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칼럼3> 오랜 한(恨)과 역사적 소명감 사이
조우석   |  2014-01-22 18:06:46  |  조회 3883 인쇄하기
<칼럼3> 오랜 한(恨)과 역사적 소명감 사이

 

- 그가 쓴 수필을 통해 들여다본 대통령의 멘탈리티



조우석 <문화평론가>

 

 

언제 어느 때이고, 최고 권력자의 캐릭터와 기질 그리고 스타일이 정치 리더십의 핵심을 차지한다. 지도자란 곧 그 나라와 체제에게 절반의 운명이라고 해도 된다. 이를테면 <전쟁의 탄생-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플래닛미디어)를 쓴 국제학자 G. 스토신저 교수는 옛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를 명쾌하게 요리다. “유고슬라비아의 와해란 곧 밀로세비치라는 파괴적이고 오만한 (최고 지도자) 남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남성이 국가를 파괴했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20세기 싱가포르란 리콴유란 캐릭터의 연장이다. 리콴유 없는 싱가포르란 상상하기 힘들다. 현대 터키란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의 시대정신이 구현된 대하 드라마였다. 봉건국가 터키의 칼리프제도를 없애고 술탄을 폐위시키는 대수술은 그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고대에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고대 로마의 숙적 카르타고의 영웅적 싸움 역시 유년시절부터 로마 응징에 절치부심했던 한니발 장군의 캐릭터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현대 북한은 더욱 그러하다.


지도자란 곧 그 나라와 체제에게는 절반의 운명


북한은 곧 김일성 가문의 확장이라는 나의 말이 정치학을 너무 단순화시킨다고 누가 지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학주의일 수 있다고 말해주려 한다. 그렇다면 2014년 초 대한민국의 절반도 집권자 박근혜 대통령이 쥐고 있다. 그의 내면세계와 성격과 그리고 정치적 지향 국정철학이 결국 우리 삶의 절반 이상을 좌우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그가 세상을 보는 시선, 멘탈리티의 실체는 과연 뭘까?


그가 말하는 원칙, 그걸 제대로 파악해야 앞으로 4년 예측도 가능한데, 자연인 박근혜, 정치인 박근혜의 궁극의 관심(ultimate concern)은 무엇일까? 여기에 가장 근접했던 발언으로 나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발언을 기억한다. 그는 지난 1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아웃사이더 소수자의 한에 집착해서 편향됐다면 박 대통령은 자신의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 판단으론 그건 절반만 맞는 얘기다. 그의 발언은 일부 친박근혜 세력, 관료와 전문가들로 이뤄진 장막 안에 들어앉은 대통령이 측근들이 전하는 말,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판단한다는 공격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정치인 박근혜의 핵심을 파악하는 작업에서 비껴간 것이다. 그런 나의 판단은 대통령의 글을 유심히 읽은 데 바탕한 것인데, 지난 해 화제를 모았던 <현대문학>의 대통령의 수필 네 편을 꼼꼼히 읽었다. 수필이 실렸던 원전(原典)인 15년 전 단행본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부산일보) 전체를 훑었고, 박 대통령이 펴냈던 단행본 <나의 어머니 육영수>(사람과사람, 2000년)까지 살폈다.


정치인 박근혜의 궁극의 관심(ultimate concern)은 무엇일까?


글이 곧 사람이라더니, 대통령의 수필 세계가 꼭 그랬다. 낮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는 분명 여성적 목소리이지만, 그 자신의 표현대로 '하늘의 뜻'과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공부가 수필집 전체를 흐르고 있다. 앞 표지를 잠시 손바닥으로 가릴 경우 저자가 대중정치인이라는 걸 알아 맞출 사람은 단언컨대 한 명도 없다. 종교인의 묵상집이거나 윤리학자의 에세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을 게 분명하다. 내용만큼 그걸 담아내는 방식, 즉 문체(文體)도 중요한데, 요즘 감각, 요즘 스타일과도 많이 다르다.


