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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받는 자세
서지문   |  2005-10-14 12:53:56  |  조회 2222 인쇄하기
얼마 전 학교의 일로 중국에 가게 되었다. 중국에 온 후 3~4주 동안 한자 발음이 좋다, 피부가 곱다 등 사소한 칭찬을 몇 번 들었는데, 그 때마다 ‘시에시에’(謝謝)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만난 중국인들은 외국인들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라 내가 ‘시에시에’라고 해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아차, 중국에서는 칭찬을 받고 고맙다고 하면 안 되고 ‘날리날리’( 어디가요, 아닙니다)라고 해야하는 건데”하는 생각에 민망스럽다.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칭찬을 들으면 끝까지 부인을 하면서 겸양을 발휘해야 했다. 이런 관습은 아직도 약간 남아 있다. 나는 젊었을 시절에는 칭찬을 들으면 너무나 부담스러워서 고맙기보다는 괴로웠고, 그래서 내가 그런 칭찬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피맺히게(?) 역설했다.

그 후에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교수들이나 반 친구들에게서 칭찬을 들을 때 참 입장이 곤란했다. “너 어쩌면 그렇게 영어를 잘하니?” “네 발표 정말 인상적이었다” 등의 칭찬을 들으면 겸손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 영어가 너무 부족해서 괴로워 죽겠다’든가 ‘발표를 망쳐서 속상해서 죽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도 금방금방 잘 나오지 않는 데다가 이런 말을 ‘내 기준은 네 기준보다 훨씬 높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게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그때는 울상(!)을 지으면서 ‘oh, no!’라고 절규(?)하곤 했던 것 같다.

사실은 미국에 가기 전에, 미국사람들은 ‘겸손’을 이해 못하니까 미국에서는 무엇이든 못한다고 하면 절대로 안 되고, 못하는 일이라도 ‘할 줄 안다, 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단단히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는 매사에 자신이 없었고 어떤 일이든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나서는 것은 체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나는 미국에서는 절대로 인정을 못 받겠구나, 하고 절망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자신이 없어서 못 하겠다고 해도 미국사람들은 “넌 너무 겸손하다. 나는 네가 이 일을 훌륭히 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나를 격려했고, 실제로 겸양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일은 별로 없었다.

어쨌든 미국에서 몇 년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미국 사람들이 무슨 칭찬을 받으면 아주 기분 좋은 낯빛으로 ‘thank you’라고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참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자기의 장점을 저렇게 솔직히 인정해도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차차 칭찬이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엄격한 평가이기보다 호의의 표시이기 때문에 가벼운 칭찬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은 ‘thank you’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thank you’를 애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귀국을 해서도 칭찬을 들을 때 ‘아이 뭘요’ 또는 ‘형편 없는데요’ 같은 겸양 대신에 그냥 가볍게 ‘감사합니다’하고 넘기는 일이 많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감사합니다’가 용서 못할 자만(自慢)으로 들리는 것 같지는 않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일은 칭찬을 가볍게 들어 넘기게 되면서 나도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칭찬을 하면 혹시 아첨으로 들리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고, 나의 칭찬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상대편을 격려하기 위해서, 또는 우호적이고 유쾌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칭찬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중국에 오니까 ‘날리날리’를 입에 익힐 필요가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칭찬을 받으면 겸양을 하고, 그러면 더욱 칭찬을, 또 더욱 겸양을 하고 하는 사이에 우호적인 분위기와 흥이 고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장점(?)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강조되는 것을 들어야 하는 것은 좀 괴롭다. 칭찬을 하기가 훨씬 덜 부담스러운 한국에 돌아가면 더욱 부지런히 칭찬을 해야겠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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