노 종북 세력이 장악한 연예계의 내막', '역사전쟁에서 우군(友軍)을 갖지 못한 대한민국' 등의 글은 분야별 디테일에 대한 정보로 썩 훌륭하다.
지면이 짧아 두루 소개 못하는 게 유감인데, 실은 정규재의 글을 읽다가 눈에 번쩍했던 것이 그런 사이비 좌파를 현실에서 붕 뜬 "21세기판 봉건 주자학자들"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현실사회를 향해 어떤 처방전을 내놓지 못한 그들은 조선시대 주자학자들처럼 도덕적 사회라는 명분을 붙잡고 있다는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지만, 짧은 언급에 그쳤다. 오래 전부터 필자는 궁금했다. 지구촌의 흐름과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는 한국 좌파의 지독한 맹목성과 '묻지마 민주주의'에 올인하는 집단정서의 배후에는 도대체 어떤 고약한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단 말인가?
도덕적 명분 앞세우는 좌파는 조선조 사대부와 닮은꼴
그 유구한 풍토에는 대체 어떤 문화적 DNA가 똬리를 틀고 있는가? 그게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정규재는 좌파 경제학자 그룹을 포함한 가짜 진보파들의 주장은 지금의 역동적인 현실을 버리고 무능과 부패와 가난 그리고 후진성의 옛날로 돌아가자는 한심한 퇴행성을 보이며, 조선조 사대부들의 멘탈리티와 뭔가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암시를 주는데 그친다. 다행히도 조갑제의 글 '한국 언론의 선동기관화 연구'가 그 문제의식을 이어받고 있어 관심거리다.
그는 보다 명쾌하게 교통정리를 한다. 즉 한국사회의 표면보다 숨겨진 구조를 파악해내는데, 설득력이 크다. 그에 따르면 지금 언론의 생리에는 실용주의 대신에 도덕적 명분을 항상 앞세우는 버릇이 있는데, 그건 조선시대 이후 물려받은 풍토라고 봐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삼사(三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와 이조전랑(吏曹銓郞) 그리고 사림(士林)이 그들끼리의 여론을 만들고, 엘리트 정치를 주도했다. 정치라고 해보니 주자학적 명분을 앞세운 붕당의 게임이고, 당쟁의 게임이라서 근대적 정치의 기준에선 한참 멀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요즘 다시 그쪽으로 흘러가는 모양새이다. 사간원은 언론이 맡고, 사헌부는 검찰이 맡았다. 홍문관은 학계에 해당하며, 사림은 시민단체와 재야운동권이 양분해 가지고 있다. 이조전랑은 정권 내 인사부서에 비견된다. 더욱이 이들이 벌이는 행태가 꼭 같다. 조선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일까? 분명한 것은 조선조처럼 명분과 도덕의 논쟁에 매달리는라고 해 저무는지도 모르고 있다. 도덕주의는 안 된다. 요즘 시절 그건 한국 언론 특유의 반 국가, 반 기업, 반 실용, 반 군대 태도로 모습을 드러낸다. 조갑제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속의 언론이지만, 가치관과 행태는 조선적이고 수구적(守舊的)이다. 조선조적 전통, 즉 명분론, 위선 反체제성, 군사•경제•과학에 대한 무지, 사대성, 교조성은 전근대적이므로 좌경이념과 통한다. 조선조는 그 속성이 좌경정권으로서 600년에 걸치고, 대한민국 건국(建國) 이후 비로소 자유와 경쟁 등 우파적 가치관이 힘을 얻게 된다. 우파 60년, 좌파 600년인 셈이다. 우파의 역사적 뿌리는 약하고 좌파는 깊고 넓다. 북한정권의 조선조의 후속(後續)이다."(175쪽)
그에 따르면 한국의 건국과 부국의 지도자였던 이승만과 박정희는 조선조적 가치관에 반감이 심했고, 그래서 군인 기업인 과학자 기술자를 우대했다. 두 지도자가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이들 실용파가 역사 창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도록 도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인통치 30년은 언론을 힘으로 눌렀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풍토에서는 예외적인 시기이자, 경제 군사 과학 기술을 중시한 실용의 시대였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시대는 그런 예외의 시대가 끝나고 통상적인 시대, 즉 문민 우위의 명분론적 정치로 복귀하는 것, 즉 한국정치의 정상화였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이 도덕과 명분을 가지고 날밤 샜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과 정치권은 그 지고지순하다는 민주주의란 것을 앞세워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탁월한 지적에 무릎이 쳐진다. 반짝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관찰 속에 나온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정교하게 파헤치는 건 다른 사람의 몫인데, 다 아는대로 조선왕조 500년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지만, 중반 이후는 결국 실패한 역사이다.
그래서 식민지로 전락했고, 분단까지 겪었지만, 우리는 아직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했다. 특히 허위의식의 포로가 된 지식사회의 책임이 큰데, 그게 안타깝다. 더욱 큰 문제는 그 나쁜 DNA를 아직도 못 버린 채 끌어안고 있으며, 그 그늘에서 좌파와 좌파정서를 울창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등장한 <자유의 위기>는 용기 있는 책이고, 비판의 칼끝은 충분히 벼려져 있다. 참고로 이 책의 부제가 이렇다. '국가와 시장에 대한 도전과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