튀는 소재, 기발하거나 감각적인 묘사, 가끔 반전이나 유머도 섞여있는 서술…. 그런 건 없다. 소소한 신변잡기도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건조하고 지루하지만, 좋게 말하면 점잖고 안정적이다. 도덕 교과서를 읽는 듯 좀 상식적인 내용이 반복되는 바람에 '글맛'이 덜해도 상관없다. 전문 글쟁이가 구사하는 매끄러운 글과 달리 겸허한 접근과 자기 성찰은 그 자체로 귀하다. (참고로 고스트라이터 등이 도움을 준 흔적은 전혀 없다.)


그리고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은 그냥 옛날 책이 아니다.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애착은 크다. 지난 해 중국 방문 중 칭화대 연설에서 중국 고전을 말하는 대목에서 특별히 이 수필집을 언급한 것도 우연이 아닌데, 서문에도 이런 대목이 눈에 뜨인다. “(수록 글은) 좋은 수필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듯 썼다.” 정치인의 명함을 찍듯 이 책을 제작한 건 아니며 글에 담은 것은  “일생 동안 추구하고 실천할 나의 작은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내용의 경우 수필집 48개 글 중 한국사회 현실이나 정치현안을 다룬 건 단 한 꼭지도 없으며, 자기의 삶이나 사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대목도 거의 없다. 항상 몸을 낮추는 게 몸에 밴 탓으로 분석되는데, 예외적으로 부모님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 곳이 몇 곳이 된다. 대표적인 게 ‘봄꽃 속에 피어나는 부모님 추억’이란 수필인데, 봄날 옛 청와대 시절에 대한 잔잔한 회고는 수필집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물게 서정적인 톤을 유지하고 있는, 아주 예외적인 글이라서 눈길을 끈다.


 “생전에 부모님은 꽃이 피어나는 이 계절을 가장 좋아하셨다. 잠시 머리 식히려고 집무실에서 나오신 아버지와 눈부시게 하얀 갑사 치마저고리를 입으신 어머니가 백옥 같은 목련꽃  나무 아래서 같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신 후 봄철을 맞으시는 감회가 남다르셨던 것 같다. ‘봄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인생은 왜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줄 모르는가?’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반갑게, 또 한편으로는 슬프게 봄의 꽃들을 맞곤 하셨다.”


박 대통령은 수필집의 다른 글에서도 아버지는 “자신의 한을 민족의 한으로 승화시켰던 분”이라고 반복해서 언급했다. 자신의 정치철학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머지 책의 내용은 뜻밖에도 분량 100%가 마음공부이고, 신앙과 종교에 관한 성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교, 기독교, 불교 등 동서양 종교를 통해 자기 성찰로 꼭 채워졌으니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수필집인 셈이다.


종교적인, 너무도 종교적인 그의 멘탈리티


이 짧은 인용문에 천도(天道), 하늘, 십자가, 독생자 등 일상적이지 않은 묵직한 용어가 수두룩하다. 공자, 하느님, 붓다의 이름도 빠짐없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 주어진 몫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고, 사람의 도리를 다 하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운명이란 허무하고 짧다. 그래서 책 제목도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인데, 매우 동양적이고 체념적인 운명론인 듯 보인다. 어쨌거나 이 책으로 파악한 지도자 박근혜는 ‘여성적인 너무도 여성적인’, 그러면서도 ‘종교적인, 너무도 종교적인’, 그런 모습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나랏일 외에는 다 번뇌”라는 발언을 했는데, 그게 우연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 1분이 아깝다"며 강행군하는 모습이야말로 정치인 박근혜의 진면목이다. 그걸 어떻게 구현하느냐 하는 문제와 별도로 그건 그의 진심이다. 사실 그의 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어휘는 '진리', '하늘', '하늘의 뜻' 같은 말이다. '성인'을 언급하며, 그는 '진리를 구현하고 하늘의 사업을 참여하는 사람, 항상 기도하는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분류컨대 박 대통령은 종교적 인간(Homo religlosus)이다.


종교적 인간은 하늘 저편 초월의 가치에 시선을 두고 있는 독실한 인간이라는 뜻이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강력한 소명의식 내지 사명감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털어놓는데, 그게 이 수필집을 펴낼 때의 속내와 관심으로 관측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마음, 이것을 하늘이 가장 기쁘게 여기심을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그 위치에서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 하늘의 사업을 이루기 위해 자기 몫을 다하기….”


그럼 박 대통령은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이 깊은 사람일까? 공식적으로 그는 종교 없음, 즉 무교(無敎)이다. 하지만 친 불교 성향을 가지고 있어 대자행이라는 법명을 받은 적이 있다. 젊었을 적에는 천주교에 입문해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을 가졌다. 즉 종교에 두루 열려있으나 교회나 성당에 참석하는 의미의 신자는 아니다. 그럼 이 책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 성찰은 무엇일까? 그건 좁은 의미의 신앙간증과 달리 이웃과 국가를 위한 헌신하려는 강렬한 소명의식이다.


유연한 듯하면서도 강하고, 여성적이면서도 뚝심 있는…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은 정치인 박근혜를 해독해낼 블랙박스이다. 그를 둘러싼 평소 이미지가, 유연한 듯하면서도 강하고, 여성적이면서도 뚝심이 느껴진다면 수필집도 그러하다. 사실 수록된 글은 20년 전 그가 가장 외롭고 힘든 시절에 쓰여졌다. 10.26 직후 청와대를 나온 오랜 사회적 은둔을 하던 무렵 그는 육영재단 이사장 직 하나만 맡은 채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있던 때였다. 그러던 당시 정계 입문은 쉬운 선택 대상이 아니었고,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가 이회창 씨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1998년 4월 재보궐선거 입후보)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건 잘 알려진 일이다. 그 직전 기간에 집중적으로 쓰여진 수필집은 고통스러웠던 자연인 박근혜가 종교 신앙 차원의 경건함으로 스스로를 혹독하게 단련했던 기록으로 봐야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 세계관이 좀 더 분명해졌고, 견고해졌다.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란 타협이고 소통인데, 하늘에 대한 소명을 강조하는 그가 자칫 나만이 진리라는 독선과 아집의 포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대목이다. 그게 이른바 ‘진리 정치’의 위험성이다.


자칫 양날의 칼일 수 있는데, 확고한 리더십을 펼칠 수도 있고, 유연함을 잃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자기 이념이 맞다는 신념이 강하고, 내편과 네 편을 가르는 경향이 강할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다. 청와대에서 레이저를 쏘는 대통령이라서 참모들이 쩔쩔맨다는 소문도 그리 좋은 건 아니다. 단 수필을 쓴 1990년대와 달리 오랜 현실정치의 경험을 쌓아온 지금은 당시보다 유연해졌으리라는 기대를 할 뿐이다. 사살 '잘살아보세'는 박근혜 정치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부국(富國)을 향한 간절함이 담긴 말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에 뛰어든 이유를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마무리하지 못한 잘사는 나라의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꿈을 이루려면 남은 임기 4년을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크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부터 장관, 청와대 수석까지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변화를 시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물론 그만의 원칙과 국정철학은 유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체성이니까. 단 창조적 파괴가 절실한 시점이 지금이다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742 <칼럼4> 교실만 아니라 단행본도 반기업정서 가득  1  조우석 14-02-24 3488
741 안중근 의사(義士)의 애국혼(愛國魂)  12  이철영 14-02-24 6900
740 <서평2> 이것이 한국 보수주의의 영혼이다  조우석 14-02-24 3396
739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2  우창록 14-01-22 3525
738 <칼럼3> 오랜 한(恨)과 역사적 소명감 사이   조우석 14-01-22 3883
737 <서평1> 엉터리 국사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조우석 14-01-22 4179
736 2014년 새해 우리의 다짐  1  우창록 13-12-23 3967
735 전쟁영웅 받드는 법을 모르는 한국사회  1  조우석 13-12-23 12467
734 무늬만 성직자인 저들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16  이철영 13-12-23 5308
733 <서평1> 한국정치가 이 지경인 진짜 이유는?  1  조우석 13-12-23 3726